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루트로 소사(Arturo Sosa), SJ / 발행일 : 2019년 08월 20일 2022년 「평화의 길」 특별 기획으로 이웃 국가 중국의 ‘천주교회’의 역사와 오늘날의 모습, 그리고 바티칸과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하여 관련 칼럼을 번역하여 소개합니다. 글의 영역본은 예수회 교양지 「치빌타 카톨리카」(La Civiltà Cattolica)의 <교회 생활Church Life> 코너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원문 링크 : https://www.laciviltacattolica.com/the-church-in-china-notes-for-writing-the-future/ 중국의 교회에 관한 에세이 모음집이 올해 초 로마의 치빌타 카톨리카(La Civiltà Cattolica) 본부에서 발표되었습니다. 치빌타 카톨리카의 디렉터 안토니오 스파다로(Antonio Spadaro) 신부가 편집한 “La Chiesa in Cina. Un futuro da scrivere (중국의 교회, 앞으로 쓰여질 미래)”는 주교 임명에 관한 교황청과 중국 간의 잠정 합의가 체결된 후 천주교회와 중국 간의 관계에 헌정되었습니다. 이 책에는 교황청 국무원장 피에트로 파롤린(Pietro Parolin) 추기경의 서문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발표회에는 클라우디오 마리아 첼리(Claudio Maria Celli) 대주교, 예수회 총장 아루트로 소사 신부와 주세페 콘테(Giuseppe Conte) 이탈리아 총리도 참석하였습니다. 아래는 소사 신부의 연설문입니다.[1] 토착화: 예수의 자기비허(自己脾虛) 강생을 따라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8년 9월 26일 “중국 천주교 신자와 보편교회에 보내는 메시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항상 중국을 위대한 기회의 땅으로, 중국인들을 역경에 저항하고 다양성을 포용함으로써 정제된 문화와 지혜의 무수한 유산의 창조자이자 수호자로 존중해왔습니다.” [2] 이 메시지는 내가 안토니오 스파다로(Antonio Spadaro) 신부가 출판한 책 “중국의 교회, 앞으로 쓰여질 미래”를 읽을 때 중요한 해석의 열쇠였다. 오늘 여기서 제 연설의 유일한 목적은 내가 읽은 이 책에 대한 나의 생각을 나누는 것이다. 이 책의 각 장에서 저자들은 각자의 관점과 경험에 비추어 글을 썼으며 독자들은 이 대화에 초대되어 자신의 감성과 실존적 혹은 지성적 관점을 결합시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대화는 중국 교회의 방대하고 복잡한 현실의 일부를 다루고 있다. 내가 공유하는 의견은 이 책에서 다루는 문제 혹은 중국 교회의 정치적 상황과 관련하여 예수회의 공식 입장을 대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밝힌다. 나 자신은 중국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이 없다. 단, 나는 중국에 존재하는 교회에 속하여 있고, 중국과 많은 관계를 맺어왔으며 지금도 지속적으로 다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예수회의 일원이다.교회가 중국에 존재하기를 원한다는 사실은, 교회가 세상 만민들에게 다가가고, 지구상 구석구석에 존재하며, 사람들이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도록 초대하고, 우리가 하느님 안에서 받은 본보기에 따라 인간을 더욱 인간답게 만들라는 주님의 초대에 응답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둘러보면, 중국과 관련된 모든 것을 고려하지 않으면 세상 사람들 사이의 화해의 진전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인들의 의식적이고 적극적인 참여 없이는 지구를 위한 지속 가능한 생태 균형에 도달하거나 빈곤을 극복하고 인간 개발을 확보한다는 유엔의 목표를 달성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교회와 예수회는 중국이라는 거대한 나라의 복잡하고 변화하는 사회 현실 속에서 현지 토착화를 추구해 왔고, 추구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추구할 것이다. 