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경 비오 신부 (의정부교구 홍보국장) 2016년 초, 일본 나가사키로 성지순례를 간 적이 있습니다. 벌써 8년 전이네요. 성지를 순례하면서 박해를 겪은 순교자들의 자취가 너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죽음이라는 극한의 현실 앞에서 끝까지 흔들리지 않았던 신앙인들의 의연함에 감동했습니다. 그리고 깊은 인상을 받았던 또 하나의 순례지가 있습니다. 바로 평화공원입니다. 인류 역사상 유일하게 사용된 핵무기에 희생된 이들을 기리고, 핵무기가 얼마나 위험한 인류의 발명인지 경각심을 갖게 하는 장소였습니다. 처음엔, 전쟁을 일으킨 당사국이면서 지금 와서 전쟁의 피해자인 척하는 일본이 영악해 보여 색안경을 쓰고 다가갔지만, 막상 생생한 기록의 현장에서는 무죄한 민간인들의 피해 참상에 마음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욱이 핵폭탄이 떨어진 위치가 우라카미 대성당 바로 위였고, 그날은 성모승천대축일을 앞두고 판공성사를 보기 위해 수많은 신자가 성당에 모여있었다니 더욱 가슴이 아련해졌습니다. 또한 나가이 다카시 박사가 쓴 『묵주알』 『나가사키의 종』에서 읽었던 내용이 눈 앞에 펼쳐지는 것 같아 감정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우라카이 대성당 내 원폭으로 훼손된 성상들© 사진 김다혜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나흘간의 순례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기 위해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릴 때였습니다. 여전히 전쟁과 그 잔혹함 그리고 평화에 대해 깊이 생각을 곱씹고 있는데, 어디선가 제 귀를 의심하게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놈들한테는 핵무기 한 방 떨어뜨려 버려야 해.” 당시 연일 미사일을 쏴대던 북한을 향해 내뱉은 한국 사람의 말이었고, 놀라우면서 안타깝게도 그분은 제 일행이었습니다. 얼마 전,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끝났습니다. 한쪽은 환호했고, 다른 한쪽은 실망했습니다. 양강 체제로 이뤄진 선거에서 두 진영은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을 찾아 서로 공격하기에 바빴고, 그렇게 서로에 대한 분노를 자극했습니다. 의견 대립의 말 잔치 중에, 또 한 번 귀를 의심케 하는 말이 들려왔습니다. “선제타격!”사실 전작권 환수도 안 된 우리나라 현실에서 선제타격은 가능치도 않은 일이지만, 국가 최고 지도자가 되겠다는 사람에게서 나온 말이기에 경솔함이라 생각할 틈도 없이 ‘큰일!’이란 불안감이 엄습했습니다. 말 폭탄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지요. “주적은 북한!”“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완전히 실패했다.”“우리의 고위력 정밀 타격체계와 함께 한미동맹의 압도적인 전략자산으로 응징하겠다.”“선제공격 능력을 확보하고 그 의지를 보여줌으로써 전쟁을 막을 수 있다.”“종이와 잉크로 된 협약서 하나 가지고 국가의 안보와 평화를 지킬 수는 없다.” 잔뜩 힘주며 떵떵거리는 기운에 듣기만 해도 가슴 서늘해지는 발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주장한 후보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습니다. 어쩌면 그동안 한반도 평화를 위해 기도하며 애썼던 노력이, 마치 정성 들여 준비한 선물이 쓰레기통에 내던져지는 것처럼,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그리고 8년 전 들었던, “그놈들한테는 핵무기 한 방 떨어뜨려 버려야 해.”라는 말이 냉전 시대 박물관의 박제가 아니라 현실에 살아난 맹수처럼 느껴져 섬뜩합니다. “평화는 단순히 전쟁의 부재만이 아니며, 오로지 적대 세력의 균형 유지로 전락 될 수도 없고, 전제적 지배에서 생겨나는 것도 아니다. (…) 평화는 ‘정의의 작품’(이사 32, 17 참조)이다.” (「사목헌장」, 78항)“전쟁 억지책이 어떠하든, 상당히 많은 국가들이 보호책으로 삼는 군비 경쟁은 평화를 확고히 유지하는 안전한 길이 아니며 또 거기에서 이루어지는 이른바 균형도 확실하고 진실한 평화가 아니라는 확신을 모든 사람이 가져야 한다. 군비 경쟁으로 전쟁의 원인들이 제거되기는커녕 오히려 점차 증대될 수밖에 없다.” (「사목헌장」, 81항) 이미 57년 전, 가톨릭교회는 이러한 사실을 전 세계에 천명했습니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도 분단의 긴장과 아픔을 겪는 우리나라를 방문하셔서 평화가 ‘단지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상태’도 아니고, ‘힘의 균형이나 과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하셨지요. 2022년 대한민국에 사는 이들, 적어도 우리 가톨릭 신자들은 이점을 기억하며 평화를 위한 일에 힘을 쏟아야 할 것입니다. 국가의 최고 지도자가 바뀌면서 한반도 평화와 안전에 대한 기조 역시 크게 바뀔 거라 예상합니다. 혹 자포자기 같은 패배감으로 평화를 위한 노력에서 손을 놓아버리는 일이 없기를 다짐해봅니다. 평화를 위해 더 많이 기도하고, 더 많이 평화를 이야기하며, 그렇게 평화의 지형을 더욱 넓혀나가는 일에 모두 함께 노력합시다. 시리아 내전의 참상을 담은 영화 ‘사마에게’ 마지막장면,“이곳은 알레포입니다, 정의는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