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의 선거 풍경

장혜원(북한대학교대학원 박사 수료) 요즘은 어딜 가나 대선이 최대 이슈다. 이 원고가 발간되고 며칠 후면 대한민국은 새로운 대통령을 맞이할 것이다. 글을 쓰고 있는 시점은 선거 전이라 하루에 최소 한두 번 선거에 관한 이야기를 듣거나 본다. 점심 브레이크타임 혹은 SNS를 통해 본인이 지지하는 후보를 열정적으로 응원하고 그 이유를 논리정연하게 피력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반대진영의 후보를 조목조목 비판하며 네거티브 발언을 서슴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2011년 北 지방인민회의 대의원 선거 포스터 Ⓒ 중앙일보 자극적인 내용이 다소 거북스러울 때도 있지만, 격렬하고 다방면적인 논쟁의 모습들을 보면서 나는 안도감을 느낄 때가 더 많다.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고, 여러 후보가 나서고, 누구나 자신의 의지대로 선택할 권리가 주어지는 것, 이것이 아마도 선거를 위한 기본 조건이 아닐까? 북한에서 선거는 오직 찬성표만이 허용된다. 피선거권을 가진 사람, 즉 후보는 한사람이고, 투표자는 찬성 투표만이 할 수 있다. 그래서 선거철이 되면 캠페인이나 포스터의 문구가 “모두 다 찬성투표하자!”로 일관되어 있다. 어려서는 물론 성인이 되어서도 대다수는 이러한 북한의 선거 방식에 별로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 다른 방식의 투표를 해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어렸을 적 학교에서 학생 간부 선거 때 거수가결로 찬성과 반대를 표하는 것이 민주주의적이라 할 수 있겠다. 이마저도 미리 짜인 각본에 따라 하는 게 다반사다. 선생님은 “회의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후보 추천을 하는 사람, 그에 대해 ‘지지 및 반대 토론’을 할 사람과 내용을 정해주곤 했다. 제13기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일 한 투표장 Ⓒ 국제신문 선거철이 되면 북한도 안팎으로 분주해진다. 제일 중요한 것은 인원 관리다. 소속되어 있는 정치 및 행정소속, 인민반을 중심으로 행방불명자가 없는지 두세 번 교차 확인하고 100% 참가 보장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투표권을 행사하지 않을 권리도 주어지지 않는다. 투표하기 싫어도 반드시 투표에 참석해야 한다. 또한 공장, 학교, 인민반 할 것 없이 ‘특별경비주간’에 돌입하고, 단위별로 담당구역을 수시로 순찰해야 한다. 담당구역은 공장과 학교, 혹은 내가 사는 동네(인민반)와 그 주변이다. ‘특별경비주간’에는 각종 사건 사고를 예방하는 것도 중요하다. 선거가 끝난 후 총화(평가)를 통해 문책이 따르기 때문이다. 선거 당일 거주지역을 중심으로 배정된 선거 장소로 가 현장에서 공민증(주민등록증)과 본인을 대조한 다음 나눠주는 투표권을 받아 투표함에 넣으면 된다. 투표하러 가는 것도 공장, 인민반 단위별로 함께 가다 보니 길게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남자들은 정장이나 셔츠 같은 깨끗한 차림으로, 여자들은 한복이나 원피스 등 화려하고 이쁜 옷을 골라 입고 간다. 투표 행위가 ‘나라를 반석으로 다지는 공민의 권리이자 의무’를 행사하는 것임으로 명절 분위기를 낸다. 투표가 끝나면 다 같이 도심 한가운데 있는 광장으로 이동하여 무도회를 열고 군중무용을 추며 피날레를 장식한다. 2015년 북한 인민회의 대의원 선거 날 Ⓒ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언젠가 내가 살던 지역에서 선거기간에 낙서 사건이 발생했다. 선거에 반대하는 내용이 어느 학교 담벼락에 쓰여있었고, 그것이 발견되면서 도시가 발칵 뒤집혔다. 지역 당간부들과 수사기관은 최대한 소문이 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범인을 잡으려 총력을 기울였으나 잡혔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경제위기 이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다. 김정은 시대 들어서도 낙서와 같은 ‘정치적인 사건’들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무조건 당과 국가에 충성하던 북한 주민들의 사상도 느리지만 조금씩 변하는 것 같다. ‘정치적인 사건’들은 경중을 따지지 않고 엄하게 처벌한다. 특히 글로 남기는 행위는 조심해야 한다. 현실에 대한 불평불만도 말로 했을 때와 글로 기록했을 때 성격이 달라진다. 더욱이 담벼락이나 불특정 다수가 볼 수 있는 공공장소에 남기는 메모는 단순한 장난으로 치부되지 않고 ‘반체제적 선동행위’로 취급받는다. 이러한 분위기 속 북한의 선거는 매번 99%의 투표율과 100% 찬성률이라는 기상천외한 결과를 만들어낸다. 언젠가 한반도를 아우르는 선거가 치러진다면 충분한 예행 연습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정해진 틀 속에서 수동적으로 살던 사람들은 자유와 권리를 누리는 게 익숙하지 않다. 새해 벽두 남한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탈북민이 다시 철책을 넘어 월북하는 일이 발생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영화 ‘쇼생크 탈출’의 브룩스가 느꼈던 감정들이 그 사람의 마음에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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