이것은 빈곤과 사회적, 종교적, 정치적 억압의 현실 속에서 인간의 역사에 나타나신 예수님의 강생에서 영감을 받은 토착화이다. 예수님의 방식에 따르면 토착화는 자신을 비우는 여정이다. 즉, 그 출발점은 자기 자신을 자유롭게 하고 특권과 권력의 모든 위치에서 물러나 “많은 사람 중 하나”가 되는 것이다(필리 2, 6-8 참조). 교회가 중국의 현실에서 토착화된다는 것은 충만한 삶을 위한 새로운 현실로 나아가기 위해 지혜나 사회적 인정에 대한 모든 요구를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토착화는 자신의 집을 떠나 다른 사람의 집에 가서 살면서 익숙한 집이 아닌 다른 집에서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을 의미한다. 토착화는 모두가 참여하는 공개적이고 진지한 만남이다. 그리스도교는 역사의 매 순간마다 모든 인류 문화에 제공할 매우 가치 있는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다. 우리의 보물은 하느님의 자비로운 얼굴을 우리에게 드러내시고 형제애의 길을 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이다. 이를 통해 성령의 인도를 받아 우리가 사회 정의를 추구한다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공동의 가정에 대한 책임이 있는 인간, 형제자매로 우리 자신을 인식한다. 토착화의 노력에서 오는 만남은 하느님께서 모든 인간의 마음에 부어주신 사랑에 의해서만 일깨워지고, 각 민족의 다양한 문화적 표현의 여러 측면에 반영이 될 때에 이루어진다. 그리스도교는 문화가 아니라 모든 인간의 문화 속에 강생할 수 있는 종교적 믿음이기 때문에 그리스도교가 마주치고 접하는 문화와 경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리스도교는 각각의 문화에게 자신의 뿌리에 대한 지식을 더 깊이 파고들고 온전한 인류애의 보편적 현실을 열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이러한 이유로 토착화는 ‘중국 천주교’의 존재, 동시에 보편적인 천주교의 존재를 가능케 한다. 중국 천주교는 중국 문화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으며 중국 문화가 그들의 정체성과 경험을 상징하도록 제공하는 방식으로 신앙을 표현한다. 동시에 예수의 정신에 영감을 받은 중국 천주교 신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을 화해시키는 과정에 기여하고자 하는 보편적인 교회에 참여한다. 그리스도교를 ‘중국화’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는 복잡한 과정이며 항상 불안정하다. 풍부한 다양성과 폭넓은 전통을 자랑하는 중국의 문화적 현실만큼이나 복잡하다. 살아있는 문화는 고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불완전하다. 모든 문화는 변화할 수 있으므로, 토착화의 과정 또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지속적인 노력이 수반되며, 이는 단번에 달성할 수 없는 과제이다. 과거 혹은 현재의 어떠한 문화적, 사회적, 경제적 또는 정치적 표현도 중국에서 그리스도교가 완전히 토착화되었음을 상징할 수 없다. 중국의 다양한 문화 가운데 천주교를 ‘중국화’ 하는 진정한 과정은 항상 열려있고 미완성인 역동적인 과정이다. 중국 역사가 보여주듯이 예수님의 ‘자기비허’[3] 방식의 강생은 상당한 겸손이 수반된다. 따라서 중국 교회의 현재와 미래에 참여한다는 것은 겸손을 새로운 삶의 원천으로 바꾸기 위해 겸허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획기적인 변화를 겪고 있는 세계에서의 화해 우리는 ‘세계화’라고 부르는 개념의 모호성에도 불구하고 점점 더 보편화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세계의 민족, 문화, 국가 간의 상호의존성은 우리 시대의 특징적인 현실이며, 미래 세계의 본질적 차원으로 투영된다. 현재와 미래의 화해와 정의에 기여한다는 것은 첫째,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문화적 다양성으로 대표되는 풍요로움을 인식하고, 둘째, 보편적 인류의 다문화적 측면에서 모든 문화적 표현의 정당한 참여를 보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회는 “보편적 사도적 선택”에 따라 교회와 조화를 이루며 프란치스코 교황과 중국 천주교 신자들의 화해와 정의 증진 사업에 협력하고자 한다.