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덕희 베드로 신부(의정부교구 7지구장) 독일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에 파란색과 노란색 조명이 비춰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우크라이나에서 평화를 깨는 전쟁이 마침내 일어났습니다. 전쟁 발발 이후 그곳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수많은 폭격과 사상자들, 그리고 이를 피해 고국을 떠나는 난민들에 대한 기사들입니다. 평화를 바라는 수많은 사람들의 기도와 바람이 우크라이나를 향해 있습니다. 한 달이 넘게 이어지는 이 죽음의 행렬이 그치기를 우리 모두가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이 전쟁의 한가운데에서 우리는 또다시 평화에 대해 이야기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평화만이 이 싸움을 멈출 수 있기 때문입니다. 힘과 무기와 패권주의가 아니라 평화 협정만이 이 싸움을 멈출 수 있습니다. 화해, 평화로 가는 길 그러기에 우리는 평화로 가는 길을 함께 찾아야만 합니다. 바오로 6세 교황님은 이 평화로 가는 길이 ‘화해’에 있다고 강조합니다. “화해! 여러분, 화해에 관해 생각해 보시겠습니까? 화해라는 이 놀라운 단어가 여러분의 희망 사전에 그리고 여러분의 성공 사전에 한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화해는 평화에 이르는 길입니다”(1975.01.01. 제8차 담화). 교황님은 화해 말고는 평화에 이르는 다른 길이 없다고 말합니다. 화해와 일치는 우리가 평화를 이루기 위해 가야 할 길입니다. 특히 하느님과의 화해와 우리의 평화는 같은 공간을 차지합니다. 화해의 원리이신 하느님께서 편협된 우리의 이익과 아집을 평화와 일치로 바꾸어 주시도록 기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평화의 실제 무기들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수많은 무기들이 사용되었으며 이 무기들은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가는 데 일조했습니다. 무기는 생명을 위협하고 마침내 죽게 만듭니다. 생명을 죽이는 무기를 인간은 내려놓아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 모두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사람을 죽이는 무기가 아닌 평화의 무기를 사용해야 합니다.교황님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되묻습니다. “여러분의 무기는 무엇입니까? 전대미문의 치명적인 참화의 공포, 많은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실제로 인류를 거의 절멸시킬 수 있는 이 공포가 여러분의 무기입니까?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은 그런 평화가 자격이 있습니까?”(1976.01.01. 제9차 담화). 그분은 평화에 대한 다른 무기들을 사용할 것을 제안합니다. “무엇보다 우선 평화에 다른 무기들, 곧 인류를 살상하고 절멸하려는 목적을 가진 무기들과는 다른 무기를 제공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도덕적 무기’입니다. 이 도덕적 무기는 국제법에 힘, 위엄과 신망을 부여합니다. 국제법은 조약 준수의 맨 앞자리에 있는 무기입니다”(제9차 담화).평화의 또 다른 무기는 이렇습니다. “분별력이 있는 무장 해제는 평화의 또 다른 무기입니다. 인류는 ‘너희는 모두 형제’(마태 23, 8)라는 매우 뛰어난 원리로 평화를 무장시킵니다. 어떤 무기든 다 없애버리고 오로지 선과 사랑으로만 무장된 평화!”(제9차 담화). 이것이 우리가 갖추어야 할 평화의 무기입니다. 미사일, 핵과 같은 최신 무기가 아니라 우리는 선과 사랑으로 무장된 평화를 지녀야 합니다. 살상 무기들이 못 쓰는 고철이 될 때 우리의 평화는 우리 모두를 ‘진정한 형제’로 만들게 될 것입니다.평화는 평화 안에서만 그 진정성이 드러납니다. 또한 평화는 인격적 희생과 관대함, 그리고 자비와 사랑으로 자라납니다. 무기가 아닌 자비와 사랑만이 우리를 지켜줄 수 있고, 우리를 성장시킬 수 있습니다. 평화를 원한다면, 생명을 수호하십시오 평화는 꿈도, 유토피아도, 환상도 아닙니다. 평화는 역사라는 책에서 가장 멋진 페이지를 장식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화가 가능하다고 믿어야 합니다. 지금 이 전쟁의 상황 안에서도 평화에 대한 희망을 버릴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평화는 생명과 함께하기 때문입니다. ‘평화와 생명!’ 우리 사회에서 이 둘이 최상의 가치로 받아들여질 때 평화는 우리의 현실이 됩니다. 교황님은 말합니다. “평화를 원합니까? 그러려면 생명을 수호합시다. 생명은 평화의 왕관입니다. 평화는 틀림없이, 마침내 기쁨에 넘쳐 생명을 기념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진정한 그리고 행복한 평화를 누리기 위해서는, ‘생명을 수호하는 것, 생명을 치유하는 것, 생명을 증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1977.01.01. 제10차 담화).생명을 억압하는 모든 것들이 사실 평화를 저해하는 요인이 됩니다. 전쟁만이 아니라 우리 삶에 있어 생명에 대한 경시가 평화를 위협합니다. “평화를 해치는 것은 전쟁만이 아닙니다. 생명을 거스르는 모든 범죄가 다 평화에 타격을 가합니다. 인간 생명은 신성합니다. 이것은 생명은 반드시 생명을 억압하려는 그 어떤 임의의 힘으로부터도 독립돼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제10차 담화). 그러기에 평화는 언제나 생명과 관련해서 생각해 보아야만 합니다. 폭력은 안 됩니다, 평화는 됩니다! 제11차 세계 평화의 날 담화문(1978.01.01.)은 바오로 6세 교황님이 쓴 평화에 대한 마지막 담화문입니다. 그해 8월 6일, 교황님은 고령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선종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쓴 이 마지막 담화문은 평화에 대한 확신과 폭력에 대한 강한 저항이 담겨 있습니다.“반복해 봅시다. 평화는 순전히 이상적인 꿈 가운데 하나도, 매력적이지만 헛되고 성취할 수 없는 이상향도 아닙니다. 평화는 하나의 실재입니다. 분명히 하나의 실재입니다. 평화는 지성적이고 살아 있는 용기입니다”(제11차 담화). 평화를 이루기가 어렵더라도 평화 대신 폭력을 조장할 수는 없습니다. 교황님이 말씀하신 대로 ‘폭력은 용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전쟁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폭력은 용기가 아닙니다. 폭력은 맹목적 에너지 가운데 하나가 폭발한 것입니다. 맹목적 에너지는 그것에 굴복하는 사람을 이성의 수준에서 격정의 수준으로 낮추기 때문에 그의 품격을 떨어뜨립니다”(제11차 담화). 그 어떤 폭력과 전쟁도 정당화할 수 없습니다. 폭력과 전쟁은 이성의 판단에서가 아니라 편협함과 격정의 품격 없는 판단에서 기인하기 때문입니다.교황님은 이 담화문이 마지막이 될 것을 예측이라도 하시듯이 세상의 모든 어린이들에게 인사와 축복을 전하며, 그 축복의 암호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폭력은 안 돼요, 평화는 돼요!” 우리가 선택해야 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우리는 폭력과 전쟁이 아닌 평화를 지켜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