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선 벨라뎃따(평화사도 1기 & 동화작가, 평화운동가) “시간이 어찌나 빨리 지나가는지 봄인 줄 알았는데, 자고 나면 여름이고, 자고 나면 겨울이에요.”“난 자고 나면 봄이고, 자고 나면 또 봄이고, 자고 나면 또 봄이야.” 이 얘기를 듣고 깔깔깔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정말 요즘 같아서는 시간이 어찌나 휙휙 지나가는지, 자고 나면 밤이고, 자고 나면 밤입니다. 우리 집 창으로 보이는 곳에 마로니에 나무가 서 있습니다. 왜소한 덩치에 비해 상대적으로 큰 나뭇잎을 매달고 있던 마로니에도 자고 났더니 잎이 누렇게 물들었습니다. 그러더니 어느새 한 잎 두 잎 나뭇잎을 떨구었지요. 어쩌면 느닷없이 불어오는 바람을 빌미로 나뭇잎이 나무 곁을 떠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무와 나뭇잎의 별리(別離)가 시작되었습니다. 툭. 툭. 툭. 계절이 깊어갑니다. 제 갈 길을 알고 무심하게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맑아져야 하는데, 시간이 지나도 내 마음은 벼린 칼날 같습니다. 코로나19로 행동반경이 집으로 구축되다 보니 더더욱 눈멀고, 귀먹은 이가 된 듯합니다. 한 해를 보내려니 자꾸 나 자신을 톺아보게 됩니다. 김홍도 ‘지팡이를 든 두 맹인’ CC BY 한국저작권위원회 공유마당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두 편의 그림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는 조선 후기 김홍도가 그린 <지팡이를 든 두 맹인>입니다. 그림 속에는 갓 쓴 양반과 더벅머리 사내가 등장합니다. 둘 다 앞을 보지 못해 지팡이를 더듬더듬 대고 있지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았던 김홍도였으니 눈 먼 이를 조롱하기 위한 그림은 아닐 듯합니다.“어이쿠, 눈을 어디다 두고 다니시오? 좀 똑똑히 보고 다녀요!”갓 쓴 양반이 버럭 호통을 치는 듯합니다.“난 똑바로 걷고 있었는데, 댁이 와서 부딪힌 게 아니오!” 당황한 더벅머리 총각도 한마디 내뱉습니다. 앞을 볼 수 없으니 네가 잘못했다고 서로 남 탓만 합니다. 피터르 브뤼헐 더 아우더(Pieter Bruegel), 맹인을 이끄는 맹인(Blind leading the blind), 1568 ©위키미디어 다른 한 작품은 피터 브뤼겔의 <맹인을 이끄는 맹인>입니다. 그림 속에는 6명의 맹인이 나옵니다. 맹인들은 앞 사람의 어깨에 손을 얹거나 지팡이를 잡은 채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런데 앞장을 선 눈먼 이가 넘어지자 두 번째 눈먼 이가 넘어지고, 그 뒷사람이 위태로워 보입니다. 곧 넘어질 태세입니다. ‘그들을 내버려 두어라, 그들은 눈먼 이들의 눈먼 인도자다.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질 것이다. (마태 15장 14절)’ 모두 넘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글을 쓰기 시작할 때였으니, 아주 오래된 일입니다. 그때는 등단을 하기 위해 쉬지 않고 글을 썼지요. 그 열정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한 주에 한 편(조금 과장해서)씩 썼던 기억이 나네요. 그렇게 쓴 글을 공모전에 응모했고, 좋은 결과가 있기를 오매불망, 애타게 기다렸지요. 그러나 내 바람과는 달리 가을 낙엽 떨어지듯 우수수 떨어졌습니다. 그날의 제 심정은 정말 콱 죽어버리고 싶었습니다. 몇 날 며칠을 눈물 콧물을 짜내며 울고불고 난리를 쳐댔습니다. 간신히 빠져나오면 극도의 분노가 올라왔습니다. ‘감히 내 작품을 떨어뜨려?’, ‘뭔가 모의가 있었을 거야?’, ‘뇌물을 먹였나?’ 이를 바득바득 갈았습니다. 가족들은 제 발등에 불똥이 떨어질세라 눈치껏 몸을 사렸지요. 이제는 출판사에서 원고 거절을 당하면 내가 다시는 그쪽 출판사에 원고 주나 봐라.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어댑니다. 한번은 아주 큰 출판사 공모전에 원고를 응모했습니다. 꽤나 만족스러운 원고라 은근 기대를 하며, 매일 기도했습니다. 꼭 당선되게 해 달라고 말이죠. 그러나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매번 그랬더니 눈물부터 쏟아냈습니다.“나는 왜 자꾸 떨어질까? 이번 원고는 정말 괜찮았는데...”(훌쩍 훌쩍)“엄마 원고 정말 괜찮았어요.”딸아이가 영혼을 담아 위로해 주었습니다.“좋으면 뭐 하니... 결국 떨어졌는데...”“엄마, 엄마보다 더 필요한 사람이 된 게 아닐까?” 딸아이 얘기에 눈과 귀가 번쩍 뜨이고, 머리와 마음까지 번쩍 열렸습니다. 나보다 더 필요한 사람, 나보다 더 절실한 사람이 당선되었다는 한마디가 어찌나 위로가 되던지요, 슬픔과 분노가 봄눈 녹듯 스르르 녹아내렸습니다. 정말 거짓말처럼요. 그 뒤로도 떨어지고, 거절당하고를 밥 먹듯 합니다. 손톱만큼도 아프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예전처럼 절망과 분노에 빠지지는 않습니다. 도리어 다시 글을 쓸 용기를 얻습니다. 나를 좋은 길로 인도해준 눈 맑은 아이에게 고맙기 그지없습니다. 톡. 톡. 톡. 나뭇잎마저도 제 갈 길을 잘도 아는구나, 다시 생각을 가다듬습니다.이탈리아 밀라노 대성당에는 세 가지 아치 모형으로 된 문이 있다고 합니다. 장미꽃이 새겨진 첫 번째 문에는 ‘모든 즐거움은 잠깐이다.’라는 글귀가 적혀있고, 십자가가 새겨져 있는 두 번째 문에는 ‘모든 고통도 잠깐이다.’라는 글귀가 적혀있습니다. 세 번째 문에는 ‘오직 중요한 것은 영원한 것이다.’라는 글귀가 적혀있다고 합니다. 밀라노 대성당 ©위키미디어 한 해를 마무리하는 지금 이 시간, 영원한 것은 무엇일까를 생각해봅니다. 그 답을 얻고 싶으냐? 그럼 ‘어서 가거라, 어서.’ 누군가 제 등을 떠미는 듯합니다. 그러나 지팡이를 쥔 제 손은 자꾸만 더듬더듬거리고, 제 다리는 주춤주춤 댑니다. 눈먼 이를 이끌어 줄 눈 맑은 이를 기다리는 중이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