[4] 이 가운데 다음 내용이 두드러진다. “가난한 자들과 동행하는 것은 그러한 큰 불의를 초래하는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과정을 깊이 이해하기 위해 우리의 연구, 분석 및 성찰을 개선할 것을 요구한다. 우리는 또한 대안 모델을 정교화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 우리는 문화의 다양성을 인간의 보물로 인식하고 문화 다양성을 보호하며 문화 간 교류를 촉진하는 세계화 과정을 촉진하는 데 전념한다.” 인간사회 발전이라는 세계적 흐름에 중국이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중국 사회 내부에서도 쇄신의 기회가 늘어났다. 인류의 새로운 시대에 적응해야 하는 거대한 도전에 직면한 중국 공산당은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로 결정했다. 이 도전과제의 정치적 측면은 매우 중요하다. 인류의 새 시대를 열려면 공권력 행사에 대한 근본적인 재고가 필요하지만, 이 부분에서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징후는 그다지 고무적이지는 않다. 획기적인 변화를 겪으면서 많은 국가에서 민주적 정부 형태가 약화된 듯하다. 사실 지구상 모든 지역에는 근본주의 혹은 포퓰리즘 이상을 추구하는 통치자가 있으며, 이들은 자신의 국가를 표현하는 고유한 방식이라고 주장하지만 사실상 그들의 특정 이해관계에 따라 국가를 통치한다. 이 과정에서 현재와 미래의 공동선을 목표로 하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국민들의 참여는 배제된다. 정치적 측면은 사람들 사이의 화해를 촉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화해의 촉진은 각 국가 내부에서든 국제적으로든 소수의 손에 권력이 집중되어서 달성되는 것은 아니다. 정치적 행동의 지평으로서 공동선을 대표하는 것으로 회귀해야 하며, 공동선을 위한 지속적인 탐색을 보장하기 위해 시민 의식의 확대가 필요하다. 의식적인 시민의 통제하에서 권력을 분산시키고 권력을 행사하는 사회적 주체 사이의 균형을 이루는 것은 사회 정의의 진보와 국민과 국가의 화해를 위한 조건이다. 미래 사회가 세속화될 것이라는 징후는 많다. 어떤 식으로든, 현존하는 모든 사회는 세속화 과정을 겪고 있다. 세속화는 호전적인 무신론이나 종교적 근본주의 등 특정 종교 형태에 반대하는 극단적인 형태를 낳는 경우가 많고, 이는 우상화되는 단일 형태의 종교로 이어진다. 오늘날 우리는 세속주의나 종교적 근본주의와 관련된 여러 형태의 종교적 박해를 목격하고 있다. 세속화는 종교적 무관심으로 이어지고 종교적 관습과 가르침이 사회에 전수되는 것을 방해하는 경우도 있다.이러한 극단적인 형태의 세속주의를 극복할 때, 인간의 특성으로서 자유를 행사할 수 있는 조건이 존재하는 성숙한 세속사회가 시작된다. 이 자유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관계뿐만 아니라 문화적, 종교적 영역에서도 반드시 표현되어야 한다. 따라서 성숙한 세속사회는 개인적 혹은 제도적 관점에서 모두 종교적 자유를 행사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공한다. 또 다른 징후들은 보면 미래 사회에서는 분명히 도시 혹은 ‘도시적’인 것들이 과거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할 것이다. 과거에 사람들의 삶은 부락을 중심으로 형성된 관계에 기반을 두는 것이 전형적이었다. ‘도시 천주교’는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와 마찬가지로 중국에서도 새로움과 도전을 뜻한다. 새로움은 도시에서 형성되는 인간관계와 부락을 중심으로 한 인간관계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도시 환경에서는 끊임없는 변화가 빠르게 진행된다. 새로움은 비단 부락에서 도시로의 전환에만 국한되지 않고, 각 지역에서 진행되는 변화와 지역 간 관계의 변화에 보조를 맞추는 능력이 요구된다. 이러한 인간적, 사회적 변화에 직면한 상황에서, 복음 메시지의 전달에도 도전과제가 생긴다. 교회의 존재와 활동은 사목적이다. 