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혜원(북한대학교대학원 박사 수료) 겨울철 북한의 주요 난방 및 취사용 연료는 석탄(무연탄)이다. 물론 산에서 나는 나무나 낙엽을 주 연료로 이용하는 사람도 많다. 석탄이 나무보다 비싸거나 혹은 나무를 구하기 쉬운 산골 마을이거나, 아니면 석탄을 구매할 돈이 없어 그저 하루하루 땔감을 주어 사용하는 사람들이다. 개중에는 구멍탄보다 참나무 장작이 훨씬 깨끗하고 이용하기 좋다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이맘때면 시장의 땔나무 가격이 비싸다. 땔나무도 질에 따라 가격이 다른데, 참나무 장작이 가장 비싸고, 나무의 잔가지들을 모아놓은 나뭇단이 가장 싸다. 구멍탄을 사용하는 가정에서도 비상시를 대비하여 나무나 숯을 장만해둔다. 비 오는 습한 날, 혹은 오랜 시간 돌보지 않아 죽어버린 연탄불을 다시 지피려면 필요하기 때문이다. 북한 구멍탄 Ⓒ“북한은 왜”, MBC뉴스 겨울이 되면 연탄도 조금 더 비싸진다. 북한에서는 연탄을 구멍탄이라 부르는데 연소 과정에서 일산화탄소가 발생하는 단점이 있다. 어린 시절 할머니의 집을 방문했다가 한밤중의 시끄러운 소리에 잠을 깬 적이 있었다. 밖을 나가보니 어른 세 명과 아이 한 명이 거적때기에 누워있었는데 한사람같이 코가 땅에 닿도록 눕혀있었다. 할머니 집은 아파트였으나 아파트 맞은편에는 창고로 쓰이는 나지막한 건물이 가지런히 붙어 있었고 바닥은 포장되지 않은 흙이었다. 10여 명 남짓한 동네 사람들이 모여 떠들썩했고, 누군가 김칫국물을 내왔다. 그는 조금 정신이 깬듯한 여자부터 함께 누워있던 다른 사람들까지 모두에게 김칫국물을 억지로 먹였다. 처음 보는 낯선 광경에 어리둥절해 있는 나를 보고 삼촌이 얘기했다. “자지 않고 왜 나왔어? 추운데 얼른 들어가.” “저 사람들 왜 저래?” 내가 묻자 삼촌이 “아~ 탄내 먹었어.”라며 짧게 답했다. 나는 들어갈 염을 하지 않고 삼촌의 옷소매를 잡고 그 사람들을 지켜봤다.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누워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중 집안의 가장으로 보이는 나이 지긋한 남자 하나가 몸을 일으켜 앉더니 “어. 머리가 아프네.”하고 한마디를 뱉었다. 그러자 여기저기에서 이젠 살았다, 다행이다 등의 말들을 건네며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삼촌은 나에게 탄내를 먹으면 뇌에 산소가 부족해져서 “얼뜬해진다(‘얼뜨다’의 북한어).”며 저럴 때는 흙냄새를 맡거나 김칫국물에 물을 타서 마시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알려주었다. 북한에서 ‘탄내’라는 단어는 이중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구멍탄의 연소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산화탄소 그 자체를 의미하기도 하고, 어떤 발언이나 행동이 야무지지 못하고 어리숙한 경우 “탄내 먹었다.” 혹은 “탄내 같다.”고 표현한다. 내가 군사복무를 하던 지역에도 ‘탄내를 먹은’ 가족이 있었다. 아빠와 엄마, 아들과 딸 이렇게 4명이 모두 일산화탄소에 중독되어 뒤늦게 발견되었는데, 불행하게도 아빠와 아들은 소생하지 못했다. 딸은 몇 년 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로 갔고, 엄마는 남편이 군관(장교)으로 근무하던 군부대에서 군무원으로 일했다. 그런데 그 여성분을 두고 다들 뒤에서 ‘탄내’라고 비웃었다. 원래 야무지지 못한 편이었는지, 아니면 정말로 ‘탄내를 먹은’ 후유증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일손이 굼뜬 편이긴 했다. 그래도 마음씨는 참 고운 분이었다. 딸을 군대에 보낸 엄마의 마음으로 자신의 딸과 비슷한 나이에 군복을 입고 있는 나를 살갑게 대해주었고, 명절에는 집에서 손수 만든 음식도 가져다주었다. 구멍탄으로 난방과 취사를 하기 위해서는 하루에 2~3장 정도 필요하다. 10월쯤 되면 북한 주민 모두가 김장, 염장, 장작, 구멍탄 등 겨우내 소비할 먹을거리와 땔감 등 월동 준비로 분주하다. 4인 가족 기준으로 보통 150㎏의 김치와 300장 정도의 구멍탄을 쌓아두면 한 해 겨울을 꽤 괜찮게 보낼 수 있다고 안심한다. 겨울에도 각종 채소와 먹을거리가 넘쳐나는 남한과 달리 북한에서는 김치와 구멍탄 없이 겨울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구멍탄은 무연탄에 적당한 진흙과 물을 넣어 섞은 다음 일정한 틀로 성형하고 말려 만든다. 날씨에 따라 하루 또는 2~3일 정도 건조하는데 자물쇠가 단단히 잠긴 창고로 옮겨지기 전까지 사람이 지켜야 한다. 안 그러면 도둑맞기 때문이다. 한국에 입국한 다음 해 친구들과 연탄 봉사를 한 적이 있다. 어떤 어르신이 사는 집 창고 안쪽까지 연탄을 날랐는데 문득 ‘공산주의 사회를 추구하는 북한보다 여기가 더 공산주의 사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손잡고 걸어가는 북한 군인들 Ⓒ세계일보 최근 북에 있는 가족들과 연락이 닿은 한 탈북민 친구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우리 집은 그래도 일찌감치 월동 준비 끝냈대. 무연탄 2톤 사서 구멍탄 만들어놨고, 김치도 한 200킬로 했다고 하더라.” 친구의 이야기를 듣는 내 마음도 흐뭇해졌다. 그러다 문득 나의 군 복무 시절 그 이모님이 생각났다. 일산화탄소 중독 후유증은 괜찮아졌는지, 겨울나기 준비는 잘 하셨는지… 부디 올겨울엔 일산화탄소 중독사고가 없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