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권 안드레아 신부 (원당성당 주임 신부) 요즘에는 학제가 바뀌어서 봄방학을 하는 학교가 거의 없습니다. 아이들은 12월 말이나 1월 초까지 학교에 나가고 겨울 방학을 맞습니다. 그러면 3월 개학 때까지 학교를 쉬게 됩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바쁩니다. 학원도 다녀야 하고 집에서 학습지나 인터넷 강의도 들어야 합니다. 방학인데도 여전히 해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제가 어릴 적 방학은 신나게 노는 때였습니다. 눈 오면 동생들과 눈사람도 만들고 친구들과 눈싸움도 하고, 비료부대에 볏짚을 넣고 뒷동산 자락에 올라 눈썰매도 탔습니다. 마을 앞 논에 물을 대서 꽁꽁 얼면 썰매나 스케이트를 타기도 했습니다. 설이 지나면 대보름까지 쥐불놀이를 하느라 정신없이 뛰어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면 양 볼이 찬바람에 빨갛게 얼어서 소위 ‘촌병’에 걸리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저녁이면 지쳐서 가족이 함께 바치던 묵주기도 시간에 졸기도 많이 했습니다. 그래도 틈틈이 위인전과 문학책을 하나씩 읽어나가서 방학이 끝날 때면 한 질의 책을 떼기도 했습니다. 방학이라고 마냥 노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방학숙제(!)가 있었습니다. ‘방학생활’이라는 과제용 책자와 일기 쓰기, 만들기 하나가 일반적으로 주어졌습니다. ‘방학생활’과 만들기는 개학 일주일 전에 달려들어 해내면 됐지만, 일기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날짜에 맞춰 한꺼번에 쓴다는 것이 여간 고역이 아니었습니다. 내용은 어찌어찌 채운다 해도 항상 날씨 문제가 가로막았습니다. 솔직히 일기를 제대로 채워 낸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방학이라는 긴 시간 동안 노는 데만 바빴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2월에 방학을 마치고 학교에 가면 과제를 다 하지 못했다고 담임 선생님에게 혼나는 일이 매번 반복되었습니다. 남북 협력 사업들이 2010년 5·24조치로 중단된 지 벌써 12년이 지났습니다. 개성공단도 2016년에 멈추었습니다. 2018년 남북 정상회담으로 훈풍이 부는 듯 했지만, 북미 협상의 결렬과 강화된 대북제재들로 인해, 한반도 평화를 위한 여정은 더 차갑게 얼어붙었습니다. 마치 ‘끝나지 않는 겨울’ 같습니다. 그렇다고 우리마저 멈추어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저는 이 시간이 긴 ‘겨울 방학’ 같습니다. ‘춥다고’ 아무것도 안 하고 이불 뒤집어쓰고 아랫목에 앉아 있기만 하는 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그냥 머물러 있다가는 낭패를 당하기 쉽습니다. 방학이라는 정해진 기간을 알면서도 마냥 손 놓고 있던 아이는 개학 일주일 전 또는 삼사일 전에 모든 것을 다 하려 하다가 밤을 새워도 다 하지 못하는 과제들 앞에서 울상이 되어 개학을 맞습니다. 그처럼 여기서 지금, 아무 일도 없다고 손을 놓고 있다가는 갑자기 남북교류의 문이 열리게 되면, 우리는 어디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고 울상이 되어 밤을 새우게 될 것입니다. 아이들은 방학을 지내며, 지난 학교생활 기간 동안 배운 것이 무엇인지 다시 복습해보고, 새 학년 새 학기에 배워나갈 것이 무엇인지 조금씩 배웁니다. 친구들과 뛰어놀면서 대인 관계에 대해 체험하고 여행을 하면서 세상을 보는 눈을 넓힙니다. 그래서 방학이 끝났을 때 아이들은 더 성장하고 성숙한 모습으로 새로운 시작을 맞이합니다. 남북관계의 긴 방학을 지내면서 우리도 그러해야 할 것입니다. 지난 시간 동안 우리가 이룬 성과들이 무엇인지, 과오들이 무엇인지 살펴보면서, 언제인지 모르지만, 다시 새로운 교류가 시작될 때, 우리가 할 일이 어떤 것인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또한 한반도 문제에 대해 다른 시각을 가진 이들, 다른 방향에서 접근하는 이들과 교류하고 대화하면서 우리가 배우고 터득한 것들도 다른 이들에게 전하고, 우리의 시각도 넓힐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이 추운 시기가 지나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봄바람이 불어올 때 우리는 더 성숙한 모습으로 나설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