즉, 교회는 인류 역사의 모든 순간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지구 구석구석에 선포하겠다는 약속에서 시작되고, 그 약속 안에 살아있다. 교황청의 다양한 수준의 참여를 포함한 중국 교회의 활동은 사목의 관점에서 이해해야 하고, 중국 내의 현(現) 사회적 관계들과 그 정치적 맥락에 상응하는 세부사항들을 고려해야 한다. 사회적 관계와 중국공산당은 모두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진화를 이해하고 기다리는 것은 교회가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제안하는 화해와 정의에 기여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중국에서 화해와 정의의 사명은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특별한 중요성과 복잡성을 띤다. 화해의 모든 과정에서는 교회의 제도적 삶의 모든 주역들 사이에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필요하다. 신뢰를 회복한다는 것은 활동하는 회원 한 사람 한 사람을 알고 형제자매로서 동등하게 인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의 역사를 알고 그들이 살아낸 역사의 진정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신뢰를 회복하면 우정의 문이 열린다. 중국 천주교의 경우에는, 주님의 식탁에서 성찬의 빵을 나눔으로써 자기자신을 인식하게 되는 우정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 교회 내부에서의 화해는 최근 갈등의 역사를 극복하고 무수한 상처를 치유하며 앞으로 쓰여질 미래를 함께 바라보는 기나긴 여정이 될 것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와 동시에, 교회 내부의 화해는 모든 형태의 급속한 변화 속에서 중국의 정치, 사회, 문화생활의 다양한 부문에서도 화해를 이룰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끌어 준다. 이는 교회의 사명과 일체감을 느끼는 이들에게는 흥미진진한 가능성을 열어줄 것이 분명하다. 미래를 쓰기 위한 메모 예수회 영성과 천주교회에 봉사하려는 열망의 관점에서 보면, 중국 교회의 미래를 써나가는 흥미로운 임무에 참여하려면 분별력을 갖추는 것이 필수적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회가 분별력을 키워야 한다는 점을 반복해서 강조했다. 중국 교회의 미래를 쓰는 것은 다음 질문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 중국 사회에서 성령의 모습은 어떻게 그리고 어디서 나타나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먼저 분별력을 키워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또한 영적인 삶의 성장과도 관련이 있다. 중국 교회의 미래는 세계 여느 곳과 마찬가지로 교회 구성원의 영적 삶의 깊이와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영적 활력에 달려 있으며, 이를 통해 유의미한 제도적 전환이 이루어진다. 중국 교회는 큰 변화가 필요하며, 진정한 회심을 살아야만 한다. 즉, 사고방식의 전환이 필요한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person)과의 변화하는 만남과 성령을 인도자로 삼고자 하는 의지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중국 교회의 미래를 쓴다는 것은 살아있는 경험을 통해 하느님이 역사 속에 살아계시고 인간과의 관계로 들어오신다는 확신해서 출발하는 상호 식별의 과정이다. 분별력을 갖추고 좋은 선택을 하려면 속박과 무질서한 애착에서 벗어나 우리 자신을 온전히 주님의 손에 맡겨야 한다. 중국 교회에 제공할 수 있는 최고의 사목적 봉사는 상호 식별의 조건을 확대하고 그것을 생활과 행동의 모든 영역에서 실천하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중국 교회의 미래를 쓰는 데 기여하려면 무엇보다도 중국의 사회정치적, 문화적 맥락과 그 발전 방향에 대해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엄청난 지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는 매우 다양한 삶의 현실에서 그리스도교 메시지를 구현하고 역사를 인간화하는 데 기여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흥미로운 과업이고, 복잡성 때문에 필연적으로 다른 이들과 함께해야만 성취할 수 있는 과업이다. 