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주석 베드로 신부(의정부교구 민족화해위원장,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소장) © BBC NEWS KOREA 코로나19는 분명 북한 주민들의 고통을 가중하고 있을 것입니다. 코로나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와 협력하고 백신 도입도 적극 추진해야 할 것 같은데, 백신 지원까지 거부하는 현재 북한의 모습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사실 원래 북한도 개발도상국에 백신을 지원하기 위해 만든 프로그램인 코벡스 AMC에 참여하고 백신 지원을 요청했었습니다. 그런데 올해 초 코벡스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170만 회 분 지원을 결정했을 때 북한 당국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지난 9월 초 시노팩 백신 300만 회 분에 대해서도 북한은 더 열악한 국가에 배정하라면서 거부 의사를 밝힙니다. 북한 당국이 이렇게 백신 지원을 거부하는 이유에는 우선 수량의 문제가 있다는 분석이 가능합니다. 백신을 통한 집단면역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전 국민 70% 접종이 필요한데, 현재까지 언급된 수량은 턱도 없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안전성에 대한 의구심이 있습니다. 지난 5월 4일 노동신문은 "왁찐(백신)이 결코 만능의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은 다른 여러 나라의 실태가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며 "효능이 우수한 것으로 평가됐던 일부 왁찐들이 심한 부작용을 일으켜 사망자까지 초래된 것으로 해 여러 나라에서 벌써 사용을 중지시켰다"고 주장했습니다. 더 나아가 백신 접종과 함께 보완되어야 할 방역체계와 치료체계에 대한 고민도 있을 것입니다. 노동신문은 "악성 전염병 사태의 장기화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며 "해를 이어가며 원만히 진행할 수 있게 방역체계를 우리 식으로 완성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 MBC 뉴스 가톨릭구제회(Catholic Relief Services 약칭 CRS)와 함께 수많은 나라에서 원조 활동에 참여했던 윌리엄 헤들리(William R. Headley)신부는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도 신뢰 관계 형성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는 2004년 12월 쓰나미가 휩쓸고 간 인도네시아 반다 아체(Banda Aceh)의 사례를 설명하는데, 고립된 지역에 살면서 그리스도교나 서구 세계를 매우 이질적으로 느끼며 경계하던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는 먼저 그들의 친구로 다가갈 필요가 있었습니다. CRS는 반다 아체의 피스빌딩 사업의 일환으로 지역경제를 돕기위한 시장을 만들었습니다. ©Caritas 언뜻 이해하기 어렵지만,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아체 지역 주민들은 무슬림 여성을 위한 예배용 깔게와 베일을 우선적으로 원했다고 합니다. CRS 긴급 대응팀은 이러한 주민들의 요구를 수용했는데, 헤들리 신부는 초창기 아체의 주민들에게 그들이 원한 종교 용품을 제공한 것이 신뢰 형성에 도움이 됐다고 평가했습니다. 이러한 신뢰를 바탕으로 가톨릭구제회는 2007년 말까지 인도네시아에 1억 6,200만 달러 이상을 지출했습니다. 이 지원금은 학교, 병원, 교량, 도로 같은 주택공급과 기반시설 사업 그리고 식량, 대피소, 의료 지원, 깨끗한 물, 위생용품 같은 긴급 원조에 사용되었습니다. 서구사회가 북한을 잘 믿지 못하겠다는 것처럼 북한 역시 외부 세계에 대한 신뢰가 부족합니다. 아직 미국과 전쟁 중에 있는 북한 입장에서는 섣불리 백신을 도입하다가 ‘제국주의’ 세력에 끌려다닐 수 있다는 우려를 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화해를 위해 기도하는 한국 천주교회가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황금률’을 앞장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