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익 아우구스티노 신부 (의정부교구 후곡 성당) 동네 길을 걷다 보면 슬슬 피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닥에 떨어져 있는 은행나무 열매입니다. 그 열매는 매우 좋은 맛과 훌륭한 영양소를 가지고 있지만, 처음 만나는 열매는 그다지 향기롭지 못합니다. 땅에 떨어져 사람들에게 밟히면 뒷간 냄새가 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밟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피해 다닙니다. 어쩌다 밟으면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윽! 밟았구나. 이 열매는 잘 수거하여 일정한 과정을 거치면, 그 냄새는 없어지고 깨끗한 모습으로 나에게 옵니다. 맛이 좋은 은행 열매는 비싸게 팔리지요. 먹으면서 이것이 처음에 뒷간 냄새가 났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습니다. 온몸으로 은행을 털어 모으고 나면, 몸에서 냄새가 한동안 오래 가시지 않습니다. 혜화동 대신학교에는 큰 은행나무가 있어서 그 한 나무에서 나오는 열매를 모든 신학생들이 한동안 풍족히 먹었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먹을 때는 좋은데 처음 수확할 때 고충이 많다는 것을. 혜화동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은행나무 우리 성당 근처에도 은행나무들이 많이 있는데 암컷과 수컷이 있습니다. 수컷은 별다른 문제가 없으나 암컷이 문제입니다. 교우 중에 누군가가 나에게 말씀하십니다. “구청에 말하면 수컷으로 바꿔줍니다.” 즉 암컷을 없애버리고 수컷으로 바꿀 수 있다는 말입니다. “아, 그런가요. 알겠습니다.” 하고 대답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암컷을 없애 버려서야 되겠는가 생각합니다. 같이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나름대로 존재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구청에 연락합니다. 나무 근처에 망을 설치해 달라고. 열매가 바닥에 뒹굴지 않도록, 잘 모을 수 있도록 망을 쳐 달라고 했습니다. 열매를 맺는 암컷 은행나무가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미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함께 살아가야 할 존재입니다. 그 정도 불편함은 감수할 수 있습니다. 죽을 죄를 지은 것은 아니지요. 은행나무 열매와 싸울 필요가 있겠습니까? 미워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죽이려고 달려들 이유가 있겠습니까? 그 열매가 발에 밟히고 고약한 냄새가 신발에 묻어 나를 괴롭힌다고 그 나무를 없애자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 정도 이유로 죽이겠다고 할 순 없습니다. 내 기분이 나쁘다고 그 대상을 없애 버리자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은행나무는 잘못한 것이 없기 때문이죠. 그가 잘못한 것이 없지만 화내고 미워하고 싸웁니다. 쓸데없이 은행나무에게 상처받을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은행나무는 자연의 섭리대로 태어나 자라고 열매 맺으며 살다가 아무 원한도 남기지 않고 사라집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어떤 이유에서든 용서할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살다가 미처 용서하지 못하고 큰 원한을 품고 생을 마감합니다. 죽기 전에는 꼭 용서하십시오. 다른 사람에게 받은 마음의 상처를 깨끗이 씻고, 모든 것을 용서하고, 주님 품으로 돌아가야겠습니다. 죽기 전에는 용서해야 한다면, 좀 더 일찍 용서하면 어떨까요? 미리 용서하는 겁니다. 그러면 남은 삶이 더욱 행복해지지 않을까요? 송봉모 신부님의 ‘상처와 용서’에서 본 글입니다. 형제들이여, 우리 서로 가까이 다가앉자.우리를 떼어놓는 모든 것을 잊어버리자.적이란 존재치 않는 것.이 세상에는 다만 불행하고 불쌍한 사람들만이 존재하는 것.우리가 계속 가질 수 있는 행복, 유일한 행복이 이 세상에 있다면그것은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면서 사랑하는 것뿐이다.- 로맹 롤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