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고 오래된 것들에 대한 예의

장경선 벨라뎃따(평화사도 1기 & 동화작가, 평화운동가) 함경도 마식령산맥에서 출발한 물줄기는 남쪽으로 흘러 연천에서 비무장지대 철책선을 지난다. 다시 서쪽을 향해 파주 민간인통제구역 안을 흘러 장단반도를 지나 오두산 통일 전망대 앞에서 한강과 만난다. 북에서 남으로 254Km의 여정이다. 남북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새들처럼 임진강도 북에서 남으로 넘실넘실 잘도 흐른다. 휴전선도 겹겹이 놓인 철조망도 지뢰밭도 임진강을 가로막지 못한다. 임진강에는 11개의 다리가 있었다. 자유의 다리(Freedom Gate), 홍커교(honker, 기러기), 스픈빌교(spoonbill, 저어새), 리비교(Libby, X-Pay, 북진교), 위전교(Widgeon, 홍머리오리), 틸교(Teal, 쇠오리), 핀테일파커교((Pintail/Parker, 고방오리), 라이트교(Corporal Wright), 화이트프런트교(Whiterfront, 흰이마기러기), 휘슬러교(Whistler, 휘파람새), 말랜드교(Mallard, 청둥오리) 등 몇 개의 다리 이름을 빼고는 대부분 임진강을 찾아오는 철새 이름이다. © 국방일보 여느 강처럼 조용한 임진강이 여름 장마에는 급류가 형성되고 겨울이면 유빙이 떠다녀 교각을 파괴시켰다. 1952년 여름의 기록적인 대홍수는 임진강의 다리와 부교를 모두 부숴버렸다. 전쟁 중이라 임진강을 건너는 일은 군 작전상 무척 중요했다. 미 제84건설공병대는 다리 설계를 완성했다. 1952년 11월, 대한민국 육군 소속 카투사 155명과 민간인 용접공 20명, 잠수부 4명, 목수 등 30여 명이 리비교 건설에 투입되었다. 논산훈련소 등에서 건설노동 경험이 있는 카투사 병사들이 차출되었는데 김호덕 상병도 이들 중 한 명이었다. 살을 에는 임진강 칼바람에 온몸을 덜덜 떨며 김호덕 상병과 젊은 군인들은 피눈물을 흘렸다. 김호덕 상병은 1953년 1월 31일 7번 교각 클램 작업 중 전사하였다. 미군 병사 제임스 이 오그라디 일병도 1953년 4월 16일, 한국 민간인이 탄 작업 보트가 전복되자 이를 구조하기 위해 뛰어들었다가 숨졌다. 젊은 군인들의 희생으로 정전협정 3주를 앞둔 1953년 7월 4일 리비교는 제 모습을 당당히 드러냈다. 리비교의 모습 © 리비교 가는 길: 이용남 사진집 (사진 이용남, 글 장경선) / 구름바다 제공 “1953년 7월 4일 리비교 준공식이 있었어요. 이 자리에 미8군 지휘관 맥스웰 테일러 장군이 명예훈장을 받은 ‘리비’ 중사의 이름을 따, 다리 이름을 ‘리비교’라고 지었어요. 한국인 기술자가 있었는데도...” ‘리비교’ 대신 김호덕 상병의 이름을 따 ‘김호덕교’로 불렸으면 어땠을까? 이름을 붙이는 일은 몹시 민감하다. 종군 위안부에서 일본군 ‘위안부’로, 다시 일본군 성노예로 이름을 고쳐 부르듯 이름은 존재의 진실을 드러낸다. “지뢰밭이 널렸는데도 톱, 곡괭이, 삽으로 나무를 베어냈고, 줄로 끌어내면서 농토를 개간했어. 금덩어리 같고 피 같은 땅이야.” 1.4후퇴 때 여덟 식구와 월남한 우재욱 어르신은 고향 땅과 가까운 장파리(장마루촌)에 자리를 잡고 땅을 일궜다. 리비교를 건너고 임진강변을 걸어 모녀고개 너머에 평생을 일군 논밭이 있고 그 너머에 고향이 있다. 단 한 번만이라도 이 길을 따라 고향 집에 닿을 수 있도록 지뢰밭에다 꾸역꾸역 생명을 심었다. 리비교를 앞마당처럼 지나다녔고 민통선이 삶의 터전이었던 어르신은 끝내 고향에 두고 온 딸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셨다. 한국전쟁 후 민통선은 온통 지뢰밭이었다. 