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나티스트의 유혹: 중국 천주교에서의 논란발행일 : 2020년 5월 5일 2022년 「평화의 길」 특별 기획으로 이웃 국가 중국의 ‘천주교회’의 역사와 오늘날의 모습, 그리고 바티칸과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하여 관련 칼럼을 번역하여 소개합니다. 글의 영역본은 예수회 교양지 「치빌타 카톨리카」(La Civiltà Cattolica)의 <교회 생활Church Life> 코너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www.laciviltacattolica.com/the-donatist-temptation-a-controversy-in-the-chinese-church/* 이번 기사의 원문은 <가톨릭 치빌리카>에서 유료로 제공되고 있습니다. 307년 ‘막센티우스(Maxentius)의 평화’와 그에 따른 공식적인 박해 중단은 교회 내 폭력적인 갈등으로 이어졌다. 도나투스(Donatus) 주교가 이끄는 ‘순수한 자들’은 ‘배신자’(신성한 책과 그릇을 넘겨준 자들)와 ‘배교자들’(주교들을 시작으로 박해 중에 ‘쓰러진 자들’)의 재입교를 거부했다. 순수한 자들은 특히 배신자와 배교자들의 사제 직무 금지를 바랐다. 6세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충돌이 지속됐다.[1] 순수성에 대한 필요성 때문에 온갖 종류의 과도함이 특징이 되어버린 도나티즘에게 가장 큰 적은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이였다. 도나티즘의 몇 가지 특징은 이미 2세기 말과 3세기 초에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us)가 한동안 고수했던 몬타니스트 운동에서도 나타났다. 오늘날 사회와 교회 풍조 모두 때로 성급하고 비타협적인 판단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잠시 숨을 고르고 교회에서 취한 단호한 입장의 의미와 범위를 이해할 시간을 갖고, 이를 통해 배교했던 이들이 회개를 한다면 다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교회는 성인이 아니라고 판단되는 이들을 제외시키면서 ‘성인’으로만 구성되었다고 할 수 없다. 오늘날 중국의 상황은 4세기 상황과는 많은 측면에서 다르다. 그러나 일부 유사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일부에서는 순수한 자에 비해 배신자라고 여겨지는 이들을 낙인 찍고 싶어하고 그 어떤 타협도 거부하며, 항상 거부할 것이라는 점이다. 당국자들과 대화하는 사람들의 동기는 으레 의혹의 시선으로 본다. 어떤 글에서는 다정함과 사랑보다는 적을 저주하는 것에 더 가까워 보이는 ‘순교’라는 말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몬타니스트와 도나티스트 운동에서는 이미 ‘순교’라는 주제는 ‘성전(聖戰)’을 연상시키는 것으로 보이며, 폭력에 도취돼 가장 성스러운 명분까지 왜곡시킬 수 있을 정도로 보인다.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Semper reformanda)” 2018년 9월 22일 교황청은 중국 정부와 잠정적 합의를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합의 내용은 향후 주교 임명 방식에 관한 것으로 정확한 내용은 밝혀지지 않았다. 합의는 중국 정부가 종교의 중국화를 더욱 강화하려고 시도하고 있는 와중에 체결되었다.[2]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려 왔던 중국 교회 상황의 일부분이기도 하다. 지난 20~30년에 걸쳐 사회, 문화적 요인에 의해 형성된 상황이며, 정치적 요인만으로 형성된 것도, 정치적 요소가 다른 것보다 더 컸던 것도 아니다. 중국 천주교 신자 수는 2005년 1,200만 명으로 정점에 달했으며, 최근 몇 년간 큰 변화가 없다가 지금은 줄어들고 있다. 앤서니 램(Anthony Lam)은 전체 천주교 인구를 1,050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게다가, 1996년에서 2014년 사이 남성 성소자는 2,300명에서 1,260명으로 여성 성소자는 2,500명에서 156명으로 줄어든 것으로 램은 추산하고 있다. 서품 건수도 2000년 134건에서 2014년 78건(2013년 66건)으로 줄어들었다.