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혜원( 북한대학원대학교 박사수료) 곧 설이다. 북한 주민들에게도 설날은 특별하다. 한때 북한에서는 설을 양력으로, 또 다른 한때는 음력을 기준으로 정하기도 했으나 현재는 양력엔 ‘양력설’, 음력엔 ‘설명절’로 표기한다. 모든 ‘빨간 날’이 기다려지는 게 당연하지만, 특히 설날에는 달력이 바뀌면서 나이를 먹는 것 이상의 새로움을 느낀다. 북한의 설명절 행사 © 연합뉴스 북한의 여군들도 마찬가지. 보통 토요일까지 훈련이나 노동으로 일과를 채우는 여군들에게 명절은 무척이나 반갑다. ‘빨간 날’인 일요일에도 가끔 쓸데없는 잡일로 귀중한 휴식 시간을 뺏기기가 일쑤인 군 생활이지만 최소 명절날은 편안하게 쉴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군에는 이런 농담이 통용된다. “군대는 정 할 일이 없으면 왼쪽 나무를 뽑아 오른쪽으로 옮긴다.” 어쩌면 상관으로서는 꼭 필요한 작업도 병사의 입장에서는 비효율적인 일로 느껴지는 게 인지상정이다. 2000년대 중반 내가 군 복무를 했던 사단 지휘부에는 여러 개의 여성 구분대들이 있었다. 구분대는 대대 이하 규모의 부대들을 이르는 북한말이다. 여성들이 주로 맡는 직위는 교환수, 정황기록수, 간호사 등이다. 전화 연결 업무를 담당하는 교환수들과 군 병원 혹은 군의소에서 일하는 간호사들은 보통 3교대로 근무를 섰고, 정황기록수들은 대체로 하루 정해진 일과를 반복한다. 정황기록수들은 적(敵) 항공기들의 움직임을 감시하고 기록하는 사람들로 평소에는 가상 상황에서의 훈련을 반복한다. 저녁 일과 후엔 지휘부 ‘본청사’로 불리는 건물의 구석진 곳에서 모스부호(북한에서는 “모르스부호”로 부른다)를 외는 신병들을 종종 볼 수 있었다. 특별히 외는 데 굼뜬 한두 명이 상사로부터 혼나는 모습을 몰래 훔쳐보고 깔깔거리던 때도, 제식훈련으로 땀을 뻘뻘 흘리며 강렬한 햇볕을 원망했던 때도 지나고 나니 다 추억이 돼버렸다. 北 여성방사포병사격대회 © 연합뉴스 자료사진 그 시절 설은 명절 가운데서도 단연 최고의 명절이었다. 양력설이든 설 명절이든 연휴 없이 딱 하루만 쉬었지만, 비슷한 또래의 동료들과 함께 웃고 떠들 수 있어서 좋았다. 설이 좋았던 이유는 또한 각종 정치행사가 많은 김일성, 김정일의 생일 기념일보다 편안하게 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설 전에는 구분대별로 명절놀이 계획을 세웠다. 거창한 계획이라기보다는 잘 먹고 놀기 위한 음식 장만과 주패(카드) 구입, 윷놀이 도구 만들기 등이었다. 음식도 놀이도구도 문제는 돈이었다. 당시 북한군 분대장(한국의 병장) 월급은 180원, 초급병사(이병), 중급병사(일병), 상급병사(상병) 등 일반 병사들은 70~120원 수준이었다. 냉면 한 그릇의 시장가격이 120~150원 정도였으니 참으로 보잘것없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명절 전에는 전체 대원들의 월급을 모아 20% 정도는 놀이도구 장만에 사용하고 나머지 80%의 돈으로 음식을 샀다. 음식이라 봤자 질보다는 양이 중요했던 시절이라 하얀 밀가루에 설탕과 우유 등이 듬뿍 들어간 고급 빵은 엄두도 못 내고 시커먼 밀가루에 사카린을 넣어 만든 찜 빵을 사는 게 전부였다. 그래도 제대로 된 간식 한번 변변히 공급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 찜 빵은 참으로 맛있었다. 어떤 면에서 여군들은 남성 군인들보다 나은 점이 있었다. 매달 한 팩(10개)씩 공급되는 일회용 생리대를 사용하지 않고 모아두었다 시장 상인들에게 도매가격으로 넘겨주면 팩당 80~120원 정도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신 면으로 만든 생리대를 빨아서 사용하는 수고로움을 감수해야 한다. 그렇게 생리대를 판 돈도 그 시커먼 빵을 사는 데 보태기도 했다. 2019 피스쿨 참가 학생이 사사끼를 하고 있다. © 의정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북한에서 주패라고 부르는 카드놀이 가운데 ‘사사끼’는 단연 최고의 놀이방식이었다. 매회 같은 편과 반대편이 갈리고, 놀이가 끝나기 전까지 누가 같은 편인지 알쏭달쏭한 ‘사사끼’의 인기는 여전하다고 한다. 게다가 판 당 돈이 오가는데 돈이 없으면 돌멩이라도 갖다 놓고 셈을 했다. 지금도 주변 탈북민 지인 중에는 모였다 하면 사사끼로 밤을 새우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북한은 군 복무 기간 휴가를 받아 집에 다녀오는 경우가 드물다. 여성 군인들의 군사복무 기간은 병사 기준으로 5-6년 정도다. 그 외롭고 힘겨운 시간 시커먼 밀 빵과 주패는 최고의 위안거리가 돼준다. 코로나 팬데믹이 장기화되면서 북한의 내부사정이 더 어렵다고 한다. 북한 주민들은 더 말할 것도 없고 군인들의 형편도 말이 아니라고 한다. 아마도 여성 군인들은 더욱 힘들 것이다. 내가 군사복무를 할 때도 각 중대에 영양부족으로 허약해진 군인 서너 명은 꼭 있었다. 최근 북한에서 군사복무를 하다 온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그때보다 상황이 더 열악해졌다고 한다. 올겨울의 추위가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