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장현(한신대 초빙교수,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운영연구위원) G20 정상회의를 앞둔 지난 10월 29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문재인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북한이 초청장을 보내주면 평화를 위해 기꺼이 방북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2018년 10월 “북한에서 초청장이 오면 무조건 응답을 줄 것이고 나는 갈 수 있다”는 말씀의 연장선이다. 교황의 방북은 실현될 수 있을까? 만약 실현된다면 파급 효과는 무엇일까? 문재인 대통령이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DMZ 철조망 십자가를 선물하고 있다. (2021.10.30.) Ⓒ 청와대 제공= 뉴스1 한반도 외교 지형의 변화 먼저 교황의 방북은 한반도의 외교 지형을 바꾸어놓을 가능성이 크다. 1991년 소련의 붕괴로 세계적 냉전은 끝났지만 한반도는 아직도 미·일·한 대 중·러·북의 냉전 구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교황의 방북은 이 교착상태를 깨는 북미관계 정상화의 실마리를 마련할 수 있다. 북한은 1991년 이후 오랜 기간 북미관계 정상화를 염원해왔다. 외교적 고립을 타개해 파탄 상태에 있는 경제를 회생시키기 위함이다. 김정은이 천명했던 “인민이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며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리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전력·기계·화학 산업 등 기간산업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 식의주와 관련된 농업·경공업·건설업 등을 가동하는 데 기간산업의 뒷받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국내 자본이 없기에 외자 유치가 불가피하고 이를 위해서는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가 불가피하다. 개발도상국에 대규모 자금을 지원할 수 있는 국제통화기금·세계은행·아시아개발은행 등이 모두 미국의 영향력 하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미국 의회 Ⓒ 경향 신문 북미 간 국교 수립을 위해서는 미국 행정부 설득 외에 상원의 비준 동의라는 높은 벽을 넘어야 한다. 미 의회는 북한에게 비핵화뿐만 아니라 인권·위조화폐·마약 등 불법행동, 미사일·생화학무기 폐기 등을 수교의 전제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사안마다 북미 간 이견이 커 합의에 얼마나 오랜 세월이 걸릴지 알 수 없다. 더욱이 미국 조야(朝野)에는 북한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 존재한다. 이 같은 환경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은 북미관계 정상화의 실마리를 푸는 결정적 카드가 될 수 있다. 미국 인구의 25%에 달하는 가톨릭 신자 비율과 글로벌 리더로서 갖는 영향력에 힘입어 교황의 메시지는 미국 내 여론을 움직일 수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영향력은 50여 년 동안 적대관계였던 미국-쿠바 국교 정상화 과정에서 입증되었다. 교황의 중재 역할은 2014년 12월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과 쿠바의 카스트로 의장의 공동성명 발언을 통해 드러났다. 역대 바티칸 외교는 막후에서 움직이며 드러내지 않는 것으로 정평이 있기에 이례적 장면이었다. 더욱이 북미관계 정상화의 키를 쥐고 있는 바이든 대통령이 아일랜드계 가톨릭 신자로서 교황과 돈독한 관계를 맺고 있기에 프란치스코 교황의 중재가 주목을 받고 있다. 북한의 개방과 가톨릭 북한 사목의 새로운 지평 교황 방북을 계기로 북한은 개방을 확대할 것이고, 가톨릭은 북한 사목의 새로운 지평이 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교황은 가톨릭 내부적으로는 베드로 사도를 잇는 교계 최고의 지도자로서 가톨릭 신자들에게 큰 영향력을 갖고 있다. 또한 외부적으로는 지구상의 각종 분쟁 등 굵직한 현안에 대한 지혜와 해법을 제시하며 세계 여론을 주도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북한을 방문할 경우 북한은 전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될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김정은 위원장의 일거수일투족이 전 세계로 생방송될 것이고, 북한 사회의 다양한 모습이 언론을 통해 외부에 공개된다. 김정은은 집권 이후 정상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해 숱한 노력을 기울였다. 당·정·군의 정상화를 추진했으며, 노동당의 공식 의사결정 체계를 부활시켰다. 올해 1월 제8차 당대회에서는 ‘인민대중 제일주의’를 천명하며 김정일 시대 비정상의 상징인 ‘선군(先軍)정치’를 폐기했다. 국제사회에서 정상국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북한은 교황의 방북을 계기로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의 개방과 맞물려 가톨릭의 사목 활동도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다. 가톨릭 입장에서는 교황 방북을 계기로 북한 당국에게 평양 교구를 정상화시키기 위한 신부 상주를 요구할 수 있다. 신부 상주는 평양에 주재하는 외국인들의 주일 미사를 위해서도 필요하기에 북한도 마다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같은 사회주의 국가라도 중국·베트남·쿠바 등은 가톨릭 사제가 상주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북한만이 상주 신부가 없는 나라이다. 또한 해방 전 북한에 존재했던 성당·수도원 중 몇 개라도 복원을 요구할 수 있다. 특히 평양의 장충 성당은 개건(改建) 미사 장소로 활성화시켜야 한다. 사제 상주와 성당 복원은 북한 사목의 새로운 지평을 열 단초가 될 것이다. 평양 장충 성당, 한국천주교주교회의 민족화해주교특별위원회 방문 당시 사진 (2015.12.03.)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반도와 한국민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지대한 분이다. 그간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반도의 평화와 남북 화해에 대한 메시지를 내주셨다. 교황의 한국에 대한 특별한 관심은 사제 없이 자발적으로 신앙을 받아들인 한국의 독특한 가톨릭 선교 역사에 깊은 이해와 세계 평화에 한반도가 차지하는 특별한 위상 때문으로 짐작된다. 이번에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으로 취임한 유흥식 대주교의 역할도 주목된다. 북한 사정을 잘 알고 있고 바티칸에 지인이 많아 바티칸-북한 사이 중재에 최적임자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자. 내년 교황의 방북으로 생길 여러 변화를 생각하면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평양 장충 성당, 한국천주교주교회의 민족화해주교특별위원회 방문 당시 사진 (2015.12.03.) 교황님이 평화의 중재자로서 미국-쿠바의 협상을 좋은 결과로 이끌었던 사례에 대해 이야기해 봅시다. ( 아래 민화위 피스 굿뉴스 132호 ‘두 교황의 순례’를 참고해주세요) 관계 정상화를 위한 한국 가톨릭교회의 역할은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