[3] ‘들판의’ 천주교에서 ‘도시의’ 천주교로 변화한 것이 이런 추세의 부분적 원인이며, 이는 그리스도교 관련 새로운 통계 테이터를 만든다. [4] 합의 발표 4일 후인 2018년 9월 26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중국 천주교 신자와 보편교회에 보내는 메시지”가 발표되었다.[5] 여기서 몇 가지 요점을 살펴보고자 한다.화해. “저는 교황의 승인 없이 서임된 나머지 7인의 ‘공식’ 주교에게 화해를 허락하고, 관련된 모든 교회법적 제재를 해제하여 완전한 교회적 친교를 위해서 이들을 다시 받아들이기로 결정했습니다. 이와 동시에, 그들에게도 교황청 및 전 세계 교회와 회복된 통합을 구체적이며 가시적인 제스처로 표현해 줄 것을, 그리고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신앙을 지켜줄 것을 요청합니다.” (No. 3). 실용주의, 그리고 과잉정치화 거부. “합의는 도구일 뿐, 그 자체로 기존 문제 모두를 해결해 주진 못합니다” (No. 5).게토에 갇혀 살지 말라는 격려. “시민적, 정치적 차원에서 중국 천주교 신자들은 최선을 다해 조국을 사랑하고 근면 성실로 국가에 봉사하는 선량한 시민이어야 합니다. 윤리적 차원에서는, 많은 중국 시민들이 공동선과 사회 전체의 조화로운 성장에 있어 중국 천주교 신자들의 더 큰 헌신을 기대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특히, 천주교 신자들은 하느님 나라에 대한 믿음으로 예언적이고 건설적인 기여를 해야 합니다. 때로는 무익한 반대가 아니라 더 정의롭고 인간적이며 개인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비판적인 말을 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No. 6) 중국의 젊은 층 천주교 신자들을 위한 구체적인 격려. “주님께서 당신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하시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거듭나는 은총의 힘으로 경이로운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맡겨 보십시오. 최근의 고통스러운 경험과 아직 치유되지 않은 상처가 있더라도 형제애, 만남, 대화와 용서의 능력, 봉사 정신의 길로 당신을 부르시는 그분의 음성을 경청하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진정한 만남의 문화를 키워 나간다는 관점에서 용감한 형제애적 여정을 시작하기 위해 개인의 편견과 집단과 공동체 간의 갈등을 넘어설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하느님의 자비로운 계획을 분별하는 데 마음과 생각을 열어 주십시오.” (No. 8). 이 메시지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환상 속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교황은 중국을, 국제사회와 중국 시민의 관점에서 논란의 여지가 없는 법의 원천인, 주권 국가로 인정하고 있다. 이 점은 명백해야 하며, 국가의 주권 행사 방식, 특히 일당체제 국가로서의 헌법에 대한 도덕적, 정치적 판단과는 무관하다. 다른 국가와 마찬가지로 중국에서도 교회는 신자들과 단체들의 지위에 관한 문제와 국제사회의 미래와 관련된 문제들에 대해 대화할 의무가 있다. 또한 신자들이 자신의 신앙을 실천하고 개인과 공동체의 사리분별을 위해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는 것도 국가의 범위 안에서 이루어진다. 동일한 정신은 2019년 6월 28일 교황청 공보실에서 발간한 “중국 성직자의 행정 등록에 관한 교황청 사목 지침”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 지침은 무엇보다 지금도 ‘지하’교회에 속하는 사제와 주교들을 우려하고 있는데, 이들은 중국 교회의 재통합 촉진을 위해 행정 등록을 결정했으나, 모호하고 수용할 수 없는 요구사항에 직면하게 되었다. 행정 등록을 하는 경우, 서명인은 “서명하는 즉시 천주교 교리 원칙을 충실히 지킬 의무에 따라 행동할 것임을 서면으로 명시해야 한다. 서면으로 명시하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 신청인은 최소한 구두로, 가능하면 증인이 입회한 가운데 이를 명확하게 해야 한다. 