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선 벨라뎃따(평화사도 1기 & 동화작가, 평화운동가) 코로나19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정말 기분 좋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바로 <여름이 온다>, <파도야 놀자>의 이수지 작가가 ‘안데르센상’을 수상한 것이다.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상은 덴마크의 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IBBY)에서 2년마다 아동문학 저자와 삽화가에게 수여하는 상으로 아동문학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린다. 한국인으로서는 최초이고, 아시아 작가로도 1984년 일본 안노 미쓰마사 이후 38년 만에 처음이다. 대한민국 그림책의 저력을 마음껏 뽐냈다. 또한, 2020년에는 <구름빵>, <알사탕>으로 유명한 백희나 작가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말괄량이 삐삐의 저자)상을 수상했다. 이 상 역시 아동문학계의 노벨상이라 불릴 만큼 권위가 있다. 그림책은 가장 수준 높은 책이며, 위대한 예술작품이다. 작가의 글과 화가의 그림이 조화를 이룬 책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나라 그림책의 역사는 일본이나 미국, 유럽에 비해 그리 깊지 않았다. 80년대 - 90년대 초까지는 우리 사회에 그림책이라는 게 있다는 걸 인식한 시기였고, 90년대 중반이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그림책이 출간되었다. 이런 짧은 시간 안에 안데르센상과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을 수상했다는 건 참으로 놀라운 성과가 아닐 수 없다. 세계는 지금, 우리나라 작가가 그린 그림책에 열광하고 있다. 도대체 우리나라 그림책의 매력이 무엇이길래, 이렇듯 짧은 시간 안에 외국인들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을까? 세계 최대 규모 어린이 도서전인 '볼로냐 아동 도서전'에서 선정해서 주어지는 라가치상(Ragazzi Award)을 받은 우리나라 작가들이 많다. 이 상은 전 세계에서 출간된 어린이 책 중 창작성, 교육적 가치, 예술적인 디자인이 뛰어난 책에 수여한다. 이미 많은 작가들이 라가치상을 받거나, 다른 국제무대에서도 상을 받아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우리 그림책 작가들은 꼭 우리 그림체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매혹적인 먹선으로 우리의 정서를 표현하는가 하면, 이게 우리나라 작가가 그렸냐 싶을 정도로 현대적인 미적 감각을 발휘하고 있다. ‘어린이들에게는 아름답고 좋은 것만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의 틀에서 과감히 벗어난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예전에는 순수한 어린이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소재는 그림책으로 표현될 수 없었다. 그러나 최근 우리 그림책은 아이들의 아픔을 얘기하고, 사회의 아픔까지도 얘기하고 있다. 가령, 친구들에게 따돌림당하는 주인공 아이를 통해 자신의 상처를 치유 받기도 하고, 나와 다른 다문화 가정의 아이, 엄마와 아빠가 없는 아이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면서 이웃의 아픔을 함께 공감한다. 나아가 시대의 아픔에도 연대하고 있다. 또한, 작가들의 그림책에 대한 열정을 빼놓을 수 없다. 이수지 작가의 그림책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먼저 출간되었다. 작가는 포트폴리오를 들고 볼로냐 국제 아동 도서전에 직접 찾아갔다고 한다. 작가의 잠재력과 우수성을 알아본 이탈리아 출판사가 출간을 제의하였고, 국내보다 이탈리아에서 그림책이 먼저 출간되었다. 이처럼 그림책이 좋아 그림책 작가가 되었기에 자신이 직접 비행기 표를 사고, 자신이 그린 그림을 들고 국제무대에 나가고 있다. 목적이야 투철한 애국심 때문이 아니라 그림이 좋아서였지만, K-pop 스타 못지않는 열정으로 세계무대에서 대한민국을 알리는 민간외교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어린이들이나 읽는 유치(?)한 그림책이 아닌, 그림책에서 철학을 찾는 어른층이 생겨났다. 아예 그림책을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모임을 만들 정도로 그림책에 푹 빠졌다. 그림책 독자층의 깊이 있는 안목이 더해지다 보니 그림책의 질적 수준이 높아졌다. 나는 그림책을 좋아한다. 그림책 보는 걸 좋아해서 나도 그림책 공부를 한 적 있었다. 그 덕분에 우리 집에는 그림책이 좀 있는 편이다.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가는 유쾌 상쾌한 그림책, 마음이 따뜻해지고 뭉클해지는 그림책, 상상력의 끝을 알 수 없는 그림책, 사회와 역사의 아픔을 그린 그림책… 정말 다양하다. 역사 동화를 주로 쓰다 보니, 5월에 읽으면 좋은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그림책 세 편을 소개하려 한다. 최유정 작가의 <나는 아직도 아픕니다>, 홍성담 작가의 <운동화 비행기>, 권윤덕 작가의 <씩스틴>은 정말 좋은 작품이다. 사진1 최유정 작가 <나는 아직도 아픕니다>사진 2 홍성담 작가 <운동화 비행기>사진 3 권윤덕 작가 <씩스틴> <나는 아직도 아픕니다>는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같이 놀던 친구의 죽음을 목격한 아재 이야기이다. 아이는 자라 어른이 되었지만 극심한 트라우마를 겪게 된다. 광주 민주화운동 당사자들의 트라우마를 다뤘다는 점에서 무척 의미 있는 작품이다. <운동화 비행기>는 능화초등학교 2학년 1반 새날이와 친구들이 뒷산 저수지에서 물놀이를 하다 총소리를 듣게 된다. 후다다닥 몸을 숨긴 새날이는 생일 선물로 받은 새 운동화를 가지러 가다 죽임을 당한다. 홍성담 작가가 그린 운동화 비행기를 탄 새날이가 둘러본 세상이 궁금하다면 당장 이 책을 읽어보길 바란다. <씩스틴>은 제목이 주는 산뜻한 느낌과는 달리 1980년 당시 사람들을 향해 총알을 뿜었던 총(M16) 이름이다. 사람들을 향해 총구를 겨누었던 씩스틴은 쓰러진 사람들에게서 피어난 하얀 씨앗 망울을 만나 새 삶을 살게 된다. 총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가의 고뇌와 상상력이 잘 버물어진 작품이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는데, 져도 좋다. 동화작가로서 부럽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부럽다. 진심 부럽다. 우리나라 대한민국 그림책, 만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