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의 마녀들』-한국 전쟁과 여성주의 평화운동(김태우 저, 2021년, 창비) 김창영 토마스 아퀴나스(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청년 연구자 모임 샬롬회 회원) 국제여맹 조사위원회가 북한 내 작은 마을에서 회의를 열고 있는 모습 © 창비 한국 전쟁 시기 여성의 권리 증진 및 반전, 평화운동을 전개하고 세계 곳곳의 ‘진보 · 좌파적 여권 운동 단체의 우산조직’으로 기능했던 여권 단체가 있었다. 바로 국제민주여성연맹(이하 여맹)이다. 1951년 5월, 여맹은 당시 북한 내 여권 단체의 대표이자 혁명운동가인 박정애(1907~?)로부터 전쟁의 참화 속에 북한의 민중이 당한 피해에 대한 민간 조사를 의뢰받았다. 이후 연맹은 ‘국제민주여성연맹 한국 전쟁 조사위원회(이하 위원회)’를 출범, 북한에서 약 한 달간 머무르며 「우리는 고발한다(We Accuse)」라는 이름의 최종보고서를 UN에 제출하기에 이른다. 김태우 교수의 책 『냉전의 마녀들』은 여맹의 최종보고서 「우리는 고발한다」와 영국인 조사위원 모니카 펠턴의 개인 기록, 그리고 당시 언론 보도 등을 토대로 전쟁 중 북한 내 여성 인권, 전쟁의 참혹함을 고발하는 르포성 연구 학술서다. 신의주 지역에서 여성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 국제여맹 조사위원들. © 창비 서두에 언급하였다시피 여맹은 제2차 세계대전 전부터 존재했던 국제적 여성 권리 증진을 위한 제단체들 가운데서도 진보 · 좌파적 신념과 사상을 기반으로 한 조직들의 우산조직의 성격을 띠고 출범하였다. 1945년 11월 파리에서 개최된 국제여성대회에 참여 의사를 밝힌 국가 대표들이 40개국 850여 명이었고, 각 산하 회원이 약 8,100만여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조사보고서 「우리는 고발한다」는 짧은 소책자로, 북한의 국경 지대인 신의주를 시작으로, 북한 내 각 도의 큰 도시를 기점으로 여성, 아동, 노인, 즉 전쟁과 무관한 인민들의 피해 상황을 조사한 ‘인권피해 보고서’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한국 전쟁 서술은 종래 그 기원에서부터 전쟁의 참상, 기아, 국가 복원 등 많은 저술들이 탄생하게 된 소재가 되었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 한국 전쟁에 대해서 아직도 알지 못하는 것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사보고서와 펠턴의 개인 기록은 많은 내용을 담고 있었는데,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UN군의 한국 전쟁 당시 전승 기록 중에서도 유의미한 것으로 평가받는 50년 11월의 신의주 폭격에 대한 함부르크, 도쿄 폭격과의 비교였다. 여맹 조사위원회는 51년 5월 첫 방문 도시인 신의주에 들어가 반 년 전 10여 일 동안 벌어진 소이탄 폭격과 기총소사에 대한 신의주 시민들의 생생한 증언을 남기고 있다. 1950. 11. 15. 신의주 상공에서 미 공군 전투기가 압록강 철교를 폭파하고 있다. ⓒ NARA 러시아, 중국과의 교역으로 일제강점기부터 큰 도시로 알려져 있던 신의주를 쑥대밭으로 만든 UN의 신의주 초토화 폭격은 박정애가 여맹에 조사 요청을 간곡히 호소하게 된 결정적 요인이기도 했다. 전쟁 중 발생하게 된 여성 성폭력은 여맹 최종보고서만이 다룰 수 있는 중요한 사료일 것이다. 최종보고서와 펠턴 기록에는 전쟁 중 미군 주둔지 및 병영에서 벌어진 여성 성폭력의 세 유형에 대해 자세히 담고 있다. 첫 번째는 전시 강간이다. 최종보고서의 강원도 보고서에는 강간 폭력 피해 여성이 2,903명으로, 대부분 미군에 의해 벌어진 참상이라 말한다. 두 번째 유형은 여성성과 관련된 신체의 특정 부위에 대한 가학 행위, 야만적 성희롱, 성고문에 대한 증언이다. 이 부분은 특히 소위 토벌대의 폭력과 잔학함에 기인한 일이었다. 성고문은 학습되거나 선천적일 수 있는 여성의 모성성과 여성성을 독자로 하여금 공포스럽다고 여겨질 정도로 가해진 고문이었다. 세 번째 유형은 여성을 납치 유곽에 감금하여 장기간에 걸쳐 집단적 성폭력을 가하고, 유곽을 운영한 증거들의 채록이었다. 평양 신사를 갈아엎고 만든 평양 국립예술극장을 군인 유곽으로 활용한 증언들이 채록되어 있다. 『냉전의 마녀들』 (김태우 저, 2021년, 창비) 표지 민감한 주제이나 한국 전쟁 당시 남한 군대 및 UN군을 위한 위안소 운영은 김귀옥, 이임하, 박정미 등의 선행 연구가 존재한다. 김태우는 이들의 선행 연구를 다수 인용하여 남한 군대의 위안소 운영 실태를 재삼 고발하고, 북한에서 이루어진 주둔지 군인 유곽에 대해서도 강도 높게 비판하였다. 저자는 한국 전쟁 연구자로서 UN군의 의주 폭격 참상을 중심으로 한 한국 전쟁의 이면과 실상을 여러 각도에서 조망하였다. 『냉전의 마녀들』을 읽음으로써 진영을 떠나 진실을 알린 사람들의 역할과 활동에 대해 알 수 있고, 한국 전쟁을 전쟁사, 정치사적 시야에서만 다루지 않고 시야를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