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혜원(북한대학교대학원 박사 수료) 6.6절을 맞아 비파고급중학교에서 열린 운동회에 참가한 모란봉구역의 소년단원들 © 조선신보 북한의 어린이날은 6월에 있다. 공식적으로는 6월 1일을 ‘국제아동절’로 기념하지만, 실제로는 ‘조선소년단’ 창립일인 6월 6일(일명 ‘6.6절’로도 불린다)이 공휴일로서 어린이날 분위기가 더 난다. 6월 1일은 북한 달력에 국제아동절로 표기돼 있으나 휴일은 아니다. 국제아동절은 1949년 9월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국제민주여성연맹이사회’에서 제정되어 주로 공산권 국가에서 기념한다. 조선소년단은 소학교(초등학교) 2학년(보통 8~9세)이 되면 가입할 수 있다. 조선소년단은 북한 사람으로서 맨 처음 가입하는 정치조직이기도 하다. 김일성의 항일혁명 시기 유격대원들을 도운 ‘아동단’의 정신을 이어받은 조선소년단의 일원이 되면 붉은 넥타이와 함께 소년단 휘장(배지)을 착용한다. 붉은 넥타이는 우리나라 언론에도 자주 소개되었는데, 삼각형 모양의 붉은 스카프로 붉은색은 항일의 붉은 피를 상징한다. 조선소년단 제8차 대회 참가자들 공연 관람 © 조선의 오늘/Flickr 소년단 가입 시즌이 되면 입단 대상자들의 관심사는 누가 먼저 붉은 넥타이를 착용할지에 쏠린다. 김정일 생일인 2월 16일(광명성절), 김일성 생일인 4월 15일(태양절), 6.6절 순으로 모두 3차례에 걸쳐 소년단에 전부 가입하게 되는데, 가입 순서를 두고 신경전을 벌인다. 불과 몇 개월 차이에 불과하지만, 자신이 또래에서 뒤처지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일종의 신호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소년단 가입을 위해서는 심사를 거치는데, 2월과 4월의 심사가 엄격한 데 반해 6월은 형식적인 절차만 진행할 뿐 모두가 가입하기 때문에 큰 의미가 없다. 심사 내용은 조선소년단원의 의무와 권리, 김씨 일가의 ‘혁명역사’ 내용 등을 묻고 답하는 식이다. 2월과 4월의 가입 인원은 한정돼 있다. 첫 번째 입단 순서인 2월 대상자들은 학급별로 공부와 생활에서 우수하거나 특별히 정치적으로 공로가 있는 학생들이 추천된다. 어린이들의 정치적 공로는 김씨 일가의 동상 청소, 혁명사적지 지원 등의 항목인데 이는 사실상 부모들의 ‘열성’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 간단하게 말해서 모두가 공인하는 모범생과 경제적으로 학교에 큰 기여를 하는 부모를 둔 학생이 우선적으로 뽑힐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2월에 붉은 넥타이를 매면 학교 선후배들은 물론 동네 어른들도 칭찬해 준다. 그러다 보니 6월이면 모두가 맬 수 있는 넥타이지만, 어린 나이엔 그 몇 달의 차이가 주는 느낌이 매우 중요하였다. 소학교를 졸업하고 중학생이 되면 이번에는 상황이 바뀐다. 14~15세가 되면 소년단을 벗어나 청년동맹에 가입하게 되는데, 이때는 붉은 넥타이를 풀고 청년동맹 휘장을 달게 된다. 청년동맹에 가입하는 순서도 2월, 4월, 6월로 나뉘는데 누가 먼저 “매느냐” 신경 쓰던 학생들이 이번에는 누가 먼저 “푸느냐”에 집중한다. 그 몇 달을 먼저 풀겠다고 저마다 선생님께 잘 보이려 애쓰고, 때로는 부모들에게 ‘경제적인 지원’을 해달라 조르기도 한다. 일부 학생들은 등하교 시 몰래 넥타이를 풀고 청년동맹원 행세를 하기도 한다. 2021년 10차 북한 청년동맹대회 © 조선 중앙통신/연합뉴스 붉은 넥타이를 매고 푸는 행위가 학생들에게 주는 소속감과 의식에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가볍지 않다.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북한체제가 만들어 놓은 사회적 지위에 관심을 가지고, 조금 더 눈치 빠른 아이들은 체제와 권력에 가까이 가기 위한 경쟁이 시작됐음을 인지한다. 물론 이 경쟁에는 본인의 역량뿐 아니라 부모의 정치적·경제적 배경도 큰 비중으로 활용된다. 6월에 붉은 넥타이를 매거나 푸는 학생들은 대체로 공부나 학교생활에 적당히 거리를 두는 부류라 할 수 있다. 좋은 대학과 사회적인 발전을 목표로 하는 학생들은 부모들의 철저한 관리하에 정해진 코스를 밟는다. 본인이 관심이 없거나 혹은 부모들이 후원해 줄 여력이 없는 대다수는 주어진 상황에 순응할 뿐이다. 요즘 들어 북한에서 사회적 지위나 정치적인 발전보다 경제적인 성공에 관심을 두는 사람들이 부쩍 들었다고 한다. 예전에는 6월에 붉은 넥타이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체제 순응의 결과였다면 지금은 아예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얘기다. 사회적인 지위가 경제적인 안정과 직결되던 시기는 지나가고, 북한에서도 돈으로 누릴 수 있는 게 많은 시대가 되었다. 북한의 정치체제와 권력 구조는 얼핏 보면 너무나 단단해 변하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경제여건의 변화는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고, 삶의 변화는 서서히 사람들의 의식을 바꿔 결국 정치체제에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다. 6월에 붉은 넥타이를 매거나 푸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북한의 잠재적인 변화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