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저, 2017년, 문학동네 장은희 아녜스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청년 연구자 모임 샬롬회 회원) 역사가 외면해온 목소리를 담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책은 ‘목소리 소설’이라는 고유한 문학 장르로 분류된다. 그의 글은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찍듯 사람들의 인터뷰를 담아낸다. 날 것 그대로의 전쟁 경험을 전하는 그의 책에서 독자들은 외면받았던, 숨죽였던 역사를 다시 읽는다. 이 책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아연 소년들』에는 아프간 전쟁에 겪은 소년 병사와 그의 가족들의 ‘작은’ 목소리가 담겨 있다. 전투 기술이 없어 최전방으로 지뢰를 찾으러 내몰리고, 맨정신으로는 차마 작전에 나갈 수가 없어 군용 차량의 부품을 팔아 마약을 샀던 참혹한 목소리 말이다. 이 책이 출간된 후, 알렉시예비치는 조국의 신성한 전쟁과 참전 용사를 모독했다는 이유로 법정에 서야만 했다. 국가는 소년들을 적극적 가해자로 만들었다. 무기 공장에서는 소년들의 손에 알맞은 작고 견고한 무기들을 만들었다. 체육 시간에는 전투 기술을, 정치 수업에서는 전쟁 영웅들의 위업을 배웠다. 조국을 위한 애국심은 소년들을 전쟁터로 이끌었고, 총을 쥐여 줬다. 소년들은 살기 위해 총을 들었다. 끌려온 이들도 있었지만, 어렸을 때부터 배워온 ‘사회주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자진하여 아프가니스탄에 온 소년도 있었다. 아프가니스탄에 사회주의를 꽃피워 그곳 사람들을 돕고 싶었다. 토지를 분배하면 아프간 사람들이 기뻐할 줄 알았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아프간 사람들의 원망의 눈초리였다. 납작하게 눌러 빚은 통보리를 아프간 아이들에게 던져 줬더니 아이들은 그게 수류탄인줄 알고 줄행랑을 친다. 아프간 전쟁 참전 병사를 ‘용맹한 국제 용사’라고 치켜세우던 사탕발림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검게 그을린 전사의 모습을 상상하며 버틴 소년병들이 공훈 메달과 함께 고국에 돌아왔지만, 어쩐지 젊은이들이 공훈 메달을 바라보는 시선은 따갑기만 하다. 사람을 죽이고 받은 메달이라고 …. 마을에는 전쟁터에서 온전치 못한 몸으로 돌아오는 참전 병사들과 묘비들이 늘어났다. 전쟁 영화에서 보던 형재애와 명예로운 죽음은 없다고 깨닫고 난 후에도 아프간 전쟁의 진실을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그들은 당시 신문에서 보도한 것처럼 아프간에 다리를 놔주고, 우정의 가로수길을 만들고 온 것이 아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의 진실을 말했다. “이 학교 저 학교에서 전쟁 이야기를 들려달라며 우리를 초청하곤 해요. 하지만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죠? 전투 작전? 내가 처음 죽인 사람? 아니면 나는 아직도 어두운 걸 무서워한다는 이야기요? 뭔가 떨어지는 소리라도 나면 깜짝 놀라서 부들부들 떤다는 그런 이야기요? … 폭격이 끝나고 나면 마을은 사람 살던 곳이었단 사실을 상상도 못할 만큼 변해버렸다는 이야기를 들려줘야 할까요?” 저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와 아프간 전쟁에 파병된 소련 병사들 ©서울국제문학포럼 제공·인터넷 화면 캡처 / 동아일보 전쟁은 잔인했다. 소년병 중 일부는 전투에 가기 전 두려움을 없애려 마약을 손을 댔다. 마약은 늘 가까이에 있었다. 맨정신에 사람을 해칠 수 없어 마약을 했지만, 오히려 마약은 그들의 잔혹함을 부추겼다. 먹을 것이 부실하고 챙기는 돈이 적으니 상점을 약탈했다. 내 옆에 누워 자던 동료 병사의 죽음을 보곤 증오심에 휩싸여 아프간 사람들에게 복수했다. 증오심에 이성이 마비되고, 총을 드는 것이 일상인 전쟁터에서 죄책감은 잃은 지 오래다. 길을 지나는 노인과 당나귀를 쏘고, 상점을 약탈하기 위해 주인을 쐈다. 전쟁터에서 영웅으로 돌아오는 건 불가능했다. 자신이 쏘지 않으면 상대가 자신을 쏠 거라는 생각이 들고나면 애국심은 사라지고, 숭고한 이상은 부서진다. 전쟁은 소년병에게도, 그 가족들에게도 그리고 아프간 사람들에게도 잔인했다. 죄책감은 남겨진 이들의 몫이다. 늠름한 아들을 자랑스러워하며 전쟁터로 보냈던 어머니들이 눈물로 호소한다. 전쟁터로 갈 때는 정당한 전쟁이라 말하더니, 패전하니 이제는 필요 없었던 전쟁이 됐다. 소년들은 몸 어느 한 곳이 불구가 되어 전쟁에 쓸모가 없어지거나, 그 몸이 아연관에 뉘어지기 전까지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10만 명의 정규군이 파병되어 다치고 목숨을 잃었지만, 전쟁을 치르는 동안 세상은 변했다. 냉전 시대의 종말과 함께 끝을 맺은 아프간 전쟁은 사람들에게 잊혀 갔다. 전쟁은 사람들에게 잔혹하기만 했다. 수많은 목숨을 앗아갔고 삶을 망가트린 전쟁에 정당한 이유는 처음부터 없었다. 전쟁에 붙은 ‘정당한’이라는 수식어가 참담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