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익(아우구스티노) 신부 | 의정부교구 후곡 성당 지난 6월,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9일 기도를 전 교구민이 한마음으로 기도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옛날부터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해마다 6월이 되면 6·25 노래를 부르며 공산당을 때려잡자는 교육을 받아왔지요. ‘반공 방첩’이 아이들 과자 포장지에 쓰여있던 때입니다. 그때의 6월은 동족상잔의 비극이라는 말은 있었지만, 화해와 일치라는 말은 없던 때입니다. ‘우리나라’는 남쪽만을 지칭하는 듯했고, 북한은 괴뢰군, 공산당 등으로 부르며 적대 감정을 늘 부추기는 교육을 받았습니다. 지금의 6월은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달입니다. 적개심을 키우는 달이 아니라, 화해하고 서로 일치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달입니다. 그래서 9일 기도를 바칩니다. 평화통일을 지향하며…, 정치 지도자들을 위하여…, 한반도의 비핵화를 위하여…, 한반도의 복음화를 위하여…, 이산가족과 탈북민들을 위하여…, 진정한 용서와 화해를 위하여…, 한반도에서 종전이 선언되고 평화 체제가 실현될 수 있도록… 기도드립니다. 주보 본당 소식란에 이러한 9일 기도 안내를 싣고 교우들에게 알렸습니다. 앞으로 이런 지향으로 매일 미사 후 기도를 바친다고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미사 후 어떤 신사분이 저에게 한마디 하십니다. “한반도의 종전을 위해 기도해서는 안됩니다. 종전 선언이 되면 미군이 철수할 것이고, 그러면 공산당이 쳐들어와서 남한은 적화될 것입니다. 북한 괴뢰군이 원하는 것이 미군 철수 아닙니까? 북한이 주장하는 종전 선언을 우리가 따라 해서야 되겠습니까?” 물론 논리가 좀 그렇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계십니다. 이 형제님이 걱정하는 것은 미군의 철수였습니다. 미군 없이는 우리나라가 안전할 수 없는데, 종전이 되면 미군이 철수할 것이고 이는 북한이 바라는 것이다. 그러니 한반도 종전 선언을 위한 기도를 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자신이 월남전 참전 용사이심도 밝히셨습니다. ‘미군이 철수하자 베트남이 공산화된 것’이라며, 이러한 말을 신부님께서 주교님께 말씀드리시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이 형제님은 아주 정중하게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신부님께서 주교님께 말씀드리기 어려운 것도 잘 알고 있다고 하셨지요. 한편으로는 그 형제님의 마음도 이해합니다.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하는 기도는 더 이상 한반도에 전쟁이 있어서는 안되며, 평화체제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기도입니다. 미군이 철수하고 안하고는 미국 마음입니다. 그리고 미군이 그리 쉽게 철수할 것 같지는 않다고 했습니다. 또한 베트남과 우리는 전혀 다른 상황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형제님을 설득시킬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저의 생각을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저와 마찬가지로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시는 분이십니다. 늘 미사에 잘 참석하고 계십니다. 정전협정, 종전협정. 전쟁을 잠시 중단하고 있는 한반도에 전쟁이 끝났음을 알리는 종전협정은 꼭 필요한 것입니다.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이 상황을 끝내는 것이 남과 북에 모두 도움이 되는 길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남북 분단선이 아니라 한반도 남쪽과 북쪽, 동쪽과 서쪽이겠습니다. 서늘한 바람이 불고 좋은 계절이 왔습니다. 왠지 고향이 생각납니다. 얼마 전 한가위 명절도 지냈습니다만 고향이 그립습니다. 저는 부산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고향으로 생각되진 않습니다. 할아버지의 나라가 조국(祖國)이고, 할아버지가 사시던 곳이 나의 뿌리입니다. 그곳이 나의 고향입니다. 그곳은 북녘땅입니다. 종전 선언이 꼭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