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주원 (인류학자) 《사랑의 불시착》의 두 주인공은 휴대전화 예약 문자 기능을 이용해서 인연을 이어갔고 마침내 스위스에서 재회했다. 드라마는 그렇게 끝났다. 엉뚱한 생각을 해봤다. 내가 작가를 미리 만났더라면 극적 재미는 없더라도 국가보안법을 준수하면서도 여러 방식으로 소식을 전하고 재회하는 또 다른 방법이 있음을 알려줬을 것이다. 2018년 겨울, 북한에 출장을 간 재외동포가 서울에 있는 나에게 위챗 메신저로 안부 문자와 함께 평양 식당에서 식사하는 사진을 실시간으로 보내온 적이 있다. 나 또한 바로 답장했다. 드라마 속 리정혁이 외국 친구의 휴대전화를 빌리면 얼마든지 평양에서 서울에 있는 윤세리에게 문자를 보낼 수 있다. 8405호는 북한사람, 8403호는 내가 숙박하던 방이다 © 강주원 고전적인 연애 방법도 있다. 남북의 이산가족은 1990년부터 한 해도 빠짐없이 민간 차원에서 편지를 주고받았다. 나중에는 통일부의 경비 지원도 받고 있다. 2021년까지 그 규모가 1만 1,641건이다.(통일부 홈페이지 참고) 천 건도 아니고 만 건이 넘는다. 그 경로를 활용하면 두 주인공은 편지 교환이 가능하다. 윤세리가 서울에서 인편으로 선물을 보내는 방식도 있다. 단둥을 거쳐 이틀 내에 평양에 있는 리정혁이 받아볼 수도 있다. “대북 우편물 서비스에서 선두는 독일계 기업 DHL로, 온라인에서 북한 배송을 검색하면 제일 쉽게 접근할 수 있다.”(《뉴스1》 2021년 8월 7일자, “내 물건이 북한으로 갈 것 같아요”)는 기사에서 밝힌 것처럼 두 주인공의 연결 고리 방법은 더 다양하다. 그뿐만 아니다. 윤세리가 스위스에서 기약 없이 리정혁을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마음먹기 나름이다. 그녀가 다른 나라의 국적을 가지고 있거나 가지게 되면 평양에 직접 가서 리정혁을 만날 수 있다. 이는 국가보안법의 잣대에 적용되지 않는다. 물론 이 사례는 드라마에서 또 다른 주인공인 구승준이 재외동포라는 정체성을 활용해 북한에 머무르거나 그곳을 넘나드는 장면에서 보여준 소재다. 드라마 마지막 부분에 나왔던 남북 만남과 비슷한 방식은 현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독일, 북한, 한국의 대학이 기획한 장을 통해 한반도 밖에서 남북의 학생들이 만났다. 그들은 독일 베를린에서 같은 건물에서 함께 생활도 하고 공부도 하고 이야기도 나눴다. 남북이 함께한 배움의 자리가 만들어진 때가 마침 《사랑의 불시착》이 방송되던 그 시기다. 베를린 자유대 계절 학기에서 만난 남북 학생들 © 중앙일보 2020년 1월에 열린 자유대 계절 학기는 자연스럽게 남북한 대학생들의 만남의 장이 되었다. 〔…〕 김일성대학 학생 12명 외에 홍익대·부산대·충남대에서 온 약 80명의 한국 학생들이 함께 수업을 들었다. 같은 기숙사 건물에서 함께 생활한 학생들도 있었다. 이들은 3주간의 수업을 마치고 종강하던 날 계절 학기 졸업식장을 유쾌한 파티장으로 만들었다. 〔…〕 누가 남쪽에서 왔고 누가 북쪽에서 왔는지 구분하기 어려웠다.(《중앙선데이》 2020년 2월 8일자, “김일성대 학생들 발랄”) 필자는 남북 교류와 만남을 연구한 20여 년이 넘게 이 같은 사례들을 지켜봤다. 그렇기에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이 허구라는 것에 동의하면서도 그 속에 등장한 많은 장면과 내용은 남북 교류와 만남이 이루어져 온 현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강조한다. 다른 나라의 영주권이나 시민권이 없어도 된다. 한국 국적만 있어도 된다. 그러니까 재외동포와 재외국민이 아니어도 제3국에서 북한사람을 만날 수 있다. 적어도 1990년대 전후부터 몇 가지 사항만 지키면 국가보안법을 위반하지 않고도 한반도의 안과 밖에서 서로 만나왔다. 《사랑의 불시착》은 이러한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현실에 바탕을 두면서 상상력을 더한 드라마다. 남북의 만남을 다룬 이야기들은 영화에서도 종종 등장한다. 1991년 내전에 휩싸인 소말리아 수도에서 북한과 한국의 외교관과 그 가족들이 함께 탈출한 실화를 배경으로 다룬 《모가디슈》가 2021년에 개봉됐다. 특히 영화의 한 장면이 화제가 되었다. 남한대사의 부인이 깻잎을 먹으려는데 잘 떼어지지 않자 반대편에 앉아 있던 북한대사 부인이 말없이 한쪽을 잡아준다. 〔…〕 남북이 서로 말을 걸거나 시선을 마주치는 것조차 금기시되었던 시절, 〔…〕 그렇게 그들은 마음을 열 수 있었다.(《경향신문》 2021년 8월 17일자, “트릴레마와 ‘모가디슈’ 깻잎”) 사회적 반향을 의식했는지 영화사 측에서는 영화를 본 관객들에게 깻잎 통조림을 증정하는 이벤트도 열었다. 그런데 영화 속 배경이 된 1991년은 위의 표현대로 “남북이 서로 말을 걸거나 시선을 마주치는 것조차 금기시되었던 시절”은 아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1990년대 전후는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과 함께 남북의 사람이 한반도 안과 밖에서 만나기 시작한 때다. 기억을 더듬어봤다. 1990년에는 서울과 평양에서 남북통일축구대회가 열렸다. 1991년은 남북한 단일팀이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출전했던 그해다. 이는 영화 《코리아》로 만들어졌다. 그 시절 전후부터 지난 약 30년 동안 남북의 사람들은 한반도 안과 밖에서 만나왔고 함께 식사를 해왔다. 때로는 영화 속 장면처럼 서로 눈길조차 피하는 어색함이 이어졌다. 때로는 술 한잔을 함께 하는 분위기도 만들어졌다. 영화 《모가디슈》의 실제 모델인 소말리아 전 대사 강신성은 회상하면서 영화 속 깻잎 장면과 다른 이야기를 한다. “북한사람들이 우리(한국) 관저로 오면서 자기들 공관 마당에 묻어놓았던 쌀, 채소 같은 부식을 다 들고 왔더라고요. 〔…〕 그걸로 같이 저녁밥을 지어 먹었죠.”(《중앙일보》 2021년 8월 3일자, “모가디슈 총성 속”) 실화를 다룬 영화라도 모든 장면을 있는 그대로 연출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영화관을 나설 때 위의 장면도 그 당시 현실이었음을 알지 못하는 상황이 안타깝다. 이는 영화를 영화로만 보지 않는 나의 고질병일까? 아니면 1991년에 펼쳐졌던 사실과 2021년에 개봉된 영화의 묘사가 다름을 어떻게 봐야 할까? 영화 속에 등장한 깻잎 장면이 2021년의 한국 사회에 화제가 되는 이유를 어디서 찾아야 할까? 나는 1990년대도 아니고 여전히 1980년대에 머물러 있는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에는 유럽의 초콜릿 가게에서 남북의 여성이 우연히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 강주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