각각의 경우, 신청인은 교구장에게 어떤 의도로 등록을 했는지 증명해야 한다. 사실상 등록은 항상 일치의 영 안에서 교구 공동체의 선익과 성장의 촉진 및 중국 사회 새로운 수요에 걸맞은 복음화, 책임 있는 교회 재산 관리를 강화할 목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동시에, 교황청은 양심에 따라 현 상황에서는 등록이 불가하다고 판단한 사람들의 선택도 이해하고 존중한다.”[6] 공동체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삼는 것(목자는 공동체를 보호하고 공동체의 신앙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점에서)과, 사람들과 다양한 상황을 존중하는 분별력이라는 두 가지 요소는 만인이 동의할 수 있는 교회적이며 도덕적인 전통이다. 반복되는 비판그러나 아직 보편적인 동의가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요셉 젠(Joseph Zen) 추기경에 따르면, 행정 등록은 “중국 신자들을 교황과 별개로 존재하며 중국 공산당의 명령에 따르는 분립된 교회로 입문하도록 부추긴다”. ‘18세 미만 미성년자의 종교 활동 참여 금지’를 포함한 중국공산당의 모든 명령은 반드시 존중받아야 한다. 요셉 젠 추기경은 베이징이 ‘사목 지침’을 ‘급진적으로 수정’하여, “정상적인 것이 비정상이 되고, 합법적인 것이 묵인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7] 젠 추기경이 여러 차례에 걸쳐 반복하여 강조해온 내용 외에도, 다른 이들도 젠 추기경의 비난에 동조하고 있다. 예를 들어, 베르나르도 체르벨레라(Bernardo Cervellera)는 “몇몇 공식, 지하 사제들에게 사목지침 내용은 ‘모호’합니다. 신앙의 규칙 없이 모두가 알아서 결정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바티칸과 세계 교회의 박해, 파괴, 금지에 대한 침묵은, 중국 교회는 국가에만 속한 국가 교회라는 베이징의 비전을 확인시켜 주는 것입니다.”[8] 베아트리체 륭(Beatrice Leung) 수녀는 [2018년 9월 22일]의 합의는 천주교 대의에 기여하는 바는 미미한 반면, 시진핑이 추구하는 종교 중국화 정책에 도움이 되었습니다.”라고 지적했다.[9] 때로 합의에 반대하는 비판의 목소리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권장하는 교회의 방향에 조직적으로 반대하는 데 특화된 웹사이트의 지지를 받을 때 특히 더욱 폭력적인 양상을 드러낸다. 교황청에 대한 중국의 정책이, 다른 요인(회칙「사랑의 기쁨Amoris Laetitia」, 아마존 시노드 등)과 맞물려 전통과 원칙의 ‘파괴’에 기여한다고 하는 언사까지 나오게 된다. 안타깝게도 그러한 반대를 지지하는 단체들은 중국에서도 이를 퍼트리는 데 주저함이 없으며, (이미 충분한 시험을 거친) 중국 교회도 유사한 논쟁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마치 당구대에서 ‘중국’ 공이 ‘로마’ 공을 더 잘 치는 게 목표인 것처럼 보인다. 일상의 인내심에서 나타나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회복력젠 추기경과 베르나르도 체르벨레라의 분석은 일당체제 국가인 중국이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추구한 목적을 잘 보여준다.[10] 즉, 중국공산당은 ‘국가’ 종교의 신자 공동체 전체를 ‘행정 당국의 종교’로 종속시키면서 그 내용과 전례적 표현을 정교화시키려고 애썼다. [11] 이러한 목적은 대상에 따라 성격과 적용되는 내용이 약간씩은 다르겠지만, 점진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규제의 형태를 띠고 있다. 그럼에도 일부 명백한 사실은 알려야 한다:– 종교가 발전하는 법적인 틀이 아무리 제한적이다 할지라도, 요구사항이 얼마나 이데올로기 편향적인지는 몰라도, 분명한 것은 배교가 요구되지는 않는다는 점이고, 중국 헌법 36조에는 공식적인 종교의 자유를 계속적으로 보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공식적인 연설에서 그 시대에 대해 보여주는 지지가 우려되기는 하지만, 현시대는 문화대혁명과 동일시 될 수는 없다. – 중국공산당이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세우고자 하는 ‘행정 당국의 종교’와 함께 종교 단체를 유순한 협력자로 만들려는 욕망이 모든 종교와 시민사회의 모든 표현에까지 확대되고 있다. 