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덕희 베드로 신부(의정부교구 7지구장) 이번 달 평화를 위한 담론의 주제는 ‘평화와 자유’, 그리고 ‘하느님의 선물인 평화’입니다. 평화에 이바지하려면, 자유를 존중하십시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자유를 평화의 뿌리이자 평화의 열매로 소개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평화에 이바지하려면, 먼저 자유를 존중하고 자유롭게 평화를 위한 선택을 해야 합니다. “평화에 이바지하는 길을 발전시키려 할 때, 우리는 반드시 평화의 뿌리이면서 동시에 평화의 열매인 이 참된 자유의 실재 본성을 명확히 이해해야 합니다”(1981.01.01. 제14차 담화). 또한 평화는 인간이 추구해야 할 기본 개념인 자유뿐 아니라 ‘진리’, 정의’, ‘사랑’과도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기에 ‘평화는 반드시 진리로 실현해야 하고, 정의 위에서 건설되어야 하며, 반드시 사랑에서 활력을 얻어야 하며, 마침내 자유를 통해 드러나야 합니다’(제14차 담화 참조). 결론적으로 평화가 꽃피고 번성하기 위해서는 자유로운 결단에 의한 ‘자유의 척도’가 필요합니다. 교황님은 자유의 본질을 인간에서 찾으며 다음과 같이 자유의 본질이 평화를 위한 기초가 됨을 요약합니다.“자유의 본질은 인간에 있습니다. 자유는 인간 인격과 동일한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유는 인간 본성의 고유한 표지입니다. 개인의 자유는 인간의 초월적 존엄에 토대를 둡니다”(제14차 담화).“인간은 참된 것, 선한 것과 관련하여 스스로 결정할 역량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자유롭습니다”(제14차 담화).“자유롭다는 것은 선택할 수 있는 것이자, 선택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자유롭다는 것은 자기 양심에 따라 사는 것을 뜻합니다”(제14차 담화).“참된 자유는 가능한 모든 형태로 드러나야 합니다. 사회의 다양한 권위들은 반드시 참된 자유가 행사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제14차 담화).“그러나 자유는 단순히 자신만을 주장하는 권리가 아닙니다. 자유는 다른 사람들을 고려하는 의무이기도 합니다”(제14차 담화).“우리는 반드시 다양한 가짜 자유들에 맞서 참된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예를 들어, 소비 사회, 즉 사람에게 필요하지 않은 재화가 과도하게 많은 사회는 어떤 식으로든 자유를 남용할 수 있습니다”(제14차 담화). 인격을 지닌 인간은 자유를 지니고 있고 이 자유는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진 자유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좋은 것과 올바른 것을 선택할 수 있고,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평화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양심에 따라, 하느님의 뜻에 따라 자유로이 평화를 추구하고 선택할 때 우리는 진리에 가까이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참된 자유를 지닌 평화야말로 변하지 않는 가치를 지니게 할 것입니다. 교황님은 말씀하십니다. 자유는 단순히 자신만을 주장하는 권리가 아니라고! 우리는 가짜 자유들, 특히 평화를 깨고, 불평등을 조장하는 왜곡된 자유를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자유로운 선택이 평화가 되기 위해서는 모두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공동선’을 전제로 해야 합니다. 교황님도 “누구도 사람들이 공동선이 요구하는 바를 더 깊이 자각하고 더 책임감을 느끼게 하지 않고서는 사람들을 자유롭게 만들지 못한다.”(제14차 담화)고 말합니다. 공동선을 위한 구체적인 행동만이 서로를 신뢰할 수 있게 하고, 그러한 신뢰에 기초하여 평화는 선물로 주어짐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평화에 이바지하는 자유만이 우리를 자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 평화, 우리에게 맡기신 하느님의 선물! 교황님은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말을 인용하며 메시지를 시작합니다. “평화, 그것은 하느님의 위대한 선물입니다. 하느님의 선물인 평화보다 더 달콤한 말은 들리지 않으며, 더 탐나는 소망은 없으며, 더 훌륭한 발견은 있을 수 없습니다”(1982.01.01. 제15차 담화). 평화는 평화의 토대이신 하느님으로부터 나옵니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우리가 믿는 바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평화의 원천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평화의 원천이시기에 평화를 소리 높여 외치시고, 평화를 보호하려 하십니다. 그러한 하느님이시기에 우리에게 기꺼이 평화를 가져다 주십니다. 따라서 평화는 ‘하느님의 선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내적으로 평화를 성취하거나 되찾는 것을 도우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기도하고 당신의 정의를 충족시키려는 사람들의 마음에서 멀리 계시지 않습니다”(제15차 담화). 평화를 주고자 하시는 그분의 마음은 언제나 우리 마음의 문 앞에 당도해 있습니다. 평화가 하느님의 선물이기는 하지만, 우리 역시 그분의 뜻에 따라 평화를 찾고, 평화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선물을 소중히 간직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느님의 자녀로서 마땅한 삶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하느님의 선물이 이 ‘평화’를 애물단지처럼 취급해서는 안 되겠지요. “자신이 가진 가장 좋은 에너지를 평화에 바치는 모든 사람의 활동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평화는 하느님 선물의 능동적 증인이 되어야 할 그 근거가 됩니다”(제15차 담화). ‘평화의 능동적 증인’이라는 말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선물을 받은 사람은 기쁨과 기대로 그 선물 포장을 뜯고 선물을 풀어보고 그 선물을 다른 이들에게 자랑하듯이, 우리도 평화라는 선물을 다른 이들에게 선포하고 자랑하는 능동적인 증인이 될 필요가 있습니다. 교황님은 이렇듯 평화를 전하는 평화의 사도들이 그 평화를 널리 퍼트리는 사람들의 맨 앞줄에 서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지상의 평화는 언제나 도전이자 진행형일 수 있습니다. 현실적인 평화는 늘 쉽게 깨지고, 분쟁과 전쟁은 끊임없이 발생합니다. 이러한 비평화의 현실에서 우리는 의기소침하거나 좌절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신앙으로, 정의로운 양심으로, 희망의 씨앗을 간직해야 합니다.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위한 우리의 자유로운 결단과 행동은 분명 많은 열매를 맺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평화를 만들고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하느님의 선물임을 우리가 잊지 않는다면, 우리는 평화가 깨진 이 순간 또다시 하느님의 자비에 ‘평화를 주소서!’라고 탄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참된 평화를 주시는 하느님께 ‘그 놀라운 신비의 선물, 즉 평화’를 주시기를 간절히 청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