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덕희 베드로 신부(의정부교구 7지구장)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지도 이제 100일이 훨씬 지났습니다. 장기화되는 전쟁 속에 사망자와 이주민은 계속 폭증하고 있습니다. 세계의 관심도 조금은 멀어진 듯합니다. 전쟁을 현실로 받아들여 익숙해질 때 평화를 찾으려는 노력도 사라지고 맙니다. 전쟁의 와중에도 평화를 위해 기도하는 이유는 그 평화의 씨앗을 우리 마음에 간직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도 하루 동안 이 평화의 씨앗을 생각과 마음 안에 담고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이러한 뜻으로 그동안 연재해 온 「평화를 위한 담론」의 내용을 ‘말씀 카드’로 만들어 지인들에게 보내고 있습니다. 이 평화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나무의 씨앗들처럼 저 멀리 퍼져가기를 바라면서 말입니다. 「말씀 카드」 © 남덕희 신부님 평화를 위한 대화, 우리 시대를 향한 도전 이번 달 평화를 위한 담론의 주제는 ‘평화를 위한 대화’입니다. 참된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평화에 대한 갈망과 그 갈망을 해소하기 위한 ‘대화의 시작’이 필요합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평화를 위해서는 ‘대화가 필수’라고 강조합니다. “평화는 수단을 갖추지 않는 한 구축되지도 유지되지도 않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가장 탁월한 수단은 대화의 태도를 선택하는 것입니다”(1983.01.01. 제16차 담화 2항). 참된 대화는 평화를 위한 핵심 조건 중 하나입니다. 대화를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지니고 있다면 우리는 평화를 위해 도전할 기회가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평화를 위한 대화는 언제나 가능합니다. 치열한 전투와 불꽃 튀는 포화 속에서도 평화를 위한 대화는 가능할 수 있습니다. 대화가 가능하지 않을 때조차 대화를 모색할 필요와 의지가 있다면 평화를 위한 대화는 언제나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교황님은 대화를 위한 몇 가지 제안을 하십니다. 1) 대화는 무엇보다 먼저 개방성과 환대를 필요로 하며, 2) 대화에 참여하는 각 당사자가 상대의 다름과 특수성을 받아들여야 하고, 3) 반대와 충돌이 있더라도 그 안에서 서로에게 공통적인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야 합니다. 끝으로 4) 참된 대화는 평화로운 수단으로 선을 추구하는 것이라야 합니다. 그러기에 참된 대화는 인간 생명 존중에 그 기초를 둡니다. 서로의 생명을 존중해 주는 한에서 평화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가톨릭신문 교황님은 전임 교황님의 말씀을 인용하며 대화의 필요성에 대해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대화에는 어떠한 조건이나 저의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대화는 그 본질상 단죄와 대립과 진부한 논쟁을 배제합니다. 대화는 ‘명쾌, 온유, 현명, 신뢰’의 특성을 갖습니다”(제16차 담화 6항). 평화를 위한 대화에 방해되는 거짓된 태도들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대화를 가로막는 국제적이고 정치적인 모든 시도들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평화를 위해 ‘명쾌하고 부드러우며 지혜롭고 믿음을 주는’ 그런 대화가 다시금 이어지기를 희망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평화를 위해 대화를 해야 할 그 이유는 우리에게 맡기신 하느님의 선물인 이 평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탁월한 방법이 바로 사랑으로 대화하는 데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마음에서 평화는 탄생한다 교황님은 전쟁도 인간의 마음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합니다. 그러기에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인간의 마음이 바뀌어야만 합니다. 즉 새로운 마음을 지닐 때 우리는 세상을 다시 볼 수 있습니다. 평화는 세상을 새로운 마음으로 바라볼 때 생길 수 있습니다. 제17차 담화문의 주제인 “새로운 마음에서 평화는 탄생한다”는 말처럼! 인간 마음에 참된 변화가 없다면, 평화를 다시 세우는 일 그 자체도 오래가지 못하거나 환상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마음의 근본적인 변화를 신앙적으로 일컬어 ‘회개’(회심)라고 말합니다. 이 변화는 정신과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변화입니다. 이 변화는 먼저 개인의 양심에서 촉발되어 공동체의 마음에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평화를 위해 마음을 바꾸는 것은 진리에 그 토대를 둘 때 견고해질 수 있습니다. 또한 평화를 위한 이 새로운 마음은 사랑의 정신에서 비롯됩니다. 교황님은 교황 비오 11세의 말을 인용하여 이렇게 말합니다.“평화의 정신이 정신과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는 곳은 어디든 개인들 사이 그리고 민족 사이에 외적인 평화가 있을 수 없습니다. 정의의 권리를 인식하고 존중하기 위해서, 평화의 정신이 다른 정신을 사로잡아야 합니다. 정의가 사랑에 연결되게 하기 위해, 심지어 사랑이 정의를 압도할 수 있도록, 평화의 정신이 마음을 사로잡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평화가 틀림없이 정의의 업적이고 결실이라면, 평화는 정의보다 오히려 사랑에 귀속되기 때문입니다”(1984.01.01. 제17차 담화).우리가 마음을 바꿀 때 우리는 세상의 도처에서 평화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평화는 넓고 다양한 형태로 나타납니다. 민족 사이의 평화, 사회 안의 평화, 시민 사이의 평화, 종교 공동체 사이의 평화, 이웃 안의 평화, 우리 동네의 평화, 그리고 특히 가정 안의 평화 등입니다”(제17차 담화). 새로운 마음, 즉 평화를 위한 회심과 평화를 위해 이야기할 용기, 즉 ‘평화를 위한 대화’는 평화를 이루고자 하는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한 사항입니다. ‘회심과 대화’를 통해 우리는 우리 삶의 자리에 평화라는 선물 보따리를 가져다줄 수 있을 것입니다. 담화문의 결론으로 우리에게 평화에 동참하기를 호소하시는 교황님의 외침이 마음에 깊이 와 닿습니다. “평화가 더욱더 참다운 것이 되게 하고, 이 평화가 인간의 마음 깊이 뿌리를 내리게 합시다! 평화를 고대하는 고통받는 사람들의 울부짖음이 들리게 합시다! 그래서 어느 개인이나 다 쇄신된 형제적 마음의 모든 에너지를 우주 도처에 있는 평화라는 건물에 쏟게 합시다!”(제17차 담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