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미 헬레나 (한국가톨릭여성연구원 대표, 팍스크리스티코리아 공동대표) 이번 호에서는 『피스빌딩 - 가톨릭 신학, 윤리, 그리고 실천』의 2장인 노틀담 대학 크록 국제 평화학연구소 존 폴 레더락(John Paul Lederach)의 글, “인간성으로 돌아가는 긴 여정” 가운데 일부를 소개한다. 레더락 교수는 갈등 전환 활동의 선구자로 널리 알려진 연구자로, 아프리카 여러 나라에서 뿐만 아니라 콜롬비아, 필리핀, 네팔, 타지키스탄에서 중재 활동에 관여해 왔다. 아래 글은 레더락 교수가 콜롬비아 내전 상황에서 무장 세력과의 대화에 직접 관여했던 에체베리 신부와 나눈 인터뷰의 일부이다. (사진1) 2016년 콜롬비아 보고타 볼리바르 광장(Bolivar Square)에시민들이 모여 평화 행진을 하고 있다. © Jennifer Alarcon/AP 1995년에 설립된 국가조정위원회는 콜롬비아에서 정부와 여러 무장 단체 사이의 정치적 협상을 위한 공식, 비공식 공간을 통해 교회 지도부를 지원하며 다방면의 시도와 요구를 조정하는 작업을 도맡았다. 다리오 신부의 직무는 콜롬비아의 여러 무력 분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협상 시도를 지원하고, ‘콜롬비아인 사이의 성공적인 화해 프로세스’를 만드는 것이었다. 국가조정위원회는 ‘국내에 영구적인 평화의 정치’를 가능하게 할 구조를 제공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영구성이라는 관념에 대한 강조는 정확하게는 정권이 생겨났다가 없어지는 수십 년 사이 평화 프로세스도 부침을 겪으면서 생긴 것이다. 그 수십 년 동안 다양한 역할에 참여했던 교회 지도자들은 평화를 지탱하기 위한 더 지속적이고 영구적인 구조의 필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다리오 신부는 사제가 된 지 20년이 넘었다. 날마다 과정도 불투명한 상황에서 다루기 힘든 정치 게릴라 지도자들과 만나야 하는 활동에 관여하게 된 어떤 신학적 동기가 있느냐는 질문을 받자, 그는 웃으며 대답했다. “물어봐 주셔서 기쁩니다. 그저 상황이 요구하기 때문에 활동하는 것뿐이지, 왜 하는지 이유를 생각할 틈이 늘 생기는 건 아니죠.” 이어 그는 다양한 생각과 이유를 설명한다. 그가 몸담은 수도회의 소명은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 도움과 지원을 제공하는 것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일관된 주제와 공의회 이후 교황들의 가르침은 대화가 필요하며, 그것이 현실주의자들이 인정하는 것보다 훨씬 더 현실적이라는 게 요지였다. 다리오 신부는 자기 나라(콜롬비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층위의 갈등 수준에 대응하고 평화를 구축할 능력을 갖춘 교회가 필요하다고 믿고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사진2) 에체베리 다리오 신부 © elpais.com 복음 선포는 사제 성소를 받은 사람인 저의 카리스마입니다. 저는 교회의 사람이며 우리 사제들은 콜롬비아를 평화로운 나라로 만들고자 노력하는 중입니다. 사제직에 충실하게 살아간다는 것은 제가 이 나라의 긴급한 필요에 부응해야 한다는 뜻이고, 가장 역사적이고 긴급한 요청은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무력 분쟁을 해소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 무력 분쟁에서 벗어날 것인가가 신부로서 해야 할 일입니다. 콜롬비아의 다양한 무장 세력 지휘관들, 경우에 따라서는 악명 높은 살인자들과도 대화를 모색하는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질문받자, 그는 “어떻게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삶을 파괴하고 인권의 모든 의미를 잔인하게 부순 사람들과 눈을 맞추고, 대화를 시도할 수 있느냐는 거죠?”라고 수사학적으로 되물으며 말을 이었다. 많은 밤, 거의 잠을 잘 수 없었다고 고백해야겠습니다. 때로는 화가 나서 또 때로는, 이런 말을 해서 미안하지만, 구토가 나올 것 같은 느낌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향해 사람 대 사람으로서 나아가야 합니다. 인간적인 환경을 구축하고, 상대를 판단하지 않으면서 신뢰를 구축하고, 한 손에는 무기를 들었으나 내 묵주나 십자가를 갖고 싶다고 다른 손을 내밀고, 미사, 성체성사, 특히 고해성사를 청하는 게릴라를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나는 그들에게 묻습니다. “어떻게 여전히 총을 들고 누군가를 납치하면서 성사를 원할 수 있는 거죠?” 그러면 그들이 말합니다. “신부님, 그건 제가 아니라 조직의 결정입니다. 저는 조직에 갇혀 있어요. 명령을 따라야 합니다. 저도 이 분쟁이 끝나면 좋겠지만 제가 끝낼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그런 갈등 양상과 제도의 악을 보면서, 그 사람만큼은 인격을 갖춘 한 인간이라고 간주합니다. 때로는 슬픈 마음으로 그들을 바라보지만, 그들이 경험하는 고통을 나누는 감각도 함께 얻었습니다. 이런 감각이 그들과 더불어 신뢰와 존중의 환경을 구축하게 하고, 이런 관계가 다시 그들에게 자신의 책임에 대해 더 직접적이고 깊이 이야기하도록 도와줍니다. 나는 교회의 사목자로서 그들에게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그들이 피해를 입힌 사람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존중할 것을 요청합니다. 그들이 개인적 평화를 진지하게 추구하고자 한다면, 책임과 배상, 진실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평화는 책임과 함께 오는 것이니까요. 무장 세력과 처음으로, 그것도 그들이 선택한 환경에서 대면해야 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교회 대표들은 팀을 이루어 활동하려고 노력한다. 수십 년 동안의 경험으로 보건대 교회는 거의 비공식적 만남을 통해 관계를 형성하고 발전시켜 왔지만, 이런 일에 주교 한 사람이 같이 간다면, 대화를 더 쉽게 만들고 교회에 거는 기대와 요청을 증가시킨다는 면에서 훨씬 좋을 것이다. 다리오 신부는 존중의 중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한다. “나는 그들에게 존중을 보여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애를 씁니다. 나는 자신들에게 동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장 세력을 모욕하는 경향이 있는 주교나 성직자들과 갈등을 겪기도 했습니다. 우월한 듯 행동하기보다, 상대를 존칭으로 부르는 등 개방적인 태도와 존중하는 자세를 유지하는 게 중요합니다. 나는 이런저런 설득 방법을 동원해서, 무기를 가져오지 않는 한 미사에 와도 좋다고 그들을 초대했습니다. 죄는 거부할 수 있지만 사람에게는 열려 있어야 합니다.” 50년이나 이어진 전쟁에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을 위해 미사를 봉헌하러 사무실을 떠나기 전에, 다리오 신부는 자신의 전망을 밝히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평화를 추구하는 일은 콜롬비아에 부여된 하나의 명령입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든 일반 시민이든 모두 동참해야 합니다. 우리는 평화라는 강의 저마다 다른 기슭으로부터 다다를 수 있지만, 교회라는 기슭으로부터 나온 우리는 평화를 추구하는 일을 하나의 사목으로 떠맡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