중국 개신교 통치 기구에 가해진 압력을 고려하면, 2018년 9월 합의 이후 지금까지는 현재 가톨릭교회는 비교적 안전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 오늘날 중국 천주교 신자의 대부분은 현 정부하에 태어났으며 정부의 수사(修辭) 혹은 수사학을 해석할 줄 안다. 많은 동료 시민들과 마찬가지로 비판적인 거리를 두고 수용하는 법을 알고 있다. 개종을 했든 계속 신앙을 유지했든, 중국 천주교 신자들은 분별력이 있다. 그들은 체제에 ‘적응’한 것이며, 요컨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일상생활에서 분별력을 발휘하는 법을 안다. – 마지막으로 중국 천주교 신자들의 애국심은 동료 시민들만큼이나 강하며, 애국심은 성급한 비타협 정신보다 책임감 있고 신중한 태도를 요구한다. 비타협 정신으로는 곧 고립 상태가 될 것이며, 중국 사회와 더 멀어지는 결과를 불러올 것이다. 특히 우리가 상하이에서 목격하고 있는 것은[12], 세례 후에 교구에 종종 적극적인 기여를 하는 예비자를 고정적으로 모으고 있는 현대 공식교회 본당들의 회복력이다. 교구의 기능을 담당하는 평신도 그룹(중간 크기 교구에는 12개 그룹)은 독서 봉사, 음악 활동, 새 입교자 환영과 양성 기능을 제공한다. 종종 동일 규모의 서양 교구보다 더 세심한 기능을 제공한다. 직무를 수행하는 사제는 종무국에서 조직한 “훈련 과정”에 정기적으로 반드시 참여해야 하지만, 공동체 존재를 보호하고 있다는 인식에서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도의적 비난을 받을 만한 행동을 할 필요가 없었다고 느끼고 있지만, 일정 한계선을 넘어서는 일을 요청받으면 분별력을 발휘할 준비가 되어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2019년 6월 사목 지침에 명백히 언급된 “일치의 영 안에서 교구 공동체의 선익과 성장의 촉진 및 중국 사회의 새로운 수요에 걸맞은 복음화, 책임 있는 교회 재산 관리를 강화할” 목적을 발견한다. 자신을 환영해 주는 본당을 찾은 귀의자들이 그곳에서 세례의 길로 가는 성장을 했는데, 뉴욕, 홍콩이나 로마에서 수립된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서 본인들의 교회적 뿌리를 버려야 하는 것인가? 그들이 개방된 공동체들로 존재할 수 있도록 하는 상황과 무조건 극단적인 결정을 취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혹은 발생한다고 하면)을 분별할 능력이 없는 것인가? 무엇보다 ‘공동체의 선익과 성장을 촉진하기 위한‘ 바티칸 정책을 비난하는 많은 사람들은 현안을 ‘지나치게 정치 이슈화’하는 것 같아 보인다. 일부 연설은 프랑스 혁명 기간과 그 이후 프랑스 ‘이민자’들이 강압에 의해 프랑스 외 지역으로 피신한 것처럼 생각하게 만든다. 즉, 연설은 상황을 계속해서 과장되게 표현하여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것이 특징이었다. 그러한 ‘투지 넘치는’ 연설에 전념하는 사람들이 실상 천주교 신자들의 이익을 일당체제 국가인 중국을 공격하려는 내밀한 목적에 종속시켜서 천주교 신자들의 투쟁이 아닌 곳에 중국 천주교 신자들을 연관 지으려는 것 같은 느낌을 상당히 자주 받게 된다. 이러한 중국 공동체는 그들 자신의 상황에서 그들 자신의 특징에 따라 그리스도를 매일 만나는 삶을 살도록 내버려 둘 필요가 있다. 폴리우토(Poliuto)[13]가 추구했던 방식으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순교를 추구해야 할 필요가 없으며, 그들이 자신들의 십자가를 지고 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임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그들을 직접적인 대립의 길로 안내하는 것은 심히 무책임한 것이며, 그들 공동체 속에서 함께 살아갈 것이 아니라면 더더욱 무책임한 것이다. 서거 후 공개된 영적 유언에서 하이메 오르테가 알라미노(Jaime Ortega y Alamino) 쿠바 추기경은 “재외 쿠바 동포들의 비난, 공격, 오해”에 직면했을 때 어느 정도 비통함을 표현했다.[14] 중국 교회 지도자들에 대한 분노가 때로 감지할 수 있을 정도이다. 종종 분별력을 발휘하기 매우 어려운 것도 사실이지만, 어려움이 커질 때 가라지의 비유(참조. 