개인, 연구자 그룹 또는 단체의 능력뿐만 아니라 교회 자체의 능력을 넘어서는 과업이며, 모두를 위한 더 나은 미래라는 동일한 목표를 추구하는 수많은 사람들과 단체들 사이에 만남의 장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현재적 실제와 미래를 향한 길을 이해하고자 노력하려면 중국 천주교의 양상을 알아야 한다. 그 노력은 중국의 비 천주교 그리스도 신자의 경험과 그들의 삶으로부터 배우기를 결심한다면 매우 풍성해질 수 있다. 이는 처음에 언급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중국 천주교 신자와 보편 교회에 보내는 메시지”에서 요청한 노력이다. “저는 성령께서 우리에게 한 걸음 더 나아가라고 부르실 때 주저하지 않는 은총을 간구합니다. ‘우리가 다른 이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삶을 과거의 유물로만 남겨두려는 시도를 멈출 수 있도록, 사도적 용기를 청합시다. 모든 상황에서 성령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부활하신 예수님의 빛 안에서 역사를 묵상하도록 해주시길 빕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교회는 가만히 있지 않고 끊임없이 주님의 놀라움을 환영할 것입니다.’ (“기뻐하고 즐거워 하여라(Gaudete et Exsultate)”, 139)” [5] 필자 소개 아루트로 소사(Arturo Sosa)는 베네수엘라 예수회 신부로 현재 예수회 31대 총장 신부이다. [1] 스파라도 신부의 개회사는 발표 당일(2019. 03. 25) 온라인 신문 <바티칸 인사이더(Vatican Insider)>에 “중국과 바티칸 사이에 상호 신뢰 없이는 실크로드는 없다”라는 제목으로 게재되었다. 이 책은 밀라노의 앙코라(Àncora)에서 출판하였다. 첼리 대주교의 연설은 3월 25일 <로세르바토레 로마노(L’Osservatore Romano)>에 “대화의 뿌리에서”라는 제목으로 게재되었다. www.osservatoreromano.va/en/news/alle-radici-del-dialogo-27marzo/ 주세페 콘테 총리의 폐회사는 이탈리아 정부 웹사이트에 게재되어 있다. www.governo.it/articolo/conte-alla-presentazione-del-libro-la-chiesa-cina-un-futuro-da-scrivere/11202 [2] 프란치스코 교황, “중국 천주교 신자와 보편 교회에 보내는 메시지”, 2018년 9월 26일, no. 2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it/messages/pont-messages/2018/documents/papa-francesco_20180926_messaggio-cattolici-cinesi.html [3] ‘Kenōsis’(역자 주: 번역문에서는 자기비허(自己脾虛)로 번역함)는 말 그대로 ‘비우다’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단어이다.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서 사도 바오로가 사용하였으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필리 3,5-7). [4] 예수회는 2년 간의 상호 식별 과정 끝에 ‘보편적 사도적 선택’을 결정했다. 이것은 선교에 대한 네 가지 사도적 선택으로, 앞으로 10년 간 예수회가 나아갈 방향과 의지를 제시한다. 보편적 사도적 선택은 구체적으로 1) 영신수련과 식별을 통해 하느님께 나아가는 길 보여주기, 2) 화해와 정의의 사명 안에서 가난하고 세상에서 쫓겨난 이들, 그 존엄성이 훼손된 이들과 함께 걷기, 3) 희망찬 미래를 만들어가기 위하여 젊은이들과 함께하기, 4) 우리의 공동의 집을 돌보며 하느님의 피조물을 보호하고 쇄신하기 위해 복음의 깊이를 가지고 함께 협력하기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5] 프란치스코 교황, “중국 천주교 신자와 보편 교회에 보내는 메시지”, op. cit., No.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