민통선 땅 주인은 80%가 외지인이고 땅을 일구는 농부는 임진강변 사람들이다. 전쟁을 목적으로 세워진 리비교 위를 삶의 터전을 가꾸기 위해 삽과 호미를 든 농부들이 건너다녔다. 인삼을 심기 위해 산을 개간할 때는 펑펑 지뢰가 터져 다리를 잃고 목숨까지 잃었다. 그렇게 일군 땅 위에 미군 전용 국제사격장인 스토리 사격장이 들어섰다. 파주시 진동면, 군내면, 장단면 일대 215만 평이나 되었다. 그 바람에 애써 가꾼 농지가 사격장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나라를 위한 일이니 조금만 참아 달래서 고스란히 나라에 논밭을 내어놓고, 다시 지뢰밭을 일궈 쟁기질을 했다. 2004년 1월 5일 스토리 사격장 산림훼손 현장 © 한겨례 리비교는 이 모든 사실을 지켜보았다. 이쪽 마을과 건너 마을을 이어주었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었다. 피란민들이 리비교를 건너왔고 군인들이 리비교를 건너갔다. 농부들이 농사를 지으러 리비교를 건넜고 미군과 군인들이 훈련을 받으러 리비교를 건넜다. 탱크와 트럭, 경운기와 트렉터, 오토바이와 자전거가 쉴 새 없이 리비교를 건넜다. 67년 동안 한결같았다. 리비교 통행금지에 항의하는 농민 © 리비교 가는 길: 이용남 사진집 (사진 이용남, 글 장경선) / 구름바다 제공 “리비교를 고친다고 출입을 못 하게 해. 10분이면 가는 길을 저 아래 전진교로 돌아가는 바람에 30분이나 더 걸리고 있어. 그래서 다리를 빨리 고쳤으면 좋겠는데 요새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리비교를 모두 걷어내고 새롭게 놓아야 한다는 거야. 그 다리가 농민의 생명이야. 참, 알고 보면 역사가 많은 다리야. 저 다리가 아무 써먹을 데 없는 고물이라도 그래도 역사는 그런 게 아니야. 그동안 역사는 그런 게 아니야.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건너다녔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은 게 그 다리야. 그걸 왜 헐어? 후세에 젊은 사람들이 거길 찾아가서 ‘아, 이게 리비교구나.’ 하면 그게 역사야. 그러니까 그거를 헐지 말고 나의 선조가 어떻게 이 다리를 건넜고 전쟁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그런 걸 기념으로 남겨야 하는데..., 헐면 잘못이야.” 몇 개의 교각을 보강하고 상판을 얹으면 되겠지, 보란 듯이 후손들에게 리비교를 전해주자는 바람과는 달리 다리 상판을 드러내자 교각까지 문제가 있다는 진단이 내려졌다. 67년을 끄떡없었던 리비교 여덟 교각은 숭덩숭덩 잘려 나간 채 만신창이가 돼 버렸다. 지켜내는 일이 어려운 줄 다 안다고, 자신의 몫을 충분히 살아낸 리비교는 그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볼썽사납고 불편한 건물을 빨리 없애버리고 번듯한 건물을 짓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다. 그들의 무지 때문이라고, 그들의 탐욕 때문이라고 손가락질로 매도할 수만은 없다. 사라진 후에야 우리는 낡고 오래된 것에 깃든 그의 과거와 그의 현재와 그의 미래를 천착하게 된다. 언제부터인가 조금씩 오래된 것들에 눈이 간다. 가슴 절절한 사연을 닮고 있는 리비교가 사라진 건 못내 안타깝다. “저 다리가 아무 써먹을 데 없는 고물이라도 그대로 보존을 하는 것이 역사야.”

천주교의정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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