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주원(인류학자) 1994년에 완공된 자유로는 가양대교에서 시작하고 임진각과 통일대교 언저리에서 끝난다. 오두산 통일전망대를 기준으로 자유로 한강과 자유로 임진강을 바라보면서 달릴 수 있다. 나는 이 도로에서 통일, 평화, 분단과 관련된 풍경을 봤다 © 강주원 작년 2021년 11월 늦가을에 나는 잠수교를 건너 강변북로로 접어들었다. 전 구간이 개통된 지 약 27년이 지난 자유로를 타고 1차 목적지인 임진강 통일대교까지는 약 70km다. 그 다리 너머 남방한계선까지는 한국 땅인데도 내비게이션이 안내하지 않는다. 난지도 노을 공원을 지나 가양대교 북단 언저리에서 바뀐 도로명은 자유로다. 이 지점을 두고 어느 백과사전에서 2017년 기준 전국에서 교통량이 가장 많은 도로라고 설명한 글귀가 기억난다. 하여튼 이 길은 서울을 벗어나 통일대교 너머 DMZ 한복판에 있는 판문점으로 향하고 있다. 자유로를 내달리자마자 저 멀리 보이는 행주산성보다 먼저 “나의 영웅, 나의 육군”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이런 홍보 광고판이 설치된 콘크리트가 단순 구조물이 아니다. 1970년대부터 “적군의 서울 시내 진입을 집중적으로 저지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대전차 방호벽”(《이데일리》 2019년 5월 10일자, “경기 북부 발전 가로막는 대전차 방호벽”) 가운데 하나다.2010년부터 경기도 각 지역에서 이런 구조물의 철거가 하나둘 진행되는 상황이라고 한다. 하지만 약 4년 동안 평화를 그려온 문재인 정부의 2021년에도 대전차 방호벽, 그 밑을 여전히 지나고 있다는 사실이 나는 어색하다. 저 거대한 콘크리트 장애물이 역사의 뒤안길로 언제쯤 사라질까?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는 이유가 있는 것일까? 개당 약 15억 원인 철거 비용의 문제일까? 남북 평화로 가는 과제에서 우선순위는 무엇일까?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왼쪽으로 행주산성이 스쳐 지나간다. 다음으로 도로 표면에 새겨져 있는 “통일동산”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군부대 경비초소들이 나타나고 “통일로 향하는 길목, 자유로”임을 알리는 비석이 중앙분리대 한복판에 서 있다. 방금 방호벽을 통과한 여운 때문인지 도로와 비석에 새겨진 통일이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바를 생각해봤다. 여전히 평화가 아닌 통일을 말하던 1990년대 어디쯤을 달리는 기분이다. 김포대교쯤에서 시속 80km로 스쳐 지나가는 차창 너머 왼쪽으로 철조망 윗부분만이 보이기 시작한다. 얼핏 보기에 삼엄한 철조망으로 보이지 않는다. 곳곳에 넝쿨이 자라고 있어서 그런지 울타리 이미지로 느껴진다. 도로 지형 때문에 보이지 않으나 저 철조망을 따라 2010년에 조성된 평화누리길 4코스가 지나가고 있을 것이다. 아직 그 길을 자전거로 달려보지 못했다. 대신 경기도 평화누리길 홈페이지와 블로그 후기들을 읽어본 적이 있다.그 길은 철조망을 따라 이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장항습지 언저리에서 닫혀 있는 통문이 가로막고 있다고 한다. 때문에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서 자유로 밑 지하통로를 지나 일산 호수공원으로 빠지는 길로 조성됐다고 한다. 평화의 이름을 단 산책로이자 자전거 도로는 철조망과 한강과 멀어진다. 자유로 한강의 군대 초소는 그 본연의 역할을 끝내고 이제 자전거를 기다리고 있다. 이런 공간이 자유로 전체의 풍경이 되는 날은 언제쯤 가능할까? © 강주원 한편 내가 읽었던 자료들이 뒤섞이면서 혼란스럽다. 아직 일산대교까지 가려면 약 5km 넘게 남았다. 이 지점에서는 철조망이 보이지 않아야 한다. 이미 역사의 뒤안길에 있어야 한다. 2006년부터 한강 하류 철조망 제거사업이 추진됐다.2013년 3월 말까지 “행주대교와 일산대교 사이 12.9km 철책(철조망)이 모두 제거된다.”(《연합뉴스》 2012년 4월 19일자, “한강하구 고양지역 軍 철책”)라는 내용을 읽은 적이 있다. 다시 검색해보니 2019년에도 비슷한 기사(《경향신문》 2019년 3월 10일자, “한강하구 고양 구간 철책 제거”)가 있다. 약 6년이 지났으나 여전히 기사는 철거 예정이었고 그해 완료된다고 발표됐다. 다만 모든 철조망의 제거는 아니었다. 또 3년이 지난 2021년 현재, 그 철조망이 한 줄은 제거되고 한 줄은 여전히 그곳에 있다. 기사 내용과 현장 상황이 일치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더디어도 약 10년이 넘게 흐르면서 풍경이 바뀌었다.간격을 두고 설치한 이중 철조망에서 하나는 사라지고 하나는 윗부분의 Y자 모양을 제거한 철조망으로 남아 있다. 분단 이후가 아닌 1970년부터 담당했던 자신의 역할이 끝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넝쿨과 공생하고 있는 한강 철조망에서 평화가 그려지고 있다. 이 느낌은 오래가지 않았다.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여기에서 통일대교까지는 약 40km 거리다. DMZ는 통일대교 너머에 있다. 한강 하류 어디에도 DMZ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2021년 11월, 한강에 DMZ 평화의 길이 만들어졌다. “비무장지대(DMZ)에서 시민들이 환경·평화·역사의 의미를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도록 고양시 구간의 통제”(《연합뉴스》 2021년 11월 11일자, “‘DMZ 평화의 길’ 고양시 철책선”)를 한시적으로 개방한다는 뉴스를 읽었다. 앞뒤가 안 맞는 상황이 2021년에 벌어지고 있었다. 이와 비슷하게 2020년 전후 한국 사회가 DMZ가 아닌 지역을 DMZ라고 말하면서 살아오는 모습들이 계속 보인다. 평화의 목소리가 분단의 상징인 DMZ 범위를 줄이지 않고 오히려 확장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모양새다. DMZ에서 평화체험을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DMZ가 아닌 지역, 한강 하류 주변에서 분단의 색깔을 덧칠하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보였다. 한강 철조망 너머에 김포 아파트 숲이 보인다. 자유로 위를 바라보면 통일이라는 단어가 아닌 “평화의 시작, 미래의 중심 고양” 문구가 있다. 부동산의 상징과 남북 평화의 소망이 공존하는 2021년의 자유로임을 말하는 것은 무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