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주원 (인류학자) 한국 사회에 북한 방문과 남북 만남이라는 불시착은 허구이자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지 혹은 2019년 말에 등장한 드라마의 단순 기획 의도와 설정일 뿐, 사실은 남북 만남과 교류는 존재한다고 아는 사람들이 많은지 가름이 되지 않는다. 제작진은 “현실의 상황과 굳이 연결을 시키려 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사랑의 불시착》은 상상만으로 만든 드라마가 아니다. 적어도 나에게는 현실에 바탕을 둔 장면들이 드라마 곳곳에서 보였다. 등장인물 소개를 보면 리정혁(현빈 扮)은 스위스에서, 서단(서지혜 扮)은 약 10년 동안 러시아에서 유학했다. 유럽과 러시아에 거주하는 북한 유학생의 존재는 익히 들어왔던 사례다. 중국 단둥 학교에서 한국 학생과 짝꿍으로 지내기도 하는 북한 학생과 다르지 않았다. 2006년 내가 다니던 중국어 학원에도 북한 학생이 있었고 복도에서 지나가는 모습을 보곤 했다. 영국 국적의 사업가로 소개되고 있는 구승준(김정현 扮)은 한국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드라마에서 북한에 체류하는 것으로 등장한다. 그는 나와 함께 술을 한잔한 뒤, 그다음 날 단둥역에서 평양행 기차표를 구매해서 압록강을 건너던 재외동포 혹은 재외국민들과 비슷해 보였다. 물론 그들 사이에는 사업 또는 친척 방문을 하기 위해서 북한에 간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대한항공에서는 승객이 내리고 고려항공은 승객을 태울 준비를 하고 있다.(2017년 12월) © 강주원 드라마 속 등장인물들의 삶은 그동안 내가 만나오고 참여·관찰하고 있는 사람들의 삶의 이력 그리고 한반도 안과 밖에서의 남북 교류와 만남 사례와 많은 부분 일치했다. 드라마 초반에 두 주인공인 윤세리(손예진 扮)와 리정혁이 스위스 여행지 다리 위에서 우연히 만나는 장면은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장면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2018년에 영화로도 제작된 『공작』이 준 아쉬움을 다른 측면에서 더 진하게 느끼게 했다. 세 번째 책에서 2000년대 전후와 2019년, 소설 『공작』과 비교되는 남북 만남의 사례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공작원만 있는 도시에서 은밀한 작업이 가능할 수는 없다. 일상에서 이런저런 만남이 많아야 자연스럽게 공작도 가능하다. 그렇지만 소설과 영화에서는 베이징과 단둥을 일상적인 남북 만남이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바라볼 여지를 전혀 주지 않는다. 〔…〕 나는 베이징에서 북한사람과 아파트 아래위층으로 살며 왕래했던 지인의 경험을 들었다. 그 이야기는 소설 『공작』의 시대적 배경인 2000년대 전후와 겹쳤다. 중국 단둥에도 한국 기업이 건설한 SK아파트의 같은 층에 이웃사촌으로 지내는 남북의 가족이 현재(2019년)도 있다. 이들이 모두 공작원일까? 그러기에 단둥에는 그런 남북의 사람들이 너무 많다. 〔…〕 한국사람 보다 많은 북한사람이 산다.(강주원, 2019, 『압록강은 휴전선 너머 흐른다』, 눌민, 177쪽) 이처럼 한반도 밖에서는 한 아파트에 남북의 사람이 이웃사촌으로 살기도 한다. 한국사람보다 북한사람이 많은 공간이 단둥 도시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이미 제3국에서 약 30년 넘게 남북 교류와 만남이 일상적이고도 우연하게 일어나고 있다. 드라마 속 윤세리와 리정혁의 첫 만남과 같은 사례들이 국가보안법을 위반하지 않은 선에서 겹겹이 쌓여왔다. 이를 알기에 나는 《사랑의 불시착》이 “허구로 진행되는 이야기”라고 밝힌 제작진의 고충이 이해되면서도 못내 아쉽다.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소지가 있는 사례를 다룬 것이 아님을 강조해야 하는 2020년 전후의 한국 사회가 낯설게 다가온다. 북한과의 만남을 다룬 이야기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이 드라마가 한창 인기몰이를 하던 바로 그 시기인 2020년 1월에 방송을 통해 북한과 관련된 한 소식을 들었다. 예능 프로도 아니었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 여행에서 우연히 만난 남북한 사람들이 같이 밥을 먹고 즐거운 수다도 나누는 영상이 화제”라는 방송 뉴스(《MBC 뉴스》 2020년 1월 27일자, “해외여행 중 옆자리에 북한사람이?”)를 접했다. 2021년에도 한국 사회는 여전히 기차 안에서 남북의 만남을 뉴스 소재로 삼고 있다. 약 30년 넘는 세월 동안 한반도 밖에서는 남북의 사람이 만나왔는데도 한반도 안에서는 남북 만남에 대한 변함없는 오해와 국가보안법이라는 존재의 무게감을 느꼈다. 과연 《사랑의 불시착》이 유럽과 북한 등에서 남북의 사람이 서로 만나왔고 또 만날 수 있다는 현실을 반영한 드라마로 기억되기를 바라는 것은 역시 무리일까라고 나에게 묻고 또 물었다. 중국 단둥 호텔에는 북한 여성이 근무하기도 한다. 한반도를 제외한 지역에서의남북의 만남은 특별한 경우만 있을까?(2019년 9월) © 강주원 더불어 단둥의 경험이 생각났다. 아침이면 신의주 전경이 눈 앞에 펼쳐지는 호텔 맨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들의 옆자리에서 아침을 먹곤 했다. 그 호텔에는 그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북한 출신 여종업원은 중국에서 북한 식당에만 근무하지 않는다. 그 호텔에도 일하고 있었다. 한복이 아닌 유니폼을 입은 그녀들은 얼핏 보면 중국 여성과 구분이 되지 않는다. 아침을 먹으며 평소보다 커피를 여러 번 더 마셨다. 그녀들이 나에게 커피를 가져다주면서 간단한 중국어로 인사를 했다. 일부러 나는 한국말로 매번 고맙다고 말했다. 그녀들은 나를 다시 쳐다보고 그저 웃고 제자리로 돌아가곤 했다. 그녀들이 손님 접대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한반도 밖에서 스쳐 지나가는 남북의 인연과 만남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단골로 다니던 북한 식당 종업원이 평양으로 귀국했다고 서울에서 술 한잔을 할 때마다 말하던 친구가 있었다. 1년 뒤 그녀가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다는 소식을 한 다리 건너 전해 들었다는 그 친구의 약 10년 전 경험담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