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희 모이세 신부(마두동성당 주임사제) ■ 성경 말씀 11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와 갈릴래아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12 그분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시는데 나병 환자 열 사람이 그분께 마주 왔다. 그들은 멀찍이 서서 13 소리를 높여 말하였다.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14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 하고 이르셨다. 그들이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해졌다. 15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16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18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19 이어서 그에게 이르셨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루카 17,11-19)윌리엄 브레시 홀 <예수님께 감사하러 돌아온 나병 환자 한 사람> ■ 성경 해설 이달의 복음은 예수님을 만난 나병 환자 열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의 율법에 따르면 나병 환자는 사람들 가까이 다가갈 수 없습니다. 그는 옷을 찢어 입고 머리를 풀고 콧수염을 가린 채 ‘부정한 사람이오.’, ‘부정한 사람이오.’ 하고 외쳐야 했습니다. 또한 진영 밖으로 나가 혼자 살아야 했습니다.(레위 13,45-46 참조) 그러기에 나병 환자 열 사람은 예수님을 향해 마주 와서도 멀찍이 서서 소리를 높여 이렇게 청할 뿐입니다. “예수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예수님은 그들에게 “가서 사제들에게 몸을 보여라.” 이르십니다. 나병의 치유를 법적으로 확인해주는 것은 사제들의 몫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사제들에게 가는 동안 자신들의 병이 나은 것을 발견합니다. 그런데 다만 한 사람이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립니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1) 나병, 하늘이 내린 벌(天刑)? 저는 나병 환자를 직접 본 적이 없습니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 시골에 살 때 누군가로부터 “저 산 너머엔 문둥이 부부가 있는데 그곳에 가면 잡아먹힌다.”는 으스스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지요. 그러다가 나병이 뭔지, 얼마나 무서운지를 비로소 알게 된 것은 만화를 통해서였습니다. 제목도 주인공의 이름도 모두 가물가물한데 손가락과 발가락이 툭 떨어져 나가고 코도 뭉그러져 더러운 붕대로 얼굴을 가린 채 퀭한 눈으로 그려진 나병 환자의 참혹하고 끔찍스런 모습에 오싹하고 소름이 돋았던 기억이 납니다. 오랫동안 인류는 나병을 하늘이 내린 벌, 천형(天刑)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특히, 질병을 비롯하여 모든 불행을 하느님이 주신 벌(天罰)이라고 믿던 유다인들에게 있어 나병은 으뜸가는 천벌이요 천형이었겠지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는 어느 누가 확진되어도 그리 이상하지 않은 코로나19 감염병의 세계적 유행 시대를 살고 있는 까닭에 그러한 우매한 낙인찍기에서 조금은 벗어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2) 선물에 눈이 멀면 선물해준 이가 잊힌다? 예수님이 많은 병자들을 고치셨다, 혹은 나병을 깨끗하게 하셨다는 이야기는 복음서 곳곳에 등장합니다. 이 이야기들은 그저 예수님의 어떤 능력, 위대함만을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죄에 대한 벌로서 사람들에게 병을 주시지 않았다는 것, 하느님은 고치고 살리시는 자비로운 분이심을 알게 하려는 것이지요. 벌주고 저주하는 일은 오히려 눈이 어두운 우리들 사람이 하는 일입니다. 오늘 복음은 치유된 이들 가운데 한 사람만이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고 전합니다. 그 덕분에 그는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는 기쁨에 찬 구원의 선언을 듣습니다. 무엇이 그들을 갈라놓았을까요? ‘선물에 눈이 멀면 선물해준 이가 잊힌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애벌레에서 나비로 바뀌듯 나병이 치유되는 그 엄청난 은총의 선물을 똑같이 체험한 열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 선물의 찬란한 빛 가운데서도 아홉은 자기 자신 안에 갇힙니다. 한 사람 홀로 자신에게 큰 선물을 준 이의 고운 얼굴을 기억하고 발길을 돌립니다. 은총의 선물도 그것에 갇히면 덫이 되고 마는 것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