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덕희 베드로 신부(의정부교구 7지구장) 드디어 꽃의 계절이 왔습니다. 지난겨울 동안 거의 죽음의 형상처럼 앙상하고도 말라버린 나무와 꽃들이 다시금 살아났습니다. 새순과 새 꽃망울들이 움터나옵니다. 언제 꽁꽁 얼어붙은 겨울이 있었느냐는 듯이 밝게 피어나고 힘차게 솟아납니다. 해마다 부활절이 다가오면 이러한 꽃과 나무들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올해의 봄은 지난 2년간의 코로나라는 긴 어둠의 터널의 마지막 끝이라는 희망을 지닌 우리에게는 새롭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죽음의 가장 끝자리인 그 동터오는 순간에 부활의 빛이 움터 나오듯이, 우리도 우리 삶의 가장 어두웠던 그 순간으로부터 시작되는 새로운 삶의 희망과 기쁨을 더 절실하게 원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평화의 상황도 이와 비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으로 세상의 평화가 완전히 산산조각이 나고 그래서 더 이상 평화를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그 순간에 우리는 평화의 새로운 싹들과 꽃들이 다시금 피어날 수 있음을 고대하고 마음으로 믿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죽음을 이기고 승리하신 부활의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해 주심을 우리는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6세 교황님께서 세상에 소리높였던 그 평화의 외침은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을 통해 끊이지 않고 이어집니다. 교황님은 당신의 첫 <세계 평화의 날 담화문>에서 이 점을 분명히 밝히고 계십니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저는 바오로 6세의 마지막 바람에 따라, 1979년 세계 평화의 날을 ‘평화를 가르치기’라는 기치로 삼겠습니다. 그러면서 새해 첫날에 세계 평화의 날을 기념하자고 여러분을 초대합니다”(1979.01.01. 제12차 담화). 평화는 배우고 가르치는 것 ‘평화를 가르치는 것’, 이것은 멈출 수 없습니다. 평화를 배우고 가르치는 것은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의 사명입니다.그러기 위해서는 ‘평화’와 가까워질 필요가 있습니다. 항상 마음으로 평화의 비전을 갈망하고, 사람들과도 평화의 언어로 말하려 하고, 더 나아가 평화의 몸짓으로 소통하려는 새로운 시작이 필요합니다. 1) “예, 그렇습니다. 폭력적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 우리 눈앞에 그리고 다음 세대의 눈앞에 평화의 전망을 제시합시다. 무엇보다 이 전망은 사람의 핵심 측면 가운데 하나인 평화를 향한 열망을 솟아나게 할 것입니다. 이 새로운 기운은 평화의 새로운 언어와 몸짓을 사용하는 데로 이어질 것입니다”(제12차 담화). 2) “평화라는 더 높은 가치에 헌신하는 마음은 경청하고 이해하며 다른 이들을 존중하려는 원의와 참된 힘인 온유와 신뢰에 대한 갈망을 낳습니다. 이러한 언어는 사람을 진리와 평화의 길을 따르게 합니다. 새로운 언어, ‘평화의 언어’를 찾는 법을 익히십시오. 그런 언어로도 평화를 위한 새로운 공간을 만들 수 있습니다”(제12차 담화). 3) “평화의 전망으로 해방되고, 평화의 언어가 뒷받침되면, 이는 반드시 ‘평화의 몸짓’으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몸짓이 없으면 막 싹이 튼 신념은 사라지고 평화의 언어는 곧바로 신뢰를 잃은 미사여구가 됩니다. 평화 건설자들이 자신의 역량과 책임을 자각하게 되면 평화의 몸짓이 더 많아질 수 있습니다. 이른바 평화에 이르는 ‘평화 실천’입니다”(제12차 담화). 교황님 말씀대로 평화에 대한 비전을 갖고, 평화의 언어와 몸짓으로 실천하는 것을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또 다른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 노력은 외적인 수고가 아니라 평화를 위해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교황님은 우리가 기도하는 법을 배우듯이 평화를 위해 기도하는 법도 가르쳐야 한다고 말합니다. “평화가 우리의 일입니다. 평화는 우리의 용감하고 일치된 행동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평화는 나뉠 수 없는 것이고, 무엇보다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그래서 평화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평화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 가운데 맨 앞줄에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다른 이들에게 평화를 위해 기도하는 방법도 가르쳐야 합니다”(제12차 담화). ‘평화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 가운데 맨 앞줄’에 있어야 한다는 말이 마음에 와닿습니다. 또한 교황님께서는 평화의 기회를 택하고, 평화를 가르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강조합니다. “모든 이, 그리스도인, 믿는 이, 그리고 선의를 가진 남녀에게 저는 평화의 기회를 택하는 것, 평화를 가르치는 일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드립니다. 평화를 향한 열망은 영원토록 우리를 낙담시키지 못할 것입니다. 영속적인 자비로 불타오르는 평화 과업은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평화는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가 될 것입니다”(제12차 담화). 평화가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이 전쟁의 상황에서도 ‘우리가 낙담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 시대에 ‘평화’가 가장 중요하고도 소중한 단어임을 증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진리, 평화의 힘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당신의 두 번째 평화의 날 담화에서 ‘평화의 힘’인 진리를 복음의 진리와 관련하여 평화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진리는 평화가 가진 힘 가운데 하나입니다. 왜냐하면 이 평화의 힘은 다른 것이 가진 진리의 요소들을 곧 진리의 본성을 공유하는 요소들을 알아보고, 이 요소들과 손을 잡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정직하고 지속적인 대화를 위한 채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평화는 없습니다. 진리에도 대화가 필요합니다”(1980.01.01. 제13차 담화). 진리와 거짓된 진리는 공존할 수 없습니다. 진리가 평화의 힘이라면, 거짓된 진리, 즉 진리가 아닌 것은 평화가 아닌 전쟁을 일으키는 힘입니다. “진리가 평화의 대의에 복무한다는 것은 사실이며, 누구도 이를 의심치 않습니다. 모든 형태, 모든 차원의 비진리(거짓말, 부분 혹은 편향된 정보, 분파적 선동, 사회 홍보 매체의 조작 등)가 전쟁의 대의와 나란히 손잡고 나가고 있다는 것 역시 두말할 필요 없습니다”(제13차 담화).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난 참된 진리를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참된 평화를 가져다주신 분이십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진리와 참된 평화가 만나 하나가 됩니다. “진리는 사람과 하느님의 일치, 자신과 자신의 일치, 사람과 다른 사람들의 일치를 드러내고 가져오기 때문에 평화를 추동하는 힘입니다. 용서와 화해는 진리의 구성 요소입니다. 진리를 평화를 강화합니다. 그리고 이 진리는 평화를 건설합니다”(제13차 담화). 동토가 녹고 봄이 오면 새싹과 꽃잎이 기어코 피어나듯이, 전쟁이 끝날 날은 반드시 올 것입니다. 전쟁이 멈추는 날, 우리는 다시금 평화의 찬란한 꽃망울들을 터뜨릴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평화의 비전을 지니고 평화의 언어와 몸짓을 멈추지 않는 한 우리의 평화의 여정은 계속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