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선 벨라뎃따(평화사도 1기 & 동화작가, 평화운동가) 설마 했던 일이 사실로 일어났을 때의 당혹감이란, 한눈팔다 허를 찔린 기분이랄까. ‘이게 실화냐’, 한마디로 멘붕이었다. 21세기에 전쟁이라니, 푸틴의 선제 타격을 코웃음 쳤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전쟁은 터졌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젊은이들은 총을 들었다. 그동안 나는 제노사이드(대량학살) 관련 모임을 해 오고 있었다. 이 모임에서 우크라이나의 ‘홀로도모르’ 관련 책과 영화를 보게 되었다. 홀로도모르는 우크라이나어로 ‘기아로 인한 살인’을 뜻한다, 유대인 대학살인 홀로코스트와 같은 의미이다. 당시 소련의 자치 공화국인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은 세계 3대 곡창지대로 불릴 만큼 너른 들판을 가졌다. 영양이 담뿍 담긴 검은 흙은 심기만 하면 튼실한 열매를 내놓았다. 그 땅에 1932년과 1933년에 대기근이 발생했다. 당시 소련 수상인 스탈린은 산업화에 집중했고, 농산물 수출로 산업화에 필요한 자본을 공급하려 했다. 당연히 비옥한 땅, 우크라이나의 농장에 대한 집단화 계획을 세웠다. 개인 농장 경영을 전통적으로 해왔던 우크라이나인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그러나 스탈린의 계획은 실행되었고 우크라이나인들의 굶주림은 시작되었다. 영화 <홀로도모르>와 그래픽 노블 『2년간의 여행 기록 우크라이나 이야기』에는 배고픈 사람들의 처절한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당시 홀로도모르로 인해 죽은 우크라이나인들이 180만에서 1200만 명이나 된다고 한다. 책 『그러나 삶은 지속된다』에서는 홀로도모르를 피해 난민이 된 우크라이나인들의 캐나다 정착을 자세히 다루었다. 홀로도모르는 많은 난민을 낳았다. 우크라이나에서는 11월 마지막 토요일을 홀로도모르 기념일로 지낸다. 일본 ‘위안부’를 기념하는 ‘소녀상’처럼 홀로도모르 소녀상이 그날의 아픔을 말해주고 있다. 우크라이나 키에프에 있는 추모상 ©위키미디어“어른들은 아이들처럼 줄어들어 버렸고아이들은 어른들처럼 늙어버렸다.” 출처, 소설 <『차일드 44(child 44)』> 콰과쾅! 1986년 4월 26일 새벽 1시 30분, 폭발 소리가 천지를 뒤흔들었다.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가 폭발했다. 사람들은 평상시 일어난 화재보다 더 큰 화재로 여겼을 뿐이었고, 소방대원들은 진압에 나섰다. 물을 만나면 핵폭발의 위력이 더 강해진다는 걸 알지 못했다. 소련의 원전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고 붉은 광장에 세워도 괜찮을 거라고 가르쳤다. 사람들은 그 가르침을 믿었다. 그러나 체르노빌은 아우슈비츠보다 더 참혹했다. 체르노빌은 사람뿐만 아니라 그곳에 살았던 동식물까지도 모두 학살되었다. 체르노빌과 국경인 나라 벨라루스의 피해도 체르노빌과 흡사했다. 심지어 체르노빌의 구름은 나흘 만에 아프리카와 중국에 도착했다. 체르노빌에 살던 사람들은 모두 난민이 되었다. 여전히 체르노빌에는 사람이 살 수 없다, 2021년 9월 보고에 따르면 세계 33개국 415곳에서 원자력 기기가 가동되고 있다. 지구 종말을 앞당기기에 충분한 개수다.(『체르노빌의 목소리』) 표를 보면 56개로 2위인 프랑스에 비해 93개를 보유하고 있는 미국이 월등히 원자력발전소 수가 많다. 우리나라도 23개로 미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에 이어 다섯 번째로 많은 원자력발전소를 가지고 있다. 2011년만 해도 55기를 보유해 세 번째로 핵발전소가 많았던 일본은 9개로 엄청나게 줄어들었다. 2011년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로 원전이 전원을 잃었을 때, 얼마나 위험한 일이 발생하는지 우리는 경험했다. 우리나라도 2020년 태풍 마이삭과 하이선의 영향으로 원전 6기가 불시에 가동이 정지되는 일이 있었다. ©statista 표를 자세히 보면 우크라이나도 13개의 원전을 가지고 있다. 2월 24일 러시아군이 체르노빌 원전을 점거했다고 우크라이나 정부가 발표했다. 체르노빌 원전에는 영구 폐쇄된 1~3호기에서 나온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과 고농도 방사성 물질이 대량 보관되어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러시아군이 유럽 최대 규모의 원전 자포리자까지 점거했다는 것이다. 자포리자에 원전 사고가 발생할 경우 상당량의 방사능이 누출될 위험이 크다. 우크라이나를 비롯해 인접국과 더 많은 지역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 최악의 경우 최소 수십 년간 유럽 대륙의 광대한 지역에서 거주가 불가능해진다고 한다. 재난 규모가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보다 더 심각할 수도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집이 파괴되고 사람이 죽고, 동식물이 죽어가고 있다. 급기야 핵 공격까지 운운하고 있다. “제 이름은 이리나, 나이는 98살입니다. 저는 홀로도모르, 히틀러 그리고 독일인으로부터 살아남았습니다. 푸틴에게서도 살아남을 것입니다. 우크라이나에 영광을!” 이리나 할머니의 바람이 이루어지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한다. 샬롬, 우크라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