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혜원(북한대학교대학원 박사 수료) 3월에 개학하는 우리와 달리 북한은 4월에 개학일을 맞는다. 누구는 이를 두고 일본식을 따랐다든가 혹은 유럽식이라고 평가한다. 내가 인민학교(남한의 초등학교에 해당하며, 지금은 소학교로 부른다)를 다닐 때까지만 해도 9월에 입학식을 했으니 전혀 근거 없는 얘기는 아닌 것 같다. 북한 평양 서성구역 장경소학교 ©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직업군인이셨던 아버지 덕분에 나는 무려 3곳의 고등중학교를 경험했다. 사실상 거주 이전의 자유가 제한되어있는 북한에서는 드문 경험이기도 하다. 유치원에서 대학교까지 한 학급 동기로 지내다 졸업 후 같은 직장에서 일하면서 결혼까지 하는 친구들이 있을 정도로 북한은 인구 유동이 적다. 거기에 매년 학급이 바뀌는 남한과 달리 북한은 학교 입학 때에만 학급이 바뀌다 보니 동네 웬만한 또래 친구는 당연히 동문이고, 10년 넘게 한 학급 동기로 지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지금이야 북한도 소학교 5년, 초급중학교 3년, 고급중학교 3년 이렇게 나뉘어 있지만, 김정일 시대까지만 해도 인민학교 4년과 고등중학교 6년이 전부였다. 10년간 학급이 바뀌는 기회가 단 두 번뿐이라는 얘기다. 김정은 시대, 북한은 학교 기간과 유치원 높은반(낮은반과 높은반으로 2년 구성) 1년을 포함하여 11년제 의무 교육이라 자랑했었다. 김정은 시대 들어서는 12년제 의무 교육(유치원 높은반 1년, 소학교 5년, 초급중학교 3년, 고급중학교 3년)이라고 선전한다. 이런 북한에서 3곳의 고등중학교를 경험했으니 흔한 사례는 아니다. 더욱이 맨 마지막으로 다녔던 학교는 바로 북한의 특성화고인 “윤전기재학교”였다. 평양 대성구역 '6월9일룡북기술고급중학교(고등학교)' ©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북한의 특목고 격이라 할 수 있는 1고등중학교, 외국어학원, 혁명학원 등은 외부에도 익히 알려져 있다. 이와 달리 윤전기재학교와 같은 북한의 특성화고가 잘 알려지지 않은 까닭은 수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전학 당시 선생님으로부터 윤전기재학교는 “우리 공화국에 딱 9개만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북한은 스스로를 ‘우리 공화국’이라 칭하는 데 익숙하다.) 나는 그 9개의 윤전기재 특성화고 중 한 개를 경험한 것이다. 내가 다닌 윤전기재학교는 일반학교와 달리 남학생과 여학생반이 구분되어 있었다. 우리 학년에는 남학생 학급 4개, 여학생 학급 4개 이렇게 나뉘어 있었는데 일반학교와 다른 점은 학생 모두 ‘자동차 기초’라는 과목을 듣는 것이다. 크랭크축, 베어링, 클러치 페달의 원리 등 생소한 단어에 당황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남학생과 여학생의 구분은 학년이 높아질수록 자동차 세부 전공이 달랐기 때문인 걸로 기억하고 있다. 여학생들은 자동차 기초에서 끝나지만, 남학생들은 ‘자동차 실습’ 과목까지 심화 수업을 더 들어야 한다. 그래서인지 매년 우리 학교 졸업생 중 남학생 몇 명은 ‘운전자격’을 취득했다. 북한에서의 운전면허는 단순한 운전뿐만 아니라 자동차를 수리·정비하는 능력을 갖춘 사람에게 주어진다. 그러나 특성화고라 해서 모두가 운전면허를 취득하는 것도 아니고 남학생들이라고 다들 운전면허 취득에 관심이 높은 것도 아니었다. 대부분은 일반학교의 학생들처럼 공부가 우선이었고, 선생님들도 ‘기계 속’ 밝은 학생보다는 공부 잘하는 학생을 더 좋아하셨다. 졸업시즌이 되면 운전면허 취득보다 중앙급 대학에 몇 명을 진학시킬지가 더 큰 관심사였다.(북한은 대학 등급을 중앙급, 도급, 시/군 급으로 구분한다.) 승리58(1958년형) 더욱이 윤전기재학교라 해봤자 우리 학교에 제대로 굴러가는 자동차는 ‘승리58’ 단 한 대뿐이었다. 승리58은 북한이 1958년 처음 제조한 자동차 브랜드로 한때는 북한의 운송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했으나 지금은 구시대의 산물로 취급받는다. 그 한 대의 승리58마저 휘발유 부족, 잦은 고장 등으로 굴러가는 시간보다 서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나중에 학교는 그 자동차를 목탄차로 개조해 사용했다. 목탄차는 디젤이나 휘발유엔진 대신 나무나 석탄을 연료로 움직이는 차를 말한다. 얼마 전 북한 매체에 따르면, 올해 북한 전역에서 130여 개의 기술고급중학교가 새로 생긴다고 한다. 산업미술, 피복 등 기술 분야도 확대할 예정이며, 이미 수백 개의 기술반이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해당 지역의 경제·지리적 특성을 고려하는 한편 교육내용의 실용화, 종합화, 현대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북한은 더욱 강화되고 있는 대북제재 상황에서 과학기술에 기반한 자력갱생을 ‘정면돌파전’-생존전략으로 내세우고 있다. 북한의 특성화고 확대도 이러한 정책 실현을 위한 교육 변화의 반영일 것이다. 다만, 북한의 애달픈 노력에도 불구하고 상황개선은 불투명한 현실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서도 개학, 새 친구 등은 설렘의 대상이다. 다음 학기엔 북한의 학생들에게도 설렘과 함께 가을의 풍요로움이 얹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