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함, 그 씁쓸함에 대하여

황소희 (연세대 정치학 박사수료) 평화를 원한 전쟁 대비 주적(主敵). 말 그대로 주된 적을 일컫는 용어다. 국내에서는 1995년 ‘서울이 불바다가 되고 만다’고 북한이 발언한 이후, 김영삼 정부가 대북 강경책으로 선회하며 국방백서에서 북한을 칭하는 단어가 되었다. 주적이라고 지목된 대상이 북한을 지칭하기에, 북한에 속한 모든 이는 한국 군대의 적으로 규정되는 의미이기도 했다. 정부가 바뀌고, 남북관계도 교류가 늘어나고 이전과는 결이 조금 달라지면서 주적 개념 역시 변화를 맞게 된다. 북한의 일반 주민은 주적에서 제외되기도 했고, 주적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거나 ‘우리의 적’이라고 바꾸는 일도 있었다. 북한과 휴전한 상태라는 점에서 북한이 적이라는 개념이 완전히 틀렸다고만 볼 수는 없겠지만, 현실주의적인 시각으로 생각해보면 북한만이 우리의 적인가에 대해서도 의문이 남는다. 영원한 적도 우방도 없다는 것을 기본 전제로 두는 국제정치의 시각으로 본다면 말이다. 국력이 강한 인접국의 존재만으로도 해당 국가는 생존에 위협을 받는다. 국가 간 분쟁을 물리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권위적인 존재가 국제관계에는 부재하기 때문이다. 국가 간 관계는 말 그대로 약육강식,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와 같으며 이런 환경에서 각 국은 스스로 생존을 도모하려면 국력을 신장해 타국의 침략을 선제적으로 방어해야 한다.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Si vis pacem, para bellum)”는 말이 오랫동안 회자된 까닭이다. 평화롭다만 긴장 가득한 한반도 힘(power)이라는 렌즈, 국력을 중심으로 한반도의 안보 상황을 조명해 본다면 북한 외에도 주변에 일본, 중국, 러시아와 같은 강대국이 포진해 있는 환경이 안정성을 담보한다고 보기 어렵다. 북한과 전쟁을 하기 전만 하더라도 한반도는 일본의 식민지였으며, 일본은 전 세계 전범 국가로 분류될 만큼 대규모 전쟁을 일으킨 전례가 있다. 한반도 역사에 침략한 사례가 비일비재한 중국은 미국과 세계 패권을 놓고 자웅을 견주는 강국이 되었으며, 이에 조응하여 국방력도 강화되는 중이다. 소련 붕괴 이후 세계 패권을 미국에 넘겨주었다고 평가받는 러시아이지만, 2000년대 이후에도 이 국가는 옛 소비에트 연방에 속해 있다가 독립한 조지아의 남오세티야 지역을 공습해 해당 지역을 분리 독립시켰다.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 지역을 강제로 러시아에 병합시킨 사례가 불과 2014년의 일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국 정부가 국방력을 꾸준히 증강하고 타국과 비교해 국력 대비 국방비용이 높은 것이 이해가 안 되는 것만은 아니다. 2021 GFP(Global Firepower) 세계 군사력 지수에 따르면 한국의 국방력은 세계 6위고, 전국경제인연합회의 분석은 국방비 지출이 2020년 기준 10위라고 발표할 만큼 한국의 군력 수준은 전 세계적으로도 상위 수준에 속해 있다. 공식적으로는 아직 종전을 이루지 못한 북한의 남침을 대비한다는 명분으로 군사력을 꾸준히 증강해 오고 있지만, 종전을 해도 한국군은 한반도 주변의 강국에게서 안보를 지키기 위해 지금과 같은 국방비 지출을 크게 개선하지는 못할 것이다. 정부가 주적으로 북한을 설정했다가 ‘대한민국의 주권, 국토, 국민, 재산을 위협하고 침해하는 세력을 우리의 적으로 간주한다’고 입장을 선회한 것은 남북관계만을 국가안보의 현안으로 한정했던 과거보다 현실적인 안보관을 반영한 결과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사진 = 세계 군사력 순위 © 연합뉴스 주적은 전쟁 자체라는 북한이라지만 최근 북한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주적은 남한이나 미국과 같은 특정한 국가나 세력이 아니라 전쟁 그 자체라고 발표한 바 있다. 자신들의 무력 강화는 전쟁을 방지하고 국권을 수호하기 위해, 전쟁 억제력을 키우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남한에겐 위협을 억제해야 한다는 근심과 피해의식에서 벗어나야 하며, 미국이 자신에게 적대적이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근거는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북한의 주적 개념이 남한이 아니라 전쟁이라고 일컬은 이 발언은 주목을 받았다. 이 같은 발언은 북한의 국방발전전람회, 그러니까 북한의 군과 관련된 신기술을 진열하는 자리에서 이루어졌다. 더불어 당시 김 국무위원장은 현대식 무기 도입의 필요성도 부연해 논한 것으로 알려진다. 일견 보기에 북한의 이런 발언은 한국이 과거부터 지금까지 점진적으로 주적의 개념을 바꾼 것처럼 북한도 안보관에 변화가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와 같은 발언의 내막을 추론해 본다면, 결국 자신들이 핵무기를 비롯해 군사력을 증강해 온 것은 국가로서의 당연한 권리이기에 합당하며, 앞으로도 ‘전쟁’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를 지속할 것이라는 논의로 귀결된다. 주체가 누구인지 설정할 수 없으나 전쟁이라는 주적에게서 방어하려면 현대화된 무기체계를 구비해야 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국가가 추구하는 보편적인 안보 정책, 국가라면 당연히 자조(self-help)를 위해 국력을 강화한다는 것을 논한 것이기도 하다. 물론 북한의 입장을 심정적으로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미국과 적대상태에 놓여 있고, 미국의 대북정책은 제재와 압박이라는 큰 틀을 벗어난 적이 없다. 간헐적으로 지도자 수준의 협상이나 북미 간 합의가 이루어지기도 했으나 본질적인 관계의 개선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북한의 선택지에 연대, 교류, 협력과 같은 가치보다 힘의 증강이라는 것이 최우선적으로 고려되는 것에는 씁쓸함이 감돌 수밖에 없다. 강해져야 안보를 담보할 수 있다는 것은 맞다. 그러나 강해지려고만 하는 대상이 곁에 있을 때 주변에 있는 행위자들이 덩달아 불안해진다. 생존에 대비하기 위해 힘을 추구하고, 그것이 인접국을 자극해 같이 국방력을 증강하게 하여 궁극적으로 모두가 불안정한 상태로 귀결되는 것, 각자의 안정성을 추구한다고 하나 결과적으로 모두의 안보가 위협당하는 안보딜레마(security dilemma)의 고리가 끊이지 않는 한반도의 상황은 언제 바뀔까. 강함, 그 씁쓸함에 대하여 우린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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