황소희(연세대 정치학 박사수료) 사이다가 어려운 이유 ‘사이다’라는 표현은 청량한 탄산음료만을 호칭하는 게 아니다. 사이다를 마신 것처럼, 마치 갑갑한 상황이 풀릴 때 쓰이는 표현이다. 예컨대 나쁜 조연에게서 받는 천대와 흉계를 주연이 극복하고 바로잡거나 복수하는 장면, 스포츠 경기에서 속 시원하게 이기는 경우나 부조리한 현안에 철퇴를 가한 특정인의 발언이나 대응 등에 ‘사이다’라는 표현이 통용된다. ‘사이다’라는 표현은 꽉 막힌 문제를 해소하는 속 시원한 한방을 기원하는 정서를 반영하는 것일 테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 사이다와 같은 현상은 쉽게 나타나기 어렵다. 한 번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솔루션을 찾기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사회가 빠르게 변하는데, 이를 뒷받침할 법과 제도가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일 만큼 더디게 발전하고, 이 갭이 메워지지 않을 때 사회 구성원이 느끼는 문제와 부조리가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된다. 많은 이해관계가 중첩된 현안일수록 특정 현안으로 인해 손해 보는 이들이 거세게 저항하는 것도 문제 해결이 어려워지는 이유 중 하나다. 이런 이유로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해결책을 찾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누군가는 손해를 보거나, 기대했던 것보다 적은 이익을 얻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의 요구와 권리가 반영된 타협안이 나와야 하는데, 이를 조정하는 과정이 녹록지 않다. 완벽하게 만족할 수는 없지만 문제와 관여된 이들이 어느 정도는 손해를 수긍할 수 있도록 조정하는 것, 어려운 현안의 합의와 타협을 이끌어 내는 과정에서 위대한 리더십이 탄생하고 주목받는 이유다. 결국 정치 혹은 사회 문제를 풀어가는 데 중요한 것은 각자의 이익을 포기하고 싶어하지 않는 이해당사자들로부터 얼마나 잘 타협을 이끌어 내느냐 여부로 수렴할 것이다. 회색지대 없는 남북관계에 대한 해결책 개인적으로는 한국이 해결해야 할 여러 당면 문제 중 분단 문제가 근원적이고 근본적인 현안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현재 한국이 겪는 문제 대부분의 원흉이 분단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비대칭적인 미국 중심 외교와 중국과 미국 두 강국 사이에서 외줄을 타야 하는 상황, 재벌 중심의 산업 구조로 인한 소득의 양극화, 압축 성장 중에 나타난 노동 경시, 군대식 권위주의 정서, 징병제로 인한 청년 남성들의 박탈감과 젠더 갈등 등 체제 경쟁에서 생존하기 위해 지난 70년간 달려온 결과의 부산물일 것이다. 아쉬운 점은 남북관계가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사회 구성원 공히 동감하지만, 개개인이 생각하는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있다는 점이며 더 나아가 해결책이라 논할 수 있는 선택지가 매우 한정적이라는 부분이다. 특히 후자의 경우 통일이냐 아니냐로 단순화되는 경향을 목도하곤 한다. 북한과 공존해야 하고 평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대전제에 어느 정도 공감하면서도 실질적인 방법론에 구체적인 논의가 부족하며, 북한과 갈등이 터져 나올 때는 평화로운 해결책보다는 다시 갈등적인 사고로 회귀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게 나타난다. 2018 남북정상회담 Ⓒ 위키미디어 그러하지 않았던가? 남북한 지도자가 판문점에서 만났을 때 자신도 모르게 가슴 뭉클하고 다시 한반도에 훈풍이 불어올 것이란 희망 섞인 기대감에 설렜다가도 북한의 주요 인사가 남한을 비판하는 성명을 내거나 도발을 강행할 때에는 이내 실망하고 북한에게는 기대할 게 없다는 식의 사고로 귀결되는 것 말이다. 우리가 평화와 공존을 알고 논하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평화를 이루고 공존해야 할 대상이 우리를 종종 위협하고 도발하는 북한의 지도자와 권력층도 포함되며 이들과 한반도의 미래를 놓고 통일과 평화를 위해 타협해야 할 대상이라는 점은 쉽게 간과하고 만다. 잘 타협할 준비 기예르모 오도넬(Guillermo O’Donnell), 필립 슈미터(Philippe C. Schmitter) 공저, “권위주의의 지배로부터 이행 (Transitions from Authoritarian Rule)”, 1986. 해외 사례를 본다면, 북한의 지도자와 권력층과의 타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남미지역의 정치적 체제전환 과정을 분석한 오도넬의 분석에 따르면, 기존의 독재정치나 권위주의 정권이 한 번에 민주화되기보다는 점진적으로 진행된다고 설명한다. 그의 논의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불량한 체제가 ‘사이다’처럼 혁명적으로 전환되기보다 시간을 두고 단계적으로 개선되는 과정이 체제의 안정성을 높인다는 것이다. 독재 정권이 기존에 갈등을 빚던 민주화 세력을 포섭하거나 부분적으로 연합해 정권을 유지해 나갈 때 당장의 권력을 유지하면서도 민주화를 점진적으로 받아들인다. 남북으로 나뉘어 내전을 일삼다가 정치적인 통일을 이룬 예멘의 사례도 기존 권력층의 이해관계를 얼마나 담보해 주어야 통일이 유지될 것인지 고민하게 하는 사례이다. 대승적인 차원에서 남예멘과 북예멘이 통일에 합의하였지만, 기존에 분단되었던 예멘에서 권력층으로 지내던 이들이 통일 이후 자신에 대한 정치적 보상이나 처우가 만족스럽지 않자 다시 내전을 일으켜 통일 이전보다 못한 상태로 돌아간 바 있다. 상이한 체제가 완벽하게 통합이 되기 전까지, 통일은 잠시 나타난 정치적 이벤트에 불과하며 언제든 되돌릴 수 있다는 것이 예멘 사례가 시사하는 바다. 이 두 사례가 의미하는 것은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서 중요한 것은 북한에서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엘리트와 주요 인사에게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이 자신의 이해관계를 침해받지 않는 상태에서 이루어질 수 있게 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에서 권력을 유지하고 싶어 하는 북한의 지도자와 권력층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기여하도록 하려면 그들에게도 이 과정에서 이익이 담보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부분은 북한의 지도자 및 권력층과 한국이 한반도의 통일과 평화를 위해 앞으로 어디까지 타협할 것인지 여부와 관련되어 있다. 통일과 평화라는 거대담론에 가려있고, 한편으로는 민감하게 여겨지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우리는 북한 정권과 잘 타협할 준비를 해야 한다. 무엇을 내어주고 어떤 것을 얻어올 것인가, 한반도의 평화를 이끌어 내는 위대한 리더십은 어떻게 행사될 것인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