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주원 (인류학자) 코로나19 상황이 벌어지기 몇 달 전인 2019년 늦가을이다. 나는 중국 단둥에 연구를 핑계로 머물고 있었다. 아침에는 거리에서 북한 사람이 삼삼오오 다니는 장면을, 낮에는 북한 여성들이 대형 도매시장을 돌아다니며 생활용품을 사는 삶을 지켜볼 수 있었다. 밤에는 우연히 북한 부부로 보이는 사람들과 호텔 엘리베이터를 함께 탔다. 단둥 일용품 도매상점 밀집지 신류부싱제 ©이데일리 같은 층에 내린 그들은 내 방 앞과 옆으로 향했다. 2000년부터 약 20년 동안 중국에 갈 때면 같은 지붕 밑에서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북한 사람과 숙박하는 경험을 해왔다. 그때마다 기분은 묘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방문을 열고 나갈 때면 한 번씩 그들과 어쩔 수 없이 마주쳤다. 며칠 동안 같은 공간에 있다 보니 나중에는 눈인사를 자연스럽게 하곤 했다. 2019년 12월 여기저기에서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이 재미있다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부터 찾아보지 않다가 방송 초반 “북한 미화” 지적이 나온다는 평과 함께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고발당했다는 아래의 기사를 접하고 궁금해졌다. 보면 볼수록 북한 생활상에 대한 제작진의 고증 깊이에 놀라곤 하였다. 북한의 1990년대 과거가 드라마의 현재 배경으로 다루어질 때는 아쉽기도 했다. 한국에 온 북한 병사들의 좌충우돌 행동과 말, 그들의 어색한 한국 문화 적응 모습들이 보였다. 한국 사회에서 북한 관련 드라마를 만드는 현실에 대한 제작진의 고민이 담긴 흔적으로 이해하면서 보았다. 시청자들은 이정효 PD의 말처럼 북한을 드라마의 소재로 삼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현실의 상황과 굳이 연결시키려 하지 않았다. 〔…〕 일각에서는 북한이라는 소재를 사용했다는 것만으로도 불편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게 사실. 기독 자유당의 이번 고발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허구로 진행되는 이야기임을 드라마가 밝힌 만큼 '사랑의 불시착'이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고 볼 수 있을지는 회의적인 시각이 다수다.(《헤럴드경제》 2020년 1월 22일자, "북한군 미화 vs 판타지“) 위 기사를 더 읽어보면 이 드라마를 두고 제작자는 “북한 설정을 일종의 판타지(상상)”로 이해해 달라고 당부한다. 시청자의 댓글에는 “드라마는 허구다” 등의 반응이 있다. 다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한편으로 국가보안법을 염두에 둔 작가와 제작자의 우문현답으로 와 닿았다.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의 한 장면 여러 장면 가운데 유럽에서 두 주인공이 한 번은 여행지에서 흔히 경험하는 사진 촬영을 도와주었고 나중에는 연인이 되어 한반도 밖에서 재회하는 장면이 와 닿았다. 이는 정말 작가의 상상력일까? 아니면 저런 만남의 개연성을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등의 궁금증이 계속 생겼고 드라마를 끝까지 보았다. “(이 드라마를) 현실의 상황과 굳이 연결시키려 하지 않았다.”라는 시청자들의 반응이 아쉬웠다. 최소한 내 기준으로 이만큼 사실에 근거를 두고 남북을 소재로 다룬 드라마를 참 오래간만에 보았다. 예를 들어 제3국에서 남북이 만나고 재외동포가 북한에서 살아가는 모습 등은 그동안 내가 연구해온 내용과 닮았다. 이 드라마가 사람들에게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고 현실과 다르다고 넘어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여운이 드라마가 끝나고도 오래 남았다. 나중엔 드라마 홈페이지를 찾아보기까지 했다. 기획 의도의 첫 부분은 “대한민국 여권” 이야기로 풀고 있었다. 대한민국 여권은 유능하다. 우리 여권만 있으면 무비자로 갈 수 있는 나라가 무려 187개국에 이른다. 하지만 어디나 통하는 이 여권으로도 절대 갈 수 없는 나라가 가장 가까이에 있다. 언어와 외모도 같고 뿌리도 같지만 만날 수 없고 만나선 안 되는 사람들이 사는, 이상하고 무섭고 궁금하고 신기한 나라. 때문에 우리는 더욱 궁금하다. 이 내용을 보는 순간 드라마 팬을 떠나서 직업병이 도졌다. “이상하고 무섭고 궁금하고 신기한 나라”라는 표현은 북한에 대한 제작진의 주관적인 생각이다. 위의 내용에는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것들이 보였다. 한국 사람의 북한 방문 그리고 한반도 안과 밖에서의 북한 사람과 한국 사람의 만남에 대한 내용이 그렇다. 먼저 “여권으로도 절대 갈 수 없는 나라”, 북한은 아님을 통일부 홈페이지만 찾아보아도 알 수 있다. “북한 및 남한 방문”에 대한 절차 안내가 있다. 물론 무비자는 아니다. 복잡하다. 북한 지역을 방문하는 남한 주민은 북한 방문 증명서를, 남한 지역을 방문하는 북한 주민은 남한 방문 증명서를 발급받아 소지하여야 합니다. 판문점을 통해서 남북한을 직접 왕래하는 것은 물론, 제3국을 경유하여 남북한을 왕래하는 경우도 포함됩니다. 북한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북한에서 발급한 초청장이 필요합니다. 정부 차원이 아닌 남한 주민의 북한 방문은 1989년부터 시작된다. 역사가 약 30년도 넘었다. 통일부 통계에는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인원뿐만 아니라 평양을 방문한 인원도 포함되어 있다. 2020년까지 북한 방문 인원이 1,415,438명이다. 백만 명이 넘는 규모다. 다음은 통일부 홈페이지에 있는 “북한 주민 접촉”에 대한 설명이다. 북한 주민을 직접 대면하여 의사를 교환하는 것은 물론, 중개인(제3자)을 통하거나 전화, 우편, FAX, 전자우편 등의 통신수단을 이용한 의사 교환도 포함됩니다. 북한 주민 접촉하기 위해서는 남북 교류 협력시스템 누리집(https://www.tongtong.go.kr/)에서 사전 또는 사후 신고를 해야 합니다. 이처럼 북한이 “만날 수 없고 만나선 안 되는 사람들이 사는” 그리고 “여권으로도 절대 갈 수 없는 나라”는 아니다. 통일부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표현을 그대로 인용해보겠다. 1988년부터 여러 “법령이 제정됨으로써 우리(한국) 법의 테두리 안에서 남북 교류 협력이 안정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였다.” 최소한 1990년대 전후부터 제한적으로 만날 수 있고 만나도 되는 사람들이 사는 나라이자 다른 몇 가지 서류가 갖추어지면 여권으로 갈 수 있는 북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