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장현(한신대 초빙교수,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운영연구위원) 요즘 우리 정부와 언론의 모습을 보면서 동굴의 우상을 떠올린다. “아는 것이 힘이다”는 경구로 유명한 경험주의 철학자 베이컨은 인간이 갖고 있는 편견과 오류를 네 가지로 분류해 설명했다. 그 중 ‘동굴의 우상’이란 자기의 경험만으로 세상을 판단하려는 오류이다. 인간이 자신의 성격·습관·환경·교육 등의 기준으로 타자를 규정함으로써 객관적 견해와 판단을 갖지 못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남과 북의 탄도미사일 발사 실험 이달 15일 한반도의 남과 북에서는 미사일 발사 실험이 동시에 진행되었다. 한국은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 발사에 성공했다.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은 은밀한 기동성 때문에 방어가 어려워 게임 체인저급 전략무기로 간주된다. 이번 실험 발사는 3천 톤급 잠수함 도산안창호함에서 발사되어 기술적 완성도가 높은 것으로 평가되었다. 청와대는 잔뜩 고무되어 “미국·러시아·중국·프랑스·영국·인도 등에 이어 세계 7번째로 성공한 것”이라며, “미사일 전력 증강이야말로 북한의 도발에 대한 확실한 억지력이 될 수 있다”고 발표하였다. 남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이 수중에서 발사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의 전략무기 개발 성공에 주변국들의 마음이 편할 리 없다. 그 중 중국의 반응이 이채로웠다. 중국의 관영 환구시보는 “전략적 가치가 높고 개발이 어려운데다 전투력이 뛰어난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을 보유한 나라는 미국, 러시아, 중국 등 6개국에 불과했는데 여기에 한국이 포함됐다”며 놀라워했다. 이어 “한국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이 놀라운 전술적 능력을 갖췄다는 사실이 확인되었기 때문에 일본이 불안해 하는 건 당연하다”고 논평했다. 자신의 불편한 심경을 일본의 처지로 바꾼 기술이 교묘하다. 같은 날 북한은 열차에서 발사한 탄도미사일 실험에 성공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철도기동미사일연대가 중부 산악지대에서 동해상 800km 수역에 있는 표적을 정확히 타격했다”고 보도했다. 미국 국방부 대변인의 논평이 흥미롭다. 한국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발사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없이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서만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미국의 “한국, 일본에 대한 방어 약속은 철통같다”고 부연했다. 국내외 언론도 북한에 대해서만 지난 12일 1500km 장거리 순항미사일 발사 이후 계속 도발 수준을 높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북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이 화염을 내뿜으며 열차에서 발사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동굴의 우상 남과 북의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한 평가 잣대가 어찌 이렇게 다를까? 만약 북한이 전략무기인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발사 실험에 성공했다면 즉각 유엔 안보리가 소집돼 제재 논의를 시작했을 것이다. 미국은 자국에 대한 심각한 안보 위협으로 간주해 대응에 나섰을 가능성이 높다. 북핵 문제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들이 북한의 비핵화 약속을 믿을 수 없다고 말한다. 북한의 ‘상호 행동에 의한 단계적 비핵화’ 요구를 기만적인 쪼개기 전술로 매도한다. 북미 협상의 핵심은 북핵 폐기와 북한체제 안전보장의 맞교환을 어떻게 하느냐이다. 여기서 어려움은 북핵 폐기와 북한체제 안전보장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핵 폐기는 행동(핵무기·물질·시설 폐기)으로 하는 데 반해, 체제 안전보장은 말(선언·협정·조약 등)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말과 행동 중 어떤 게 더 파기하기 쉬울까? 북한은 미국이 해줄 체제 안전보장은 상황이 바뀌면 언제든 폐기될 수 있는 반면, 자기가 하는 핵 폐기는 되돌리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미국 내 강경파는 북한에게 비핵화의 원칙으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고 되돌릴 수 없는 핵 폐기(CVID)’를 요구한다. ‘선(先)폐기 후(後)보상’의 리비아 해법을 고집한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면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추궁하는 것만큼이나 북한에 대한 안전보장을 어떻게 해줄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하는데도 말이다. 나의 평화와 나의 번영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남의 형편도 살펴야 한다. 내 안전을 위해 군사력을 증강하려면 남의 불안감도 헤아리며 추진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내가 아무리 군사력을 늘려 봐야 상대도 같이 군사력을 강화해 안보는 더 불안해진다. ‘안보의 딜레마’가 발생하는 것이다. 한국이 종합군사력 세계 6위 달성에 이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개발에 성공한 것은 쾌거이다. 주변 강국들에게 휘둘리지 않겠다는 자강 노력의 결실이다. 그러나 이로 인해 치를 비용이 있다. 북한이 안보 불안에 시달리면 핵과 미사일 개발에 매달려 한반도는 점차 핵무기 화약고가 된다. 일본이 이를 가만히 보고 있을 리 없다. 동북아가 군비 경쟁으로 긴장과 갈등에 휩싸이면 우리 민족의 염원인 통일과 번영은 그만큼 멀어지게 된다. ‘동굴의 우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케이-컬처(K-Culture)가 전 세계의 열광을 받았던 것은 인류의 마음 깊은 데 자리한 보편적 감성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케이-컬처는 우리 민족의 본질적 특성을 지키면서도 세계화·정보화 물결에 올라타 인류의 보편적 감성으로 승화시켰다. 우리를 통일과 번영으로 이끌어줄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도 전 세계의 지지를 받아야 가능하다. 남북 공조 속에 주변국의 협조를 얻어야 한다. 우리는 식민지 시절과 분단, 전쟁 등 아픔을 많이 겪었기에 전 세계 인류가 공감할 평화 감성이 풍부하다. 케이-컬처처럼 우리의 한과 염원을 승화시켜 케이-피스 빌딩(K-Peace Building)의 새로운 길을 열기 위해서는 먼저 동굴에서 나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