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선 벨라뎃따(평화사도 1기 & 동화작가, 평화운동가) 달포 전쯤, 도서관에서 <태어나니 난민> 강의를 들었습니다. 몇 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난민’이라는 단어는 생소했지요. 그러다 2018년 500명이 넘는 예멘인들이 제주도로 입국해 난민 신청을 하면서 우리나라 전체가 떠들썩했습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난민 신청 허가 폐지’ 청원이 5일 만에 22만 건을 돌파할 정도였으니까요. 예멘인들은 비자 없이 90일간 체류가 가능한 말레이시아에 머물다, 무비자 입국이 가능한 제주도로 들어왔습니다. 두려움과 희망을 품고 도착했지만 2명만 난민 인정을 받았습니다. 4여 년이 지난 지금 그들은 어디에서 고단한 몸을 누이고 있을까요. 도서관에 온 민혁씨와 레자씨는 이란 출신으로 난민 인정을 받았습니다. 28살 레자씨와 20살 민혁씨는 서로 다른 이유로 난민이 되었지요. 민혁씨는 13년 전, 7살 때 사업을 하는 아버지를 따라 우리나라에 왔습니다. 엄마와 다른 가족은 이란에 남았고요. 낯선 땅에서 한국말도 못하고 외모도 다른 민혁씨를 돌봐 준 곳이 교회였습니다. 아버지도 자연스럽게 교회에 나가게 되면서 이슬람교에서 개신교로 개종을 하였지요. 이란에서는 타종교로의 개종은 사형을 시킬 만큼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란에 있는 가족들과도 연락이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2017년, 15살이 된 민혁씨는 종교적 난민 신청을 했지만 ‘아이가 어려서 종교적 가치관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했습니다. 아버지 역시 난민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고요. 이 일을 알게 된 선생님과 친구들이 난민 재신청을 도왔고, 카톡 방을 만들어 민혁씨의 안타까운 일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3년여 동안 국민청원과 피켓시위를 함께 하며 자신들의 일처럼 발 벗고 나섰지요.김민혁 군과 그의 친구들의 ‘인도적이고 공정한 난민심사’를 촉구하는 릴레이 1인 시위 ⓒ임준형/노동자연대 그러던 어느 날 교육감님이 기자를 데리고 학교에 오면서 민혁씨 일이 공론화되었습니다. 3년 동안 질질 끌었던 재신청 과정이 민혁씨만을 위한 창구 하나가 마련되면서 한 달 만에 인터뷰를 하게 되었지요. 애초에 열 수 있었던 창구를 열지 않고 있다가 여론의 눈치를 살피며 연 창구도, 자신에게 특혜를 준 것도 모두 화가 났습니다. 다행이 민혁씨는 난민이 되었습니다. 난민이 되었다고 처지가 바뀐 건 없습니다. 단지 추방의 불안에서 벗어나 새로운 꿈을 꾸게 되었죠. 아직 난민이 되지 못한 채 인도적 체류 허가를 받은 아버지도 언젠가는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게 될 테죠. 레자씨는 산업 연수생 신분으로 재정착 난민이 되었지만, 불안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 있을 때 한국에서 온 직원들이 한국에 가면 한국어와 다양한 교육을 시켜준다고 약속했었습니다. 그러나 이내 산업 현장에 투입되어 말을 알아듣지도 못하고 물어볼 수조차 없는 입장에 놓이고 말았습니다. 레자씨가 우리들에게 당부했습니다. 제발 난민에 대한 색안경을 벗고, 난민에 대한 편견을 없애 달라고요. 난민이 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 얘기를 들어 달라고요. 그리고는 한국에 대해 잘 알 수 있도록 교육의 기회를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유엔난민기구 「2020 연례보고서」 레자씨와 민혁씨처럼 어느 날 갑자기 나라와 고향을 떠나 온 난민이 해마다 늘고 있습니다. 