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샹탈(가명)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청년 연구자 모임 샬롬회 회원)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이기도 한 이 소설 <파친코>는 한국계 미국인이 영어로 쓴 책으로,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도 직접 본인의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추천사를 남기기도 했다. 국내에 번역되어 소개되었고, 2022년 현재 드라마로 만들어져 방영되고 있다. 이 책은 일제 강점기에 시작하여 1989년까지 4대에 걸친 어느 자이니치(재일동포)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부산 영도에서 언청이 절름발이로 태어난 훈이는 가난한 집의 막내딸로 태어난 양진과 중매혼으로 만나 몇 명의 아이들을 하늘로 먼저 보내고 난 뒤 정상인 딸 선자를 귀하게 얻게 된다. 선자가 13살 되던 해 훈이는 결핵으로 떠나고, 선자는 자신보다 나이가 두 배는 많은 아버지 또래의 생선 중매상 한수를 만나게 된다. 제주도 출신으로 오사카에 세 딸과 아내를 두고 있던 한수가 유부남임을 모르던 선자는 그의 아이를 임신하게 되고, 다행히도 목사 이삭이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면서 둘은 이삭의 형 요셉 부부가 살고 있는 일본의 오사카로 이주하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첫째 아들 노아와 둘째 모자수를 낳게 되는데, 이야기는 모자수의 아들 솔로몬까지 이어지면서 일본에서 그들의 치열했던 자이니치로서의 삶을 그려내고 있다.1960년대 폐품 수집 재일동포 부락 (해방 직후부터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재일동포는 쓰레기상, 폐품상, 고물상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 재일한인역사자료관 어찌보면 자이니치 재일동포라는 소재 자체만으로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진부한 서사이다. 한국을 떠난 그들이 일본에 정착해 살아가면서 겪었던 힘겨운 이민자로서의 삶, 그리고 그 투쟁적 삶의 여정을 따라가면서 내국인이면서도 끝내 이방인일 수밖에 없었던 그들이 겪었을 수많은 차별들을 한국인으로서는 특히나 더 눈물 없이 읽기 힘든 그런 이야기들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을 것이라는 예상 말이다. 자이니치 재일동포라는 글의 소재 자체가 나의 관심을 끌었음에도 불구하고 선뜻 읽을 마음을 갖기 힘들었던 부분도 분명 필연적으로 이 글감이 나에게 던져 줄 그 묵직한 슬픔의 비극적 무게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가진 강점은 책 안에 소개되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정말 매혹적으로 전달해주고 있는 저자의 목소리다. 담당하고 쉬운 서체로 풀어낸 이야기는 재일동포라 호명되는 그 평범한 사람들에 대한 저자의 오랜 관심이 돋보이는 가운데, 저자 스스로도 미국 내 한인가정에서 성장하면서 겪었을 이민자로서의 개인 정체성에 대한 질문들을 떠올리게도 하면서 한 편의 영화처럼 생생하게 그들의 삶을 전달해가고 있다. 드라마에서는 ‘고향’, ‘모국’이라는 소재의 보편성으로 이주 배경이 없는 독자들에게 어필하고 있다. 드라마 파친코에서 선자의 아들 모자수역 배우 © 동아일보 그렇다면 책의 제목은 왜 파친코일까? 실제로 파친코 사업을 통해 부를 축적하여 갑부가 된 재일동포들의 몇몇 사례들도 잘 알려져 있기도 한데, 장애물로 가득한 미로가 결과를 결정하는 이 파친코는 일본 사회의 수많은 제약 속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재일동포들의 굴레와 삶 그 자체로 비춰진다. 소설 속 인물들은 각자의 한계에 부딪히며 고립된 삶을 살아가는데, 선자의 장남 노아는 일본의 명문대에 진학했음에도 파친코에서 일하게 되고, 공부에 소질이 없어 파친코 사업에 뛰어들었던 모자수와 그의 아들 솔로몬 역시 미국 유학 뒤 여러 사연 끝에 아버지의 파친코 사업을 물려받는 방식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역사가 우리는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마지막 장면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끈질긴 노력으로 가혹한 운명에 맞서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저자는 마지막 ‘감사의 말’에서 이 책이 세상에 나오기까지의 여정에 함께 한 수많은 인연들에 대한 감사 인사와 함께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일화를 소개한다. 1989년 대학 졸업 후의 미래를 걱정하던 대학생 시절, 우연히 참관한 교내 특강자리에서 일본 주재 어느 미국 선교사를 통해 자이니치라 불리는 일본의 재일동포들의 이야기를 처음으로 듣게 되었다고 한다. 특히 차별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스스로 속에 심어졌던 그 작은 울림의 씨앗이 30여 년이 지난 지금 전 세계 수많은 독자들의 마음 속에 또 다른 씨앗을 심어 주고 있다. 그리고 그녀가 직접 밝히지 않았으면 전혀 몰랐을 또 하나의 이야기는 끝없는 실패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이 책을 완성할 수 있기까지 가장 큰 도움이 되었던 부분이라 소개하고 있는 이야기다. 그녀가 한 아이의 엄마이자 작가로서의 삶을 유지하며 이 글이 나오기까지 계속해서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은, 결국 그녀의 글쓰기 재능을 알아봐 준 사람들의 응원과 실질적인 금전적 재정후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책의 첫 장에 담긴 헌정사가 그녀의 남편과 아들을 위해 쓰여진 부분이라는 점도 마지막에 밝혀진다. 천부적 재능의 성공 신화 대신 거듭된 실패에도 많은 도움으로 인해 가능한 성취였다 고백하며 가족들에게 이 책을 바치는 저자의 모습은 분명 지금 이 순간에도 여러 가지 차별로 힘겨워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또 다른 희망의 씨앗이 되어주리라 본다. 이 책의 저자 이민진(1968년 서울 출생)은 한국계 1.5세 미국 작가로, 원산 출신 아버지와 부산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가족 이민으로 7살 때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 퀸즈에 정착했다. 예일대 역사학과와 조지타운대 로스쿨을 거쳐 기업 변호사로 일하다 건강상의 이유로 변호사 일 대신에 글 쓰는 일을 시작하였다. 대학생 때 재일동포의 존재를 처음 접하게 되면서 자이니치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일본계 미국인 남편을 만나 일본에서 직접 4년간 살면서 그 호기심을 본격적으로 직접 탐사하며 이 소설을 완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