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지만 같은 길

정다빈(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 연구원, 샬롬회 회원) “천주교가 왜 조선학교를 돕나요?” 조선학교 아이들과 재일동포들을 만나는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진행하며 참 많이 받았던 질문입니다. 여러 번 받은 질문임에도 그때마다 선뜻 대답하기 참 어려운 질문이었습니다. 답이 궁색해 말문이 막힌다기보다는 날 선 질문 뒤에 어린 비난의 시선에 왠지 힘이 빠지는 느낌이 들었던 탓입니다. 주로 조선학교는 ‘북한과 관련된 학교’라는 선입견이 강한 일부 천주교 신자들이 물어오는 질문이지만, 조선학교에 아이들을 보내는 재일조선인 부모님들께도 종종 같은 질문을 받곤 합니다. 가톨릭 신자가 드문 일본에서 천주교를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아 존재 자체가 낯선 이유도 있겠지만, 천주교 기관이 신앙과는 전혀 접점이 없는 조선학교를 지원하고 동반하는 일에 왜 그렇게 열성적인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느끼는 것도 사실인 듯합니다. 물어오는 이가 누군가에 따라 대답도 달라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동포들에게는 “조선학교가 주는 힘이 있다”고 진솔한 마음을 전하거나, “여러분이 너무 좋아서 그렇다”며 애교를 섞어 답하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우리 활동에 비판적인 천주교 신자들에게는 오해를 해소하고 만남과 교류의 의미를 전하기 위해 답이 길어지곤 합니다. 이처럼 나름대로 이런저런 답을 준비하고 말해왔지만, 사실 이 질문은 제 안에서도 완벽히 해소되지 못한 채 맴돌던 질문이기도 했습니다. “아! 그렇구나, 정말 그렇구나!” 싶은 답을 찾은 순간은 우연히 찾아왔습니다. 프로젝트 준비를 위해 찾은 시모노세키에서 역시 그곳의 조선학교를 방문하고자 들른 선생님 한 분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안나’라는 세례명을 가진 선생님은 천주교 신자였고, 재일조선인 3세였습니다. 지난 글들에서 소개했듯 재일조선인의 삶도 무척 다양합니다. 동포들이 전부 조선학교에 다니는 것도 아니고 민족교육을 선택하는 동포들은 오히려 소수입니다. 따라서 재일조선인이면서 천주교 신자라는 것이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안나 선생님은 구교우 집안에서 자란 독실한 가톨릭 신자면서 조선학교를 나와 조선학교에서 선생님으로 일했고, 재일조선인을 위한 신문과 조선학교 소식을 다루는 잡지를 만들며 평생을 동포 사회 안에서 살아온 아주 드문 존재였습니다. 선생님은 살면서 단 한 번도 자신처럼 가톨릭 신자면서 조선학교를 다닌 동포는 만나본 일이 없다고 얘기할 정도로 재일동포 사회에서도 천주교 신앙과 조선학교는 양립할 수 없던 두 갈래 길이었습니다. ©야마구치 조선초중급학교 페이스북 안나 선생님이 조선학교에 진학했던 1970년대, 천주교 동포들에게 조선학교나 조총련은 우리와는 다른 존재를 넘어 일종의 적대세력이었고, ‘빨갱이’라는 인식으로 말조차 섞고 싶지 않은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수녀가 된 고모, 사제가 된 삼촌이 여럿 있는 신앙심 깊은 가족들에게 선생님의 조선학교 진학은 큰 파문이었고, 친척들 사이에서는 다른 세계로 떠나 버린 존재로 여겨지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이 조선학교로 진학한 것은 일본 학교에서 잘 생활하면서도 마음 한편에 무거운 돌을 안고 사는 느낌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무슨 벌을 받아서 왜 조선 사람으로 태어났을까?”하는 마음이 늘 가슴 안에 있었고, 조선학교에서 드디어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선생님은 하느님께 “하느님은 저를 도와주시지 않았지만, 조선학교가 저를 구원해주었습니다”라고 고백하며 기도하곤 했다고 합니다. 물론 당신 역시 조선학교에 진학하면서는 성당에 다니지 않기도 했고, 다시 신앙 안으로 돌아오고서도 두 가지 정체성 사이에서 외로움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께 어떻게 이질적으로 보이기도 하는 두 개의 정체성을 통합할 수 있었냐고 물었을 때 돌아온 답변은 자신의 삶에 존재한 두 개의 길은 다른 길처럼 보였으나 결국 같은 길이었다는 답이었습니다. ©야마구치 조선초중급학교 페이스북 조선학교에서 민족 정체성을 지키는 삶과 신앙인으로서 하느님 나라를 만들어가는 삶은 모두 결국 어떤 인간도 차별받지 않고 그 존엄함을 인정받으며 온전한 성장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길이었다는 당신의 삶 전체를 걸친 통찰이었습니다. 일본 사회에서 재일조선인으로, 동포 사회에서는 천주교 신자로, 선생님의 삶은 소수자면서 다시 소수자인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신께서는 “소수자로서의 삶은 곧 사랑이었다”고 말합니다. 조선학교와 신앙은 모두 자신의 삶을 더욱 풍부하게 하며, 더 사랑하는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안나 선생님은 이처럼 자신의 삶 안에서 하느님 나라를 만드는 일과 조선학교를 위하는 일이 만날 수 있었던 것이 진정 축복이었다는 이야기를 나누어주셨습니다. 더불어 예수회에서 조선학교를 지원하는 프로젝트를 한다는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천지개벽의 느낌을 받았다고 합니다. “아,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싶은 감동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선생님과의 만남이 우리에게 더 큰 감동과 격려였음은 그 만남 이후 오래오래 당신께서 나눠주신 통찰을 곱씹으며 깨닫게 되었습니다. “천주교가 왜 조선학교를 돕나요?”라는 질문에 저는 지금은 조금 더 자신있게 답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과 조선학교의 가치는 각자 표현은 다르지만 결국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기에 우리는 조선학교와 함께 걸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길은 바로 모든 인간이 차별 없이, 존엄하게 온전한 성장을 향하는 길, 곧 하느님 나라를 이 땅에 열어가는 길일 것입니다. ©야마구치 조선초중급학교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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