전쟁이나 강제 이주정책, 정치적 이념, 기후 변화로 싫든 좋든 난민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계적으로는 8,240만 명 중 2,640만 명이 난민이고, 4,800만 명이 국내 실향민이며 410만 명이 망명 신청자입니다.(2020년 기준) 실향민 중 절반이 어린이라고 하네요. 우리나라에 난민 심의를 신청한 사람이 2021년 2월 말 기준 7만여 명 정도라 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난민이 많은 나라는 10년째 내전을 겪고 있는 시리아로 1,200만 명이나 됩니다. 그 뒤가 베네수엘라인데, 인구 3천만 명 중 540만 명이 난민과 이주민입니다. 극심한 경제난과 정치 사회적 불안으로 자국을 탈출한 난민이 인구의 20%나 되지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지역 점령으로 소개(疏開)된 팔레스타인 난민도 500만 명이 된다고 합니다. 「로힝야 난민 이야기」(권혁봉의 사진 보고서), 황금부엉이 얼마 전에 읽은 「로힝야 난민의 이야기」는 미얀마의 로힝야족이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80-100만 명을 수용하는 세계 최대 난민 캠프)에 있는 쿠투팔롱 난민 캠프에의 일상생활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로힝야족은 미얀마 정부의 탄압을 피해 난민이 될 수밖에 없었지요. 고맙게도 이런 난민들을 받아주는 나라들이 있습니다. 터키, 콜롬비아, 파키스탄, 우간다, 독일, 수단, 방글라데시, 레바논, 에티오피아, 이란을 꼽을 수 있지요. 이들 나라들이 세계 난민의 85%을 받아들이고 있지만 대부분 개발도상국들입니다. 이 나라들 역시 경제난과 정치적 불안정성으로 여러 어려움이 많다고 합니다. 조금만 돌이켜보면 우리도 1950년 한국 전쟁으로 (피)난민(국내 실향민)이었습니다. 북한을 탈출해 난민 자격으로 남한에 정착한 분들도 3만여 명이 살고 있지요.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교황님이 된 뒤, 첫 방문한 곳이 이탈리아 최남단 시칠리아 지역에 있는 람페두사였습니다. 교황님께서 람페두사에 가신 이유는 이곳이 유명한 휴양지이며 세계에서 가장 좋은 해변이 있기 때문이 아니었지요. 람페두사는 전쟁과 자유,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아프리카와 중동, 아시아에서 낡은 배를 타고 유럽으로 향하는 이들이 처음 닿는 곳입니다. 아프리카 난민수용소가 있는 람페두사에 오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풍랑에 떠밀려 죽었지요.교황님은 겁먹고 고달픈 나그네를 환대해주자며 우리들에게 당부하신 듯합니다. 바로 나밖에 없으니까요 누군가 나에게보아달라고 하면모든 것 잠시 멈추고기꺼이 보아주는 겁니다 그때 그곳그 사람에게는바로 나밖에 없으니까요 누군가 나에게들어달라고 하면모든 것 잠시 멈추고기꺼이 들어주는 겁니다 그때 그곳그 사람에게는바로 나밖에 없으니까요 누군가 나에게말해달라고 하면모든 것 잠시 멈추고기꺼이 말해주는 겁니다 그때 그곳그 사람에게는바로 나밖에 없으니까요 누군가 나에게받아달라고 하면모든 것 잠시 멈추고기꺼이 받아주는 겁니다 그때 그곳그 사람에게는바로 나밖에 없으니까요 누군가 나에게안아달라고 하면모든 것 잠시 멈추고기꺼이 안아주는 겁니다 그때 그곳그 사람에게는바로 나밖에 없으니까요 누군가 나에게일으켜달라고 하면모든 것 잠시 멈추고기꺼이 일으켜주는 겁니다 그때 그곳그 사람에게는바로 나밖에 없으니까요 누군가 나에게함께해달라고 하면모든 것 잠시 멈추고기꺼이 함께해주는 겁니다 그때 그곳그 사람에게는바로 나밖에 없으니까요 (<바로 나밖에 없으니까요> 중 일부, 작자 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