마태 13, 24-30)를 다시 읽는 것이 좋겠다. 생명의 뿌리를 자르지 않기로 한다면, 밀과 가라지가 같이 자라도록 내버려 두기로 한다면, 절대 잘못될 일은 없을 것이다. 심판하는 자는 심판 받게 된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잘못될 일은 없을 것이다. * * * 추기경단 단장 조반니 바티스타 레(Giovanni Battista Re) 추기경의 서한2020년 2월 26일, 바티칸 (Prot. N. 1/2020) 친애하는 추기경 여러분,살레시오회 소속의 요셉 젠(Joseph Zen Ze-kiun) 추기경의 다양한 공개적 개입, 특히 홍콩 명예 주교가 추기경단의 회원들에게 보낸 2019년 9월 27일자 서한과 관련하여, 저는 몇 가지 고려 사항을 공유하고 중국 교회에 관한 복잡한 문제를 차분하게 평가하는 데 도움이 될 요소를 제시하는 것이 저의 의무라고 느낍니다. 저는 먼저 중국 천주교 교회 상황에 대한 접근에서 마지막 세 교황의 생각과 행동이 깊은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점을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진실에 대한 존중으로 그들은 반대가 아닌 양측 간의 대화를 발전시켰습니다. 특히 그들은 주교 임명이라는 까다롭고도 중요한 문제를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따라서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한편으로는 1958년 이래로 불법적으로 축성된 주교들의 완전한 친교로의 복귀를 지지했으며, 동시에 '비공식' 주교와 사제가 이끄는 '비밀' 공동체의 삶을 지원하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습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주교 임명에 관해 정부 당국과 공식적인 합의에 도달하기 위한 방안을 장려했습니다. 초안 작성에 20년 이상이 걸린 이 합의는 2018년 9월 22일에야 베이징에서 서명되었습니다.젠 추기경은 나쁜 합의는 차라리 없는 게 나을 것이라고 여러 차례 언급했습니다. 마지막 세 명의 교황은 이 입장과는 달랐고, 현재로서는 유일한 가능성으로 보이는 합의의 초안 작성을 지지하고 함께 했습니다.특히 “서명된 합의는 교황 베네딕토가 당시 서명을 거부했던 것과 같은 것이다”라는 추기경의 발언은 놀랍습니다. 그 주장은 진실과 다릅니다. 국무원의 현재 문서고에 있는 문서를 개인적으로 조사한 결과,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중국 주교 임명에 대한 초안 합의를 승인했었으며, 2018년에야 서명이 된 것뿐이라는 점을 여러분께 확실히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이 합의는 중국에서 주교를 임명하는 과정에 교황 권한의 개입을 가능하게 해 줍니다. 또한 이 확실한 사실을 기점으로 하여, '독립교회'라는 표현은 더 이상 과거와 같이 교황으로부터의 ‘분리’로 절대 해석할 수 없습니다.안타깝게도 획기적인 이 변화로 비롯될 모든 결과를 교리 차원과 실질적인 관점에서 설명하는 속도는 더디고, 긴장과 고통스러운 상황이 남아 있습니다. 더욱이, 주교 임명에 관한 주제만을 다루는 부분 합의가 교회 생활의 다른 측면에까지 거의 자동적으로 즉각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2019년 6월 28일자 "중국 성직자의 행정 등록에 관한 교황청의 사목 지침"을 평가하면서 젠 추기경은 다음과 같이 씁니다. "신앙에 반하는 글이 서명되고, 공동체의 선익, 좀 더 적절한 복음화, 책임 있는 교회 재산 관리가 의도라고 선언합니다. 이 일반 규칙은 명백히 그 어떤 도덕 원칙에도 위배됩니다. 이를 수용한다면, 배교를 정당화하게 될 것입니다" (두비아(Dubia) 참조). 그러나, 사목 지침은 오히려 너무 복잡하고 어려워서 개인적 양심을 위태롭게 할 수 있는 상황에서 신앙을 보호하기 위한 바로 그 목적으로 고안된 것입니다.추기경은 서한에서 "중국 교회를 적으로부터 보호하고 방어해야 하는 사람들이 중국 교회를 죽이고 있다"라고도 언급했고, 특히 인터뷰에서는 천주교 신자들을 향해 "더 나은 시절을 기다리십시오, 카타콤바(지하묘지)로 되돌아 가십시오. 공산주의는 영원하지 않습니다." (뉴욕 타임즈(New York Times), 2018년 10월 24일)라고 했습니다. 