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고사키 우케루 지음, 문정인 해제, 양기호 옮김(메디치, 2013) 한정민 라우렌시오(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청년 연구자 모임 샬롬회 회원) 2018년의 봄, 우리는 전례 없던 ‘동북아시아 국제관계의 봄’을 맞이하였다. 2018년 1월 1일 북한의 김정은이 신년사를 통하여 남한과의 대화의 뜻을 표시하였다. 뒤이어 그다음 달 남한 평창에서 개최된 동계 올림픽에 북한 선수단과 지도부가 참석하면서 남북대화 채널이 극적으로 열렸다. 더불어, 2018년 4월과 5월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이 연이어 열릴 가능성이 대두되면서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시아 국가들 간의 역학관계도 급변하기 시작했다.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일본 지도부의 북한에 대한 태도이다. 지난 수년간 미국의 대북 압박에 공조해오던 일본의 前 수상 아베는 2018년 2월 평창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회담할 당시만 해도 ‘한미 군사훈련은 앞으로도 계속 지속되어야 한다.’며 대북 압박 논조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아베의 이러한 호전적인 태도는 미국 前 대통령 트럼프가 김정은과의 회담 개최에 긍정적인 의사를 표명하고 북한과의 대화 채널을 본격적으로 가동하기 시작한 뒤 변하기 시작했다. 2018년 3월, 아베는 대일 특사로 방문했던 서훈 前 국정원장에게 앞으로 북일 정상회담 개최를 위해 한국이 지원해달라고 당부하며 북한과의 대화 국면을 적극적으로 열고자 하는 의지를 보였다. 비록 이러한 아베 정권의 정책 노선 변화가 자민당과 아베 내각이 처한 국내적인 위기 타개를 위한 하나의 정치적 수단이라고도 볼 수 있으나, 또 다른 측면에서 미국의 대외정책 혹은 미일 관계가 일본의 대북정책 혹은 더 나아가 대외정책 전반에 있어서 미치는 영향이 상당히 크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미국은 일본의 대외정책에 지금까지 어떠한 방식으로, 얼마나 큰 영향력을 행사해왔으며, 이러한 미일의 종속적인 관계를 탈피하고자 하는 일본 내부의 정치적인 움직임은 없었을까? 우리는 『미국은 동아시아를 어떻게 지배했나 – 일본의 사례, 1945년 - 2012년』을 통해 부분적으로나마 이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을 얻을 수 있다. 본 저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군이 일본에 주둔하면서부터 2013년까지 미국이 일본의 내정에 어떻게 간섭하였고, 이를 통해 미일 관계는 어떻게 변화해왔으며, 일본 내에서 미국을 추종하는 세력과 그에 저항하는 세력 간에 어떤 갈등이 있었는지 보여준다. 저자는 연대기 순으로 짜여진 다양한 사례를 통해 기본적으로 1) 미국이 일본의 극우적인 대외정책과 추종적인 대미정책을 형성하는 데에 있어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점과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지속적으로 저항하는 일본 내부의 정치세력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일본 외무성에서 이란 대사 등의 고위직에 재직한 경험이 있는 저자는 본인의 개인적인 경험과 잘 알려지지 않은 일화 등을 소개함으로써 일본 내부 사정을 구체적으로 서술하는 데에 초점을 두었다. 대부분의 사례들은 미국이 일본을 상대로 어떠한 공작을 통해 정치적 간섭을 시도해왔는지를 보여주고, 비록 현재 일본 내 대부분의 정치 세력들이 대미 추종 노선을 걷고 있으나 일부분의 과거 정치인들이 일본의 자주적인 외교 노선의 중요성을 피력했음을 부각한다. 이러한 근거를 통하여 저자는 일본이 미국으로부터 독립된 외교정책을 충분히 실현시킬 수 있으며, 이것이 결코 일본의 국익에 반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저자가 연대기적으로 다양한 사례를 제시함으로써 한국인에게 익숙하지 않은 일본 내부정치의 실체와 미일관계의 변화 양상 등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는 점이 매우 흥미로웠다. 하지만, 최대한 많은 사례를 제시함으로써 저자 본인의 주장을 뒷받침하고자 한 나머지 제시된 사례들이 시간 순서대로 정리되어 있을 뿐, 각 사례 간의 연관성이 떨어지기도 하고 그 사안의 중대성이 각양각색이라는 점에서 전체적으로 일관된 호흡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또한 제시된 사례들 가운데 상당 부분이 논리적인 검증 없이 그 사안의 시사점만을 반복적으로 언급함으로써 저자가 본인의 시각을 다소 편향적으로 피력하려고 한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부 장관 일본 방문 ©AP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저서는 근대 일본의 대미 정치노선 및 대외정책 노선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중요한 시사점을 제시한다. 단지 현재의 일본 아베 정권이 미국에 추종적이고 아시아 국가들에 배타적이기 때문에 앞으로의 등장할 일본의 다른 정권도 비슷한 성향을 가질 것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물론, 미국이 과거의 소련과 현재의 중국을 견제하기 위하여 일본 내부에 수많은 친미 정치 인사들을 ‘훈련 및 배양’ 시켜왔고, 일본 내부적으로 그들이 아직까지 막강한 정치세력을 구축해왔다는 점을 망각할 수는 없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이와 동시에 국제사회의 환경변화에 따라 이러한 주류적인 노선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일본 내부에서 지속적으로 존재해 왔다는 사실이다. 과거 일본의 일부 지도부들은 중국의 개방에 따라 미국으로부터 독립적인 대중 외교정책을 추진하기도 했고, 소련의 해체에 따른 미국 내의 ‘일본 위협설’에 대응하여 아시아 내 경제공동체를 주창하기도 했다. 앞으로 중국의 아시아 내 정치·경제적 위상이 더욱 높아지고, 남북한 관계의 진전에 따라 한반도의 안보 불안이 종식되어 동북아시아 내의 협력과 교류가 요구될 때에도 일본은 단순의 미국의 ‘아시아 대변인’ 혹은 ‘방파제’ 역할을 자처할 것인가? 이러한 변화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으며, 새로운 모습의 일본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것이 단순한 망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