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수 프란치스코(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운영연구위원) 지난 호에서 ‘향후 남북 관계의 전개 방향’을 간단히 살펴보았습니다. 조금 더 살펴볼 것이 있어 한 번 다뤄봅니다. 일본의 역할 일본과 우리의 역할 변화가 일어날 것이어서 이에 대해 다뤄보려 합니다. 먼저 일본입니다. 미국의 인도 태평양 전략에서는 미일 동맹이 한미 동맹보다 중시됩니다. 미국의 인도 태평양 전략보고서에서 미일 동맹은 ‘주춧돌(corner stone)’로, 한미 동맹은 ‘린치핀(linchpin, 핵심축)’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핵심축이 더 중요하게 보일지 모르겠는데 본래는 주춧돌이 더 중요합니다. 미국은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에 승리하고 나서 5년 동안 점령 정책을 편 끝에 1951년 9월 8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연합국과 일본 사이에 평화조약을 맺습니다. 이 조약으로 일본은 다시 주권국가가 됩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미국은 일본과 미군의 일본주둔, 일본 내 기지 사용을 주권국가 일본이 요청하는 것을 받아주는 모양새로 미일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합니다. 본래 미국이 점령정책을 펼 때부터 일본 정치인들은 대부분 미국 말을 잘 들었습니다. 거부하다 아무것도 못하느니 순응하며 최대한 얻어내자는 협상전략을 따른 결과였습니다. 2021년 1월 15일 일본 오키나와현 근해에서 미군과 일본 해상자위대가 합동군사훈련을 하고 있다 Ⓒ 일본 해상자위대 국민들 개인으로나 국가적으로나 일본은 미국이 원하는 대로 따라주기에 미국은 일본이 편합니다. 인도 태평양 전략 구상도 사실은 일본의 아베가 수상이 되기 전부터 하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미국이 이 전략 구상을 따라주면 비용도 대겠다고 나선 상황이었습니다. 미국도 마침 필요를 느끼고 있는데 일본이 이렇게 나오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지요. 일본 의장대를 사열하는 오스틴 미 국방장관(2021.03.16.) Ⓒ 연합뉴스 일본은 미국과 함께 태평양 지역을 벗어나 인도양까지, 더 나아가 전 세계를 대상으로 군사력을 전개할 의도를 가지고 이 구상을 시작했습니다. 이 구실이 잘 먹히면 전쟁을 못하게 막는 헌법도 고칠 명분이 생기고, 군사력도 증강해 동아시아에서 중국을 견제할 수 있게 됩니다. 사실 중국의 팽창은 미국보다 일본이 더 두려워하고 있으니까요. 남한도 만만찮게 계속 군사력을 증강하고 있으니 긴장되지요. 따라서 일본이 현재의 군사력 균형을 깨고 다른 두 나라보다 강해지는 방법은 미국과 함께 동아시아의 범위를 넘어 군사적 역할을 확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군사력을 증강할 명분도, 다른 나라들의 우려 어린 시선도 무시할 수 있게 되지요. 우리나라의 역할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일본이 이렇게 나가면 중국, 일본 양쪽 모두 힘이 커지는 것을 위협으로 느끼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미 동맹도 조정이 불가피해집니다. 현재 미국이 원하는 방향대로라면 주한 미군은 감축되거나 한반도 상황이 아니라 한반도 주변 지역에서 벌어지는 작전에 투입하는 방식으로 기능을 달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군사력도 북한에 대한 대비에서 주변국들 위협에 대비하는 방향으로 바뀌며 증강될 가능성이 큽니다. 2021년 5월 22일 한미정상회담 후 공동기자회견 Ⓒ 연합뉴스 지난 5월 22일 있었던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사일 제한’을 푼 것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맘만 먹으면 일본이든, 러시아든, 중국이든, 북한이든 미사일로 견제할 수 있습니다. 물론 본래 목적은 중국을 겨냥하는 데 있습니다. 한국군을 일본 자위대처럼 미국이 가는 곳마다 데리고 다니겠다는 의지도 표현되었습니다. 그러려면 대양 해군 능력이 필요해집니다. 단거리 이륙 및 수직 착륙 항공기 발진이 가능한 항공모함 개발 계획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신형 구축함과 공격 잠수함도 장거리 작전을 소화하기 위해 필요합니다. 우리가 안 가진다 해도 가지라 할 것입니다. 한국 해군이 인도양과 남중국해에서 정기 연습이나 훈련을 한다는 이야기도 머지않아 종종 듣게 될 것입니다. 한미 연합 훈련을 넘어 이 전략에 참여하는 다른 나라들과 양자 또는 합동 작전도 하게 될 것입니다. 인도 태평양 전략이 점점 더 구체화될수록 우리나라도 군사적 측면 외의 역할들을 주문받게 됩니다. 사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은 이런 제의를 받은 것이고, 명시적 표현만 안 했을 뿐 미국 제의를 수락한 셈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미중 대결에서 확실히 미국 편을 든 셈이라 하였습니다. 자, 그런데 일이 조용히 흘러가면 좋은데, 지금처럼 대만 해협에서 긴장이 높아지거나 서해에서 중국과 미군이 충돌하는 경우가 생기면 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전쟁에 휘말려 들어가는(연루, entrapment) 상황이 발생하게 됩니다. 염려가 되는 상황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점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일본은 우리가 미국의 제의를 수락한 것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것입니다. 아마 미국의 입장이 있으니 뭐라고는 못하겠으나 우리를 이제까지처럼 자기 밑으로 두려 애를 많이 쓸 것 같습니다. 한미일이 같이 몰려다니는 일이 많을 테니 서열다툼은 불가피할 테지요. 반세기 동안은 ‘미-일-한’의 위계가 잘 지켜졌는데, 한반도 문제에서만은 예민합니다. 자위대가 유사시 한반도에 들어와 작전을 하거나, 더 나아가 한국군을 지휘하는 일이 생기는 경우처럼 예민하게 반응할 일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자존심이 걸린 문제지요. 아무래도 우리는 이 위계질서와 일본이 이렇게 한반도에 개입하는 상황이 불편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미국이 뭐라 해도 한일은 계속 불편한 관계에 있을 것 같습니다. 나눔 주제1. 여러분은 일본이 주도적으로 인도 태평양 전략에 나서는 것을 어떤 의도로 읽으셨나요? 일본의 의도에 대해 각자의 생각을 나눠 보세요. 2. 우리나라가 의도와 관계없이 한반도 주변 상황에 연루되는 상황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각자 생각하고 계시는 바를 이유와 함께 나눠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