교황께서 추기경의 말을 여러 차례 경청하고 그의 서한도 읽었음에도, 추기경의 발언은 '비밀' 천주교 신자들에게 교황께서 제시한 사목 지침에 이의를 제기하는 불행히도 매우 논란이 되는 발언입니다.친애하는 형제 추기경 여러분, 젠 추기경의 고통스러운 개입은 중국 교회의 길이 여전히 얼마나 험난한지, 그리고 목자들과 교황님의 사명이 얼마나 복잡한지를 우리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오랫동안 고통 속에서도 복음을 위한 화해, 일치, 선교의 길에서 주님에 대한 독실함을 보여준 중국 천주교회의 공동체를 성령께서 지탱해 주시도록 그분과 한마음으로 열렬히 기도해야 합니다.진심을 담아 안부를 전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레 추기경 * * * 이글의 필자 브누아 버만더(Benoit Vermander)는 프랑스 예수회 신부이며 교황청 종교간대화평의회 고문으로, 현재 중국 상하이 복단(复旦)대학 철학과에서 가르치고 있다. * * * [1]. 신 도나티스트 기류 가능성의 위험에 관하여, cf. A. Gonçalves Lind, “베네딕트 옵션. 오늘날 사회에서 그리스도인의 역할은 무엇인가?” laciviltacattolica.com/the-benedict-option/ [2]. 브누아 버만더(B. Vermander), 종교 10 (2019) “종교의 중국화, 종교 연구의 중국화” 1-23; Id., 치발타 카톨리카 영어판 5월 “그리스도교를 더 중국적으로 만드나?” laciviltacattolica.com/making-christianity-more-chinese-pastoral-perspectives/[3]. 참조 A. Lam Sui-key, "중국 천주교 인구 감소와 교회에 미치는 영향" AsiaNews.it, 2016년 8월 23일 (www.asianews.it/news-en/The-decline-of-China's-Catholic -population-and-its-impact-on-the-Church-38373.html). 참조 I. Johnson, 2017년 9월 18일 미국, “상부체계가 비대한 천주교 교회가 어떻게 중국 현지에서 설 땅을 잃어버리고 있는가”[4]. 1950년 중국 인구 중 도시 거주자의 비율은 12%, 1978년 20%, 2012년 52%였고, 2019년에는 60%가 넘었다.[5]. 프란치스코, “중국 천주교 신자와 보편 교회에 보내는 메시지”, 2018년 9월 26일.[6]. “중국 성직자의 행정 등록에 관한 교황청 사목 지침”, 2019년 6월 28일[7]. C. Lesegretain(with CNA, Ucanews)에서 인용 “2019년 9월 27일, 홍콩 명예 주교 요셉 젠 추기경이 추기경단의 모든 구성원에게 보낸 편지”, “Polémique autour d 'une lettre du cardinal chinois Zen", 라쿠르아(La Croix), 2020년 1월 9일. 추기경단 단장인 조반니 바티스타 레 추기경이 모든 추기경들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을 이 글 말미에 포함했다.[8]. B. Cervellera, AsiaNews.it, 2019년 9월 12일 "중국-바티칸 합의 전후 중국의 종교 정책".[9]. B. Leung, “중국 천주교회: 중국-바티칸 합의 1년 후” 2019년 11월 26일, 조지타운 대학교 – 버클리 센터 (https://berkleycenter.georgetown.edu/responses/the-catholic-church-in-china-one-year-after-the-sino-vatican-agreement)[10]. 1982년과 2012년 사이에 추구한 정책에서 분명히 방향이 변경됐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11]. B. Vermander, Esprit의 " Le rêve chinois de religion civile " 참조, n. 451, 2019, 171-182.[12]. 그러나 이 교구에서 주교는 2012년 7월부터 더 이상 정상적으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다.[13]. 1641년 피에르 코르네유(Pierre Coneille)가 쓴 비극의 동명 주인공이다.[14]. J. 오르테가 이 알라미노, Palabra Nueva, “Todo es nada, solo Dios”, 2020년 1월 23일 (http://palabranueva.net/new/gracias-jesus-m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