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장현(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운영연구위원)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억지력 강화’라는 말이 범람하고 있다. ‘억지’란 라틴어 ‘terrere’에서 유래한 용어로서 상대를 ‘겁먹게 한다’는 뜻이다. 나한테 확실한 보복 능력이 있으니 네가 만일 나를 공격하면 너는 망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억지력 강화는 윤석열 정부의 북핵 해법으로서 북한을 봉쇄하고 힘으로 압박해 스스로 포기하거나 무너지도록 하겠다는 발상이다. 윤석열 정부가 구상하는 북핵 억지력의 핵심은 확장 억제와 미사일 방어체체이다. 확장 억제는 미국의 핵우산을 말하는 것으로서 북한이 핵무기로 남한을 공격할 경우 그 보복으로 미국이 핵무기를 사용해 북한을 초토화시킨다는 전략이다. 보복의 두려움 때문에 북한이 감히 핵무기를 사용할 엄두를 내지 못하게 하는 방안이다. 미사일 방어체제는 한국형 미사일방어체제(KAMD)를 구축해 저(低)고도에서는 ‘천궁-Ⅱ’와 ‘패트리엇’으로, 고(高)고도에서는 ‘사드’와 ‘장거리지대공미사일(L-SAM)’로 북한의 탄도미사일을 요격하는 전략이다. 전략자산으로 불리는 미군 B-1B 전략폭격기 © 한겨례 / 공군 제공 억지력 강화의 효과 이 같은 억지력은 실제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많은 군사전문가들은 억지력에 대한 과신을 경계한다. 한국의 일부 보수 인사들은 미국의 핵우산 공약을 믿을 수 없다며 독자적인 핵무장을 주장하고 있다. 미국이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로 인한 자국의 핵공격 피해까지 감수하면서 한국을 방어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미사일 방어체계도 종심이 짧은 한반도 지형에서 북한의 탄도미사일로부터 한국을 방어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패트리엇 · 사드를 촘촘히 배치한다고 해도 발사 후 4~5분 내 도착하는 북한의 모든 미사일을 요격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휴전선 근처에 배치된 5000여 문의 북한 방사포 공격으로부터 수도권을 방어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방어 무기를 아무리 갖추어도 인구의 반 이상이 수도권 고층 건물에 거주하는 여건에서 전쟁이 발발하면 상상할 수 없는 피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패트리엇 © 중앙 포토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인 국제정치 세계에서 자국의 안보를 위해 군사력을 강화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군비 증강에 지나치게 자원을 많이 쏟아부으면 국력이 고갈되게 된다. 근래 한국의 군사비 증가는 너무 가파르다. 한국의 국방비는 2001년 15.4조 원, 2011년 31.4조 원, 2021년 52.8조 원으로 10년마다 거의 두 배씩 증가했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해도 과도하다. 2021년 한국의 군사비 52.8조 원은 GDP 규모에서 2.7배에 달하는 일본의 군사비 471.8억 달러(2022년)와 비슷하다. 북한과는 비교하기조차 민망하다. 2021년 북한의 국민총생산(GDP) 34.7조 원보다도 훨씬 많다. 사드 © 한국일보 남북 간 억지력 강화 경쟁은 필연적으로 끝없는 군비 증강의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북한의 군비 증강은 대량살상무기인 핵무기와 미사일 중심으로 이뤄질 것이므로 한반도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핵무기 화약고로 변해갈 것이다. 국제정치학에서 말하는 ‘안보의 딜레마’가 발생하고 있다. 적대하는 두 국가 사이에 한쪽이 안보를 튼튼히 하려고 군비를 증강하면, 불안해진 상대방도 똑같이 군비를 강화해 결국 양쪽이 작용-반작용의 군비 경쟁을 벌인 결과 양쪽 모두 안보가 취약해지는 상황이다. 갈등과 긴장의 상시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한반도 정세가 갈등과 긴장의 상시화로 치닫고 있다. 북한은 지난 8~10일에 열린 노동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강 대 강 · 정면승부의 방침을 채택하였다. 남한을 겨냥해서도 ‘대적 투쟁’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에 맞서 한 · 미는 확장 억제 강화, 전략자산 전개, 연합군사훈련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또한 한 · 미 · 일 3국의 군사협력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3국 국방장관은 지난 11일 싱가포르에서 만나 북한의 위협에 대응해 3자 협력을 추진하기로 합의하였다. 한 · 미 · 일 미사일 경보훈련과 탄도미사일 탐지 · 추적 훈련 등 3국 연합군사훈련을 실시하기로 하였다. 강 대 강 군사대치가 고조되며 예측할 수 없는 긴장이 한반도를 감싸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 질서가 요동치고 있다. 미국 - 중국 · 러시아 패권 경쟁이 격화되고 세계 각국들이 자국의 생존을 위해 각개 약진하면서 유엔을 비롯한 기존 질서가 무력화되고 있다. 미국은 오커스 · 쿼드 등 동맹 규합으로 약해진 지도력을 만회하려고 한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분명한 것은 평화와 번영을 추구해야 한다는 점이다.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높고 남북이 분단돼 대치하고 있는 대한민국은 힘에 의한 패권 전략을 추구할 수 없다. 주변국들과 평화와 상호 번영의 관계를 만들어야 우리도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는 외교에 좀 더 힘을 쏟아야 한다. 나눔 주제 : 1. 동북아 핵확산 억제를 위한 가톨릭교회의 역할과 방향에 대해 이야기해 봅시다.2. “평화는 결코 무기의 힘으로 균형이 이루어지지 않고 신뢰에 의해 확립된다”는 교회의 가르침에 대해 자신들의 생각을 나누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