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혜원(북한대학교대학원 박사 수료) 5월 초 북한은 한국의 신정부 출범을 전후로 또다시 미사일을 발사했다. 올해 들어 북한이 사상 유례없는 군사적 도발을 이어온 터라 5월의 미사일 발사가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한반도의 안보 정세가 재조명되는 상황이라 더욱 우려스럽다. 북한의 잦은 도발이 일상이 될까 염려하는 것도 지나친 기우는 아닐 것이다. 북한 김정은 총비서 주재 정치국 회의, 코로나 오미크론 발병 사실을 공식 인정 © SBS뉴스 북한의 고강도 군사 도발에 신정부가 원칙적인 대응을 예고하며 남북 긴장이 고조되던 5월 12일 북한은 느닷없이 코로나 오미크론 발병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주재한 회의에서 “건국 이래 대동란”이라며 사태의 심각성을 강조했고, 이후 북한은 연일 감염 상황을 공개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조만간 대북 코로나19 방역 지원을 논의할 실무 접촉을 제안한다는 방침을 밝혔고, 이에 미 국무부는 대변인을 통해 우리 정부의 대북한 코로나 백신 지원 방침을 지지했다. 앞으로 북한이 군사적 도발을 자제하고 내부 코로나 확산 방지에 집중할 것이라는 분석과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엇갈리고 있으나, 이와 상관없이 남북관계에 묘한 변화가 생겼음을 느낄 수 있다. 조금 더 명확하게는 북한의 변화로 보는 것이 맞겠다. 북한의 소식통을 통해 현지 사정을 모니터링하는 대북 매체들과 관계자들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1호행사’에 감염자가 참여한 것이 코로나 발생을 공식 인정한 중요한 배경으로 분석된다. 1호행사는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참석하는 행사를 의미한다. 지난 4월 25일 북한은 조선인민혁명군(김일성의 항일유격대) 창건 90돌 기념 군사퍼레이드를 개최했는데, 여기에 참가한 대학생 중에 감염자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1호행사에서 발생한 문제점은 매우 중요하게 다뤄진다. 더욱이 김정은 위원장이 ‘기념사진’을 찍으면서 감염자와 밀접접촉 되었을 가능성은 북한으로서는 매우 ‘경악할’ 일이다. 김씨 일가의 사진을 구하기 위해 불붙는 집에 뛰어들어 목숨도 서슴없이 바치는 북한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생각할 때 최고지도자의 안녕에 지장을 줄 수도 있는 이번 사태는 그야말로 ‘중대사건’이라 할 수 있다. 5월 1일 열병식 평양시 안의 대학생, 근로청년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고 보도했다. ©노동신문/뉴스1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정말로 북한이 공개한 시점에 코로나가 유입됐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왜냐면 지난해부터 발열 등 코로나와 비슷한 증상을 호소하는 북한사람들이 적지 않았고, 특정 지역이나 거주지를 중심으로 일시적인 봉쇄 조치들이 취해졌기 때문이다. 더욱이 열흘 남짓한 사이에 120만 명이 넘는 확진자가 발생한 점은 오미크론의 빠른 감염 속도를 고려하더라도 북한의 폐쇄적인 환경에서 지나치게 빠른 확산세다. 북한당국의 대응 또한 아이러니하다. 국가 예비의약품들을 긴급 해제하여 시급히 보급하고 전국의 모든 약국을 24시간 운영체계로 변경했으며, 평양시 의약품공급 사업 안정을 위해 “인민군대 군의부문의 강력한 역량을 투입”할 것을 당 중앙군사위원회 특별명령으로 하달했다. 그러나 북한이 스스로 언급했듯이 약국에는 진열된 상품 외에 약품 보관장소가 따로 없을 만큼 재고가 부족하므로 24시간 운영체계는 실효성이 없다. 이미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이후 북한 주민들은 병원이나 약국 대신 시장을 통해 약을 구입하는 것이 일상화됐다. 의사들도 약 처방만 해줄 뿐 약을 사는 것은 온전히 환자들의 몫이다. 국가 예비의약품을 해제해봤자 평양시민들의 수요도 보장하지 못할 수준이다. 따라서 약품이 부족한 상황에서 군의 투입은 확산세 차단보다는 민심이반을 달래거나 인민들을 통제하기 위한 조치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렇다면 왜 지금일까? 물론 1호행사를 계기로 북한 전역에서 확산세가 빨라진 것이 가장 중요한 이유겠으나, 앤데믹 시대로 들어서는 이 시점에서의 북한 팬데믹이 세상의 주목을 집중시키기에 적당한 시점이라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또한 3년 가까이 지속된 비상 방역으로 북한 주민들의 피로감과 불만이 높아질 수밖에 없고, 경각심도 점차 해이해질 수밖에 없는 시점이다. 코로나 발생에 대한 북한의 공식 인정과 구체적인 상황 공개가 북한 지도부의 리더십에 부담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이면에는 느슨해진 내부단속을 강화하기 위한 명분의 정당성 강화와 국제사회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효과도 분명하다는 얘기다. 한국의 신정부 출범과 북한이 코로나 발병을 공식 인정한 시점은 전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벼랑 끝 전술로 상황을 극단으로 몰아붙인 뒤 화해의 제스처를 내미는 북한의 외교방식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북한의 진 의도를 떠나 한반도의 지정학적 리스크를 적절한 수준에서 관리하는 것은 남북 모두에 중요하다. 이러한 점에서 “북한이 호응한다면 코로나 백신을 포함한 의약품, 의료기구, 보건 인력 등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란 윤석열 대통령의 메시지는 충분히 공감할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