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미카엘) 신부 | 선교사목국 무심코 사용하던 우리나라 말 표현들 중에 간혹 관심을 갖게 되는 순간이 있다. ‘생각해 보다’도 그중에 하나였다. 분명 우리말에 ‘생각하다’가 있다. 그런에 왜 ‘생각하다’에 ‘보다’를 붙여 ‘생각해 보다’란 표현을 만들었을까? 물론 ‘생각해 보다’와 ‘생각하다’의 차이를 누구나 쉽게 인지할 수 있다. ‘생각해 보다’는 ‘생각하려는 시도/노력의 행위를 뜻’한다. 그럼에도 혹시 이 말을 있는 그대로 해석해보면 어떨까?란 생각이 들었다. 즉 ‘생각하다’+‘보다’로 해석해보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생각해보려 시도하다’가 아니라 ‘생각하고 있는 것을 바라보다’란 의미로 접근해 볼 수 있다. 마치 제삼자(第三者)가 되어서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약간은 떨어져서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의미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너무도 유명한 말이 있다. “생각하는 대로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살아온 대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프랑스 소설가 폴 부르제(1852~1935)의 명언이다. ‘살아온 대로 생각한다’는 것은 자신의 의지가 아닌 타인의 생각이나 의지에 따라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의 생각은 위대하면서도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 인간의 행동을 생각이 주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생각하고 있는 것이 옳은 것인지, 생각하고 있는 데로 실천으로 삶으로 살고 있는지 확인해보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확인하는 작업이 없을 때 언급한 것처럼 그냥 자신이 살고 행동하는 것에 생각을 끼워 맞춰 옳고 그름이 뒤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하는 것을 바라볼 때도 단순히 확인하는 차원의 보는 것이 아니라 명확한 기준을 세워서 재 봐야 한다. 왜냐하면 본다 해도 하나의 시각으로밖에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라보는 기준이 반드시 필요하고 그 기준은 올바른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복음 즉, 하느님의 말씀과 가르침이어야 한다. 복음이 우리의 생각을 바라보고 기준점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적용하려 하지 않는다. 세상을 사는 사람들의 생각을 언론이 좌지우지하는 세상으로 변해가고 있다. 언론에서 흘리며 반복적으로 보여주고 들려주는 내용이 마치 진실인 것처럼 받아들여 언론이 하는 말을 자신의 생각의 기준점으로 두는 세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그래서 지금 생각하는 것이 진실인지, 옳은 것인지 언론이 아닌 복음의 빛으로 바라보는 의식이 더욱 절실히 필요로 하는 시대이다. 조선일보에서 하루 차이로 보도한 기사의 제목이다.“일본 이르면 내년 3월 코로나 백신 접종 시작” (2020년 12.08)한국, 빨라야 2~3월 접종...구매계약은 1000만 명분이 전부 (202.12.09) “이르면”과 “빨라야”는 어감상 엄청난 차이가 있다. “이르면”은 ‘기대보다 더 빨리’라는 뉘앙스로 ‘일본은 역시 강대국이고 위대한 나라’라는 내용을 암시한다. 반면 “빨라야”는 ‘아무리 노력해봐야, 너무 낙후되어서 엉망이고 능력이 떨어져 남들 다하는데 겨우겨우 한다고 해봐야 그때 밖에 못한다’라는 자국의 이미지를 최악으로 몰고 가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이것이 언론이 하는 짓거리다. 그래서 언론을 개혁해야 한다고 수없이 외쳐대지만, 워낙 언론이 가진 힘과 그들과 공생관계에 있는 권력과 돈이 막강해서 쉽게 대지 못하는 듯하고, 조금이라도 손을 대려하면 선제적으로 “언론을 길들이려 한다. 언론에 재갈을 물린다.”는 식으로 대대적으로 보도를 해대면서 자신들을 건드리지 못하게 여론을 조성하고 자신들은 무소불위(無所不爲), 안하무인(眼下無人) 격으로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편향적 정치성을 대놓고 드러낸다. ‘사모펀드 의혹’, ‘군 휴가 의혹’으로 언론에서 엄청난 기사들을 쏟아 부었다. 결국 두 항목에 대하서 모두 무혐의로 결론 났지만 사람들은 결론엔 별 관심이 없다. 그 과정 속에서 의혹에 의혹들을 제기하면서 언론과 그들과 공생관계에 있는 이들은 자신들이 바라는 정치적 이득을 얻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OO 의원은 13건의 고발이 이루어졌으나 어느 하나 자세하게 꾸준히 보도된 바가 없다. ‘의혹’에 대해서는 마치 확정된 ‘죄’인양 끊임없이 떠들어대고, 사실적으로 ‘고발된 사건’에 대해서는 비록 그것이 무혐의라 하더라도 전혀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묻어버린다. 그게 오늘날 대한민국의 적폐 언론들, 정치검찰들이 보여주는 모습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 그래서 나를 선택으로 행동으로 이끌게 만드는 생각이 참으로 올바른 것인지, 진리인지를 한 발짝 벗어나서 바라보는 과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하느님의 눈으로, 복음적 시각으로 정의와 진리의 길, 그래서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좋게 만드신 그 원의에 맞게 세상을 하느님의 정의로 실현해 나가야 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을 망각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