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준 요한 크리소스토모 신부 (인창동성당 협력사목) 요즘 마트에 가면 매우 다양한 반찬, 국거리, 요리 등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몇십 년 전에 비해 엄청나게 늘어난 종류의 먹거리를 보면서 집에서 굳이 음식을 만들 필요가 있을까 생각할 정도입니다. 그러다 보니 과거에 집에서 했던 일련의 작업이 추억 속의 행위로 묻히는 경우도 종종 있곤 합니다. 지금은 사제가 되어 본당 사목에 열심인 한 후배와 있었던 일화입니다. 당시에는 신학생이었는데 저와 함께 사제관에서 함께 지내면서 식사를 직접 해 먹을 때의 일입니다. 냉동실에 날김이 있어서 옛날을 회상하며 날김에 기름을 바르고 소금을 뿌려 간을 맞추고 구워서 반찬으로 내어놓았습니다. 맛이 있었는지 상당히 양이 많다고 생각했던 구운 김을 모두 먹어버렸습니다. 오며 가며 제가 김 굽는 과정을 보았던 그 신학생은 자기가 만들어서 다음 식사 때에 준비하겠다고 말을 꺼내길래 그렇게 하라고 얘기했습니다. 몇 시간 뒤 식사하러 주방에 갔는데 식탁 한가운데에 구운 김이 놓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옆에 완전히 비워진 소금 통도 함께 보였습니다. ‘아뿔사! 그 많은 소금을 다 뿌렸나?’ 구운 김 한 장을 들어 손으로 소금을 털어내고 먹어 보았습니다. 매우 짰습니다. ‘밥 위에 얹어 먹으면 조금은 괜찮겠지’라는 생각에 그렇게 했더니 역시 매우 짰습니다. 신학생에게 소금을 얼마나 뿌렸냐고 물어보니 골고루 묻게 하려고 여러 번 소금을 뿌렸다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처음이니 그런 실수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래도 만든 사람에게 양해를 구해 그 구운 김을 버리기로 결정했습니다. 원래 음식물을 잘 버리지 않던 저였지만 이것은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 후 식사 중에 김을 소재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신학생과 스물다섯 살 정도 차이가 났었는데 자기는 집에서 직접 구운 김을 만든 적도 먹어 본 적도 없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구워줬던 김이 너무 맛있었고 자기도 만들어보고 싶어서 그것을 실행에 옮겼으나 첫 작품은 실패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가정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세상의 변화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마트에 가면 흔하게 있는 봉지 김. 아마도 대부분 가정에서 구운 김을 접하는 가장 흔한 방법이 봉지 김일 것입니다. 간편하게 구입해서 먹을 수도 있겠지만 옛날에 여러 과정을 거치고 또한 결과물에 대해 가족이 함께 이야기(짜네, 싱겁네, 덜 구워졌네, 너무 구워졌네 등)하던 그때가 그립기도 합니다. 현시대에는 간편한 것들이 홍수처럼 쏟아져 마트나 자판기를 통해 쉽게 구할 수 있지만 우리의 신앙은 그렇지 않습니다. 수많은 과정과 실패와 역경을 극복하면서 이뤄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편하고 쉬운 것만 있으면 삶의 의미가 별로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또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서라도 얻는 신앙의 깊이는 우리 인생의 참맛을 들게 할 것입니다. 오늘은 가족과 함께 직접 날김을 구워 식사하면서 대화의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