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장현(한신대 초빙교수,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운영연구위원) ‘엘리펀트 워크(Elephant Walk)’ 훈련(2022.03.25.) © 국방부 제공 북한이 지난 3월 24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시험 발사했다. 2018년 4월 노동당 중앙위 전체회의에서 핵시험, 중장거리 대륙간탄도로켓 시험을 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이후 4년 만이다. 이번에 발사된 미사일은 사거리 15,000km 이상으로 미국 전역을 타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대기권 재진입 기술을 선보였다는 점에서 한미 군당국을 긴장시키고 있다.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는 한미가 설정한 레드 라인을 넘은 것으로 해석됐다. 한국 합참은 즉각 지해공 미사일을 동해로 발사해 언제든 발사 원점과 지휘·지원 시설을 정밀 타격할 수 있음을 과시하는 대응 조치를 취했다. 또한 다음 날에는 엘리펀트 워크 훈련이란 이름으로 최첨단 전투기인 F-35A 28대를 동원해 위력시위를 벌였다. 바야흐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일촉즉발의 수준으로 높아지고 있다.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 시험은 약속 위반인가? 북한의 군사적 도발은 올해 초 이미 예상되었다. 지난 1월에 열렸던 북한 노동당 제8기 제6차 정치국 회의에서 북한이 “선결적으로 취했던 신뢰 구축 조치를 전면 재고하고 잠정 중지했던 모든 활동을 재가동”할 것을 결의했기 때문이다. 이번 미사일 발사 시험에 대해 한미 측은 김정은이 스스로 선언한 약속을 위반했다고 맹비난하고 있지만, 북한 입장에서 볼 때는 약속 위반이 아니다. 김정은이 4년 전 노동당 중앙위 전체회의에서 했던 발언은 “대화가 지속되는 동안 추가 핵시험 및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 등 전략 도발을 재개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인데, 미국 측의 무성의로 대화가 사실상 끝났기 때문에 미사일 시험을 재개한 것이다. 북한의 도발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핵시험 및 추가적인 중장거리 미사일 발사 시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화성-17형 발사 장면(2022.03.25.) © 노동신문 누리집 갈무리 북한은 왜 다시 벼랑끝 전술로 회귀한 걸까? 북한은 작년 2월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한 이후 계속된 대화 요청에 지금까지 응하지 않았다. 북한이 거듭해 발신하는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 요구에 아무 반응 없이 ‘조건없는 대화’만 반복하는 바이든 행정부의 대화 진정성을 믿지 않기 때문인 듯 싶다. 현재 북한을 이중 삼중으로 옥죄고 있는 경제 제재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다는 것은 북한을 진지한 협상 상대로 존중하지 않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북한 지도부로서는 타결 전망도 보이지 않는 실무협상으로 시간을 허비하느니 차라리 벼랑 끝 전술로 한미의 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게 더 낫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파탄에 빠진 경제를 회생시키는 게 급선무이다. 김정은도 집권 후 줄기차게 경제 회생을 강조해왔다. 첫 데뷔 연설로 평가되는 2012년 4.15 연설에서 “우리 인민이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며,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리게 하자는 것이 우리 당의 확고한 결심”이라고 밝혔다. 작년 1월에 개최된 노동당 제8차 당대회에서는 무려 9시간의 사업총화 보고를 통해 경제 회생을 강조했다. 김정은은 지난 10여 년 동안 현장에 자율권을 주는 독자경영제, 포전제 등 각종 개혁조치를 도입했고, 원산 갈마 관광지구 건설, 시범적 농업지구 사업으로서 삼지연 재개발 등 경제 재건에 총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경제는 나아지지 않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에는 더 악화돼 아사자까지 발생하였다. 전력 · 기계 · 화학공업 등 기간산업이 붕괴된 상태에서 농업 · 경공업 등 민생 분야가 제대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장마당 등 시장이 활성화되고 있다지만 금융 등 경제 인프라가 원시 수준인 상태에서는 한계가 뚜렷하다. 북한경제 회생을 위해서는 대규모의 외자 도입이 불가피한 것이다. 북한 당국이 줄기차게 강조하고 있는 ‘자력갱생 · 자립경제’는 정치적 구호로는 의미가 있을지 모르지만 경제 회생에는 도움이 안 된다. 외부의 도움이 절실한 북한은 현재 국제사회로부터 도움은커녕 경제 제재를 받고 있다. 주요 수출품인 석탄 · 철 등 광물뿐 아니라 수산물 · 섬유 등의 수출까지 막혔으며, 해외에서 노동자 취업도 금지되었고 석유 수입도 제한받고 있다. 역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고강도의 제재이다. 북한 주민 입장에서는 한미 등 외부에 대한 원망이 클 수밖에 없다. 상당수 주민들은 현재의 상태보다는 차라리 화끈하게 전쟁이 벌어지는 게 낫다는 생각까지 한다고 한다. 대화를 통해 군사적 긴장을 누그러뜨려야 한다 북한이 도발하면 한미도 같은 강도로 대응하지 않을 수 없다. 개성공단 폐쇄를 마지막으로 남북 간 경협사업도 다 사라졌기 때문에 군사적 대응 외에 다른 선택지도 없다. 따라서 앞으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가파르게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 갈등과 긴장이 상시화되는 것만큼 위험한 게 없다. 마치 봄날 메마른 산에 강풍이 부는 형국이다. 작은 불씨 하나로 대형 산불이 발생하는 것처럼 높아진 군사적 긴장 상태에서는 작은 오인과 충돌이 전쟁으로 비화될 수 있다. 이제 한 달 후면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다. 윤석열 당선인은 선거 때 선제타격, 사드 추가 배치 등의 발언으로 평화를 열망하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우려 섞인 시선을 받고 있다. 집권 후에는 선거 때 발언을 잊고 ‘국익과 실용주의로 국정에 임하겠다’는 최근 발언을 실천했으면 한다. 실용주의는 사실에 입각해 해법을 찾는 태도이다. 북한에 대해서도 ‘보고 싶은 것’만을 보지 말고, ‘있는 그대로’ 보았으면 한다. 대통령의 첫 번째 책무는 전쟁을 예방하고 평화를 지키는 것이다. 나눔질문-장거리 미사일 시험과 같은 북한 군사적 행동에 대한 대응으로 한미가 군사적 조치를 강화한다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 수 있는지 토론해 봅시다. -북한 당국을 대화의 테이블로 초대하기 위해서는 대북 정책에 있어서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토론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