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소희 (연세대 정치학 박사수료) 간첩에 무겁게 반응하는 기성세대 최근 청주에서 활동하는 간첩단이 공안 당국에 적발되었다. 지역 사회를 거점 삼아 지하 조직을 결성하고, 스텔스 전투기 도입 반대 운동을 주도하거나 국내 주요 정치 이슈를 북한에 전달하고 해외에서 북한 공작원을 만나는 것은 물론 공작금도 받았다는 혐의다.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바에 따르면 이들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향한 충성 맹세를 혈서로 작성하기도 하였고, 남한 사회에서 반미투쟁과 젠더 갈등을 부추겨 사회를 동요시키라는 지령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2016년 서울의 한 PC방에서 체포된 간첩도 국내 정세나 동향을 파악하여 북한에 보내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렇게 이따금 들려오는 간첩 체포 소식은 한반도가 여전히 분단 중이며, 실제 남북한 간에 첩보전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사례일 것이다. 2016년 PC방 간첩사건 ©YTN 뉴스 갈무리 일부 진영에서는 21세기에도 간첩이 있느냐고 반문하는 이들에게 이번 사례를 들며 여전히 한반도는 전쟁 중인 국가이며 사회 곳곳에 암약하는 간첩들이 활약하고 있다는 입장을 보이기도 한다. 분단국가이기에 첩보전을 벌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고, 이에 대한 정부 공안당국의 세밀한 대응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여기에 더해 이들은 더 이상 북한을 노골적으로 적대시하지 않는 시대의 안보 인식을 안일하다 여겨 아쉬움을 나타내며, 북한을 긍정적으로 그려내는 행위가 이적행위, 이른바 ‘간첩질’이라고 폄하하기도 한다. 실제 작년 남한 여성과 북한군 장교의 사랑을 그려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제작진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한 정당이 고발한 해프닝도 있었다. 이 정당은 주적을 구분하지 못하는 대통령과 방송사로 인해 국민들이 선동되었다고 고발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아마도 이들과 같은 부류가 두려워하는 것은 북한에 대한 미화나 긍정적인 사고가 유통될 경우 시나브로 국내 여론이 친북성향을 띄게 되고, 전쟁을 경험해보지 못한 젊은 세대가 북한을 왜곡된 채 인지해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다가 궁극적으로 북한 주도의 통일을 이루는 것일 테다. 정말 많은 비약이 있는 논의지만, 이러한 정서가 국내 주요 일간지가 여론을 독점하고 국내 정세를 좌우하는 프레임을 형성하는 게 가능했던 2000년대까지 한국 사회에 지배적으로 존재했던 사고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공안 당국과 정치권에서는 이 틈에서 나온 이적행위와 간첩 활동에 대한 두려움을 교묘하게 활용해 독재가 종식된 이후에도 정권을 유지 및 강화하거나 정쟁화하였다. 이제까지 세상에 알려진 수많은 간첩 조작 사건들이 이를 방증하는 사례일 것이다. 간첩을 향해 가볍지만 가볍기만 하지 않은 MZ 세대 인식 전쟁을 경험해보지 않은 세대, 북한을 두려워하지 않는 세대의 안보 인식을 안타까워하는 이들의 우려는 유효할까. 간첩이 우리 주변에 나타나 포섭하려고 하거나 개인적인 친밀도를 이용해 간첩 행위에 가담하게 하려 할 때 정말 속수무책으로 넘어갈까.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이런 질문에 참고할만한 논의가 있었다. 간첩 신고 포상금이 최근 20억 원으로 인상되었는데 10년 친구가 간첩일 경우 신고할 수 있는지 여부를 놓고 사용자들에게 의견을 구하는 글이다. 커뮤니티의 여러 글 중 화제가 된 글만 모이는 ‘HOT 게시판’에 등록될 만큼 주의를 끌게 된 이 포스팅에 6만 4천여 명이 조회를 하였고, 1700여 개의 댓글이 달렸다. 대부분 신고한다는 의견이었고 매우 적은 일부가 설득해 자수하게 한다는 것이었다. 더 이상 관계를 지속하진 않겠지만 신고하지 않는다는 반응은 정말 간혹 찾아볼 수 있었다. 여기에 더해 자신이 꿈에 그리던 이상형의 사람과 3년간 교제를 해 왔는데, 어느 날 느닷없이 자신이 간첩임을 고백할 때도 신고할 것인지 묻는 파생글도 화제가 되었다. 이 글에는 4만 천여 명이 조회하였고, 700여 명이 댓글을 남겼으며 대부분 신고한다는 내용이었다. 댓글을 찬찬히 읽어보며 신고를 하는 이유를 살펴보았다. 대부분 현실적으로 일반인이 벌어들이기 어려운 20억 원이라는 막대한 포상금이 주된 유인이었고, 10년지기 혹은 3년간 마음을 다해 사랑한 이에게 속았다는 배신감도 신고의 이유라는 반응이 많았다. 이유를 막론하고 간첩이면 국가 안보를 위해 신고해야 한다는 의견도 종종 볼 수 있었다. 물론 이 같은 반응은 해당 커뮤니티에서만 제한적으로 논의되는 의견이기에 전체 여론을 대변한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인터넷 커뮤니티 여론으로 가늠할 수 있는 간첩에 대한 전쟁을 경험해보지 않은 세대의 입장은 이 단어의 무게가 심심풀이용으로 소비되고 진중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인정과 사사로운 감정에 휘둘려 선동되거나 포섭되기보다 신고를 택한다는 점이었다. 자주통일 충북동지회 소속 회원 F-35A(스텔스 전투기) 도입 반대 1인시위©블로그 사진 갈무리 = 한겨례 실제 이번 간첩 혐의를 받는 청주 지역 활동가들을 다룬 후속 기사들을 살펴보면 국내에서 남한 주민을 포섭해 활동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이 정 · 관계, 노동 및 청년단체의 주요 인사 60여 명을 비롯해 남한에서 지하 조직을 세력화하기 위해 160만 명을 포섭하려고 했다. 이런 포섭 계획이 주목을 받아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었지만, 현실에서는 이들이 연대할 이들을 찾기 어려웠으며 노동조합에서도 조직력을 해칠 수 있다는 연유로 가입을 거절하는 등 북한에 정보를 보고하는 것 외에 활동은 어려웠던 것으로 알려진다. 외려 이들이 북한에게서 역량보다 너무 높은 목표치를 세웠고 결실을 맺지 못하고 있다고 질책당했다는 자료도 나왔다. 이들 활동의 실체를 살펴보면 1인시위, 서명운동 등 사회적으로 인정받지도, 주의를 제대로 끌지도 못한 고립된 활동에 국한되었다. 대중적인 확장성은커녕 포섭을 목표로 했던 단체나 인물에게마저도 거부당한 셈이다. 이번 간첩 사건이 시사하는 바는 명징하다. 이미 체제 경쟁에서 승리한 남한에서 아무리 북한 친화적인 지하 조직이 형성된다 해도 사회적으로 용납되거나 받아들여지는 단계는 한참 넘었다는 것, 더불어 공안몰이용으로 간첩이 소비되기 어려운 환경에 들어섰다는 것이다. 현실은 이런데도 국회에서는 간첩이 대선 캠프에 암약한다거나 지난 대선에서 간첩의 도움을 받은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이 인식이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사고인지 아니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정쟁용으로 몰아가기 위해 나온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현실과 동떨어진 코미디 같은 소리에 진심이 아니라면 웃고 싶고, 그게 아니라면 안타까워 울고 싶은 촌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