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혜원 (북한대학교대학원 박사수료) 얼마 전 북한은 ‘청년절’인 8월 28일과 정권 수립 73주년 기념일인 ‘9.9절’, 당 창건 기념일인 10월 10일을 맞아 평양 김일성광장, 개선문광장, 4.25문화회관 광장 등에서 청년 · 학생들의 무도회를 열었습니다. 평양뿐만 아니라 북한 전역에서 국가적 명절 혹은 정치적 이벤트를 기념하는 무도회가 해마다 정기적으로 열립니다. 지방 도시에는 주로 김부자의 동상이나 영생탑 주변에 만들어진 광장을 이용하는데, 영생탑은 선대 수령들인 김일성과 김정일 사후 이들의 영생을 기리는 문구가 새겨진 탑입니다. 청년절 경축 야회 ©노동신문=SPN서울평양뉴스 북한은 군중무용(Mass dance)을 “인민들이 대중적으로 추는 무용 형식”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인민대중 속에서 집단주의 정신을 키우며 문화생활을 보장하는 중요한 수단의 하나”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쉽게 말해서 군중무용은 북한의 정치적 행사나 공적 자리에서 추게 되어있는 공식적인 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군중무용은 그 자체로 정치적 행사의 한 종류입니다. 따라서 군중무용에 참석한 사람들은 공식적으로 보급된 군중무용의 춤가락이 아닌 다른 몸짓을 할 수 없습니다. 자칫 의식의 흐름에 맡긴 자유로운 동작으로 군중무용의 일치성을 해친다면 비판 무대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북한의 젊은이들은 군중무용 행사를 마냥 싫어하지만은 않습니다. 왜냐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남녀 쌍을 지어 손을 맞잡거나 손뼉을 치면서 움직이는 군중무용이 약간의 설렘을 주기 때문입니다. 우선 군중무용 행사가 예정된 날이면 남학생들은 깔끔한 정장 차림에 여학생들은 ‘치마저고리’라고 불리는 한복을 즐겨 입습니다. 특히 2000년대 이후 무릎을 살짝 덮을 정도의 길이로 전통적인 한복보다는 다소 짧은 치마가 유행하면서 한복에 대한 젊은 여성들의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한복은 북한에서도 시대 변화에 맞게 색감과 디자인, 길이가 다양해졌습니다. 여전히 편리함 때문에 원피스나 스커트를 입는 여학생들도 많지만, 군중무용 행사는 화려한 한복을 입고 아름다움을 뽐내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청년절 경축 학생무도회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군중무용은 노래 한 곡에 몇 가지 안 되는 동작들을 반복적으로 하다 보니 따라 하기 쉽습니다. 군중무용 가요는 경쾌하고 즐거운 노랫가락으로 편곡되고, 군중무용은 마주한 사람뿐만 아니라 옆 사람과 그 옆 사람까지 자연스럽게 마주하거나 손을 잡을 기회가 많습니다. 어떤 학생들은 평소 맘에 드는 사람이 있다면 그와 마주할 수 있는 자리를 은근슬쩍 차지하기도 하고, 또 어떤 학생들은 대놓고 자리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방법으로 누군가에 대한 불편한 심경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군중무용에 참가하여 다른 대학교 학생들을 감상하는 것도 하나의 재미입니다. 이공계 대학교는 주로 남학생들이 많아 단조로운 색감을 만드는 반면 경상 계통의 대학교는 여학생들이 많아 화려한 색감을 자랑합니다. 때로 호기로운 남학생들은 “야, 이거 냄새부터 다르다야” 하면서 타 대학교의 여학생들과의 혼성 군중무용을 제안하기도 합니다. 다만, 이런 경우에 한두 사람의 개별적인 행동보다는 주로 ‘소대장’이나 ‘대대장’ 등 학생 간부들이 조직적으로 제안합니다. 북한의 대학교는 전부 군대식 행정체계로 학급은 소대로, 학부는 중대로, 한 학년은 대대로, 전체는 연대 혹은 사단으로 분류됩니다. 군중무용을 통해 새로운 친구를 사귀거나 즐거운 분위기를 이어가고 싶은 학생들은 ‘뒤풀이’를 통해 여흥을 이어가기도 합니다. 즉흥적으로 만들기도 하고, 군중무용 이후에 어디 가서 놀자는 계획을 미리 세우기도 합니다. 북한이 ‘집단체조’라 부르는 매스게임 못지않게 군중무용도 정해진 동작과 룰로 제한된 일종의 ‘정치적 행사’이지만, 북한 청년들에게 공식적으로 허용된 문화생활이기도 합니다. 북한 집단체조 ‘빛나는 조국’ 공연 모습(2018.9) ©AP연합뉴스 물론 군중무용 참여를 질색하는 친구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하고, 또 정해진 동작만 해야 하는 딱딱한 분위기가 싫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햇볕 뜨거운 날 땀을 뻘뻘 흘리며 춤을 추거나 추운 날씨에 얇은 무도복을 입고 벌벌 떨기도 하고, 눈 오는 날 발이 시려 동동 구르며 억지로 참여하는 상황도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군중무용도 행사이므로 ‘합당한 이유 없이’ 자주 빠지면 문제가 됩니다. 지난해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제정한 북한은 최근 반사회주의적이고 비사회주의적인 청년들의 문화 활동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남한의 매체나 허가되지 않은 외국 영상물을 보면 무조건 실형에 처하고, 남한식 말투나 옷차림을 엄하게 단속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즐거움과 행복의 표현마저도 국가에서 정해준 대로만 해야 하는 북한의 청년들이 새삼 안쓰럽게 느껴지는 10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