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주석(베드로) 신부 | 민족화해위원장 ‘정교분리’에 대한 오해는 교회 안팎에 널리 퍼져있습니다. 교회가 정치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에서 인용하는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돌리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라.’라는 말씀은 가장 흔하게 오역되는 성경 구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넓은 의미에서 볼 때, 정치와 종교는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도 완벽하게 분리된 적이 없습니다. ‘정교분리’를 강조하는 사람들은 정치도 제대로 모르고 종교의 속성도 파악하지 못한 것이라는 평가가 있습니다. 신앙인의 입장에서도 ‘카이사르의 것’과 ‘하느님의 것’을 구분하는 것은 옳은 해석이 아닙니다.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성당 안에만’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교분리’라는 개념은 정부(the State)와 교회(the Church)의 구별을 의미할 때 정당성을 갖습니다. 교회가 정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은 세상의 권력과 결탁하거나 그 힘에 의지하려는 하는 유혹입니다. “그러나 너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가장 어린 사람처럼 되어야 하고 지도자는 섬기는 사람처럼 되어야 한다.”(루카 22, 26) 교회의 활동을 일컫는 사목(司牧)에 대한 정의도 과거에는 영혼을 보살피는 일을 사목이라 하여 이를 오로지 성직자의 임무로 보았으나, 오늘날에는 '보편적 구원의 성사'인 교회가 세상과 관련을 맺는 모든 활동을 두고 사목이라 이해합니다. 물론 ‘세속’의 방식과는 구분되어야 하지만, 교회는 세상의 부조리, 불의와 비평화를 외면할 수 없고 오히려 세상 안에서 적극적으로 정의와 평화를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민족화해위원회 활동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 중에 하나는 ‘남남갈등’입니다.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 성당에 왔는데 자신과 다른 ‘정치적 주장’ 때문에 불편하다는 의견들이 많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본당 민족화해분과의 고충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적대적인 분단의 현실 속에서는 민족의 화해를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종북’으로 몰리거나, 어떤 ‘정파’에 속하는 것으로 평가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평화를 위한 교회의 사명을 수행하려면 성령이 주시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합니다. 불의와 갈등이 끊이지 않는 이 세상 안에서 민족화해위원회가 세상과 함께 기도할 수 있는 은총을 청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