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폴 레더락, <도덕적 상상력>, 김가연 옮김, 글항아리, 2016 장은희 아녜스(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청년 연구자 모임 샬롬회 회원) 존 폴 레더락은 갈등 전환 분야에서 널리 알려진 학자이자 활동가이다. 그의 책 <도덕적 상상력>이 번역되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내심 기술적인 이론서를 바랐었지만, 예상과 달리 저자는 갈등전환 분야에 기술적 접근의 거북함을 토로한다. 이 책은 기술 중심적 시각에서 벗어나 25년간 갈등 전환 분야에 몸담으며 얻은 저자의 개인적인 통찰이 담겨 있다.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바는 ‘전문적인 기술이 아닌 예기치 않게 발휘된 도덕적 상상력이 건설적인 사회 변화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갈등 현장의 복잡성을 초월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본질에 다가가야 한다. 레더락은 이를 위해 아주 간단한 아이디어를 제안한다. 건설적 사회 변화를 위해서는 ‘문제의 본질을 꿰뚫는 직관’과 ‘문제의 핵심을 포착하는 능력’이 필요한데 이것들은 창의적 예술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하이쿠(일본의 시조 형식) 한 줄을 읽고 사람들의 머릿속이 ‘아하’하고 번뜩인다. 저자는 이에 빗대어 예술이 건설적 사회 변화를 이끄는 그 순간을 ‘아하’하는 순간이라고 말한다. 책에 나온 하이쿠를 보면 예술이 도덕적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방식을 짐작할 수 있다. 어떤 스승의 제자가 이런 하이쿠를 지었습니다.‘고추잠자리에서 날개 한 쌍을 떼어라, 그러면 고추 한 꼬투리가 되겠지.’그러자 스승은 말합니다. ‘그건 하이쿠가 아니야, 너는 잠자리를 죽였다. 하이쿠를 지으려면 생명을 주어야지. 이렇게 말해야 한다.’‘날개 한 쌍을 고추 한 꼬투리에 붙여라, 그러면 고추잠자리가 되겠지.’ 건설적 사회 변화를 위한 아이디어는 기술보다는 예술과 같은 창의적인 행위에서 나온다. 지적인 수준에서만 분석하고 기술을 개발하는 데 치중하면, 문제의 본질을 꿰뚫는 순간인 ‘아하’하는 순간은 만날 수 없을 것이다. 이처럼 폭력이라는 늪에 발을 담그고 있으면서, 그 패턴을 초월할 수 있는 것은 기술적인 측면보다 예술적인 노력과 더 관련이 있다. 1992년 5월 27일, 유고슬라비아의 수도 사라예보는 세르비아 민병대로부터 포위되어 있었다. 사라예보 광장의 빵집 한 곳이 문을 열자, 사람들은 식료품을 구하기 위해 빵집 입구부터 길거리까지 길게 줄을 섰다. 그들 발밑으로 폭탄이 떨어지고이 일로 22명의 사람들이 죽었다. 빵집 주변에 살던 스마일로비치는 사건 이후 희생자 한 명, 한 명을 추모하며 광장에서 첼로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가 연주를 하는 동안에도 폭격은 끊이지 않고 일어났다. 한 기자가 그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사라예보에 폭격이 일어나고 있는데 음악을 연주하다니, 제정신이에요?” 스마일로비치는 답했다. “음악을 연주하는 것은 미친 짓이 아닙니다. 제가 여기 앉아서 첼로를 켜고 있는데 사라예보를 폭격하다니, 제정신이냐고 가서 좀 물어보시지요.” 비정상적인 폭력을 초월하는 창의적인 행위는 한 첼리스트의 손에서 시작되었다. 스마일로비치 갈등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평화운동은 미스터리하다. 레더락은 한 풀뿌리 공동체의 평화운동에 관하여 신학적 의견을 내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연구 끝에 그는 공동체 사람들 대부분이 명백한 신학적 이론을 갖고 있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갈등 지역의 사람들은 폭력에 건설적으로 개입하고 적들과 화해하는 방법을 찾아낸 훌륭한 평화운동가였다. 그런데도 자신들이 해온 일들을 명백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그들의 교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의 행동을 미스터리한 일이었다고 성찰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폭력을 넘어서고 적과의 관계라는 위기의 미스터리로 들어가게 하는 것은 그들이 들은 ‘소명의 목소리’이다. 평화운동은 좋은 아이디어나 기술에 관한 전략 이상을 필요로 한다. 그것은 심연에서 울리는 소명의 목소리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물으며 자신을 성찰하는 것은 결코 우리가 하는 일과 연결되지 않을 수 없다. 평화운동을 하는 ‘우리는 누구인가, 어디에 위치하는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알베르트 아이슈타인의 말처럼 논리는 당신을 A에서 B로 데려가지만, 상상력은 당신을 어디로든 데려갈 것이다. 마야(소수민족) 여성들의 포토보이스 – 소수민족 여성의 현실을 사진으로 담아내 사회에 알리는 평화운동 어떻게 하면 분쟁과 갈등을 해결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대화’와 ‘협상’을 쉽게 떠올린다. 이러한 원칙으로 맺어진 평화 협정이나 인도주의적 개입은 갈등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민주적이고 비폭력적인 방법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 틀에 갇혀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이 있다. 이 책에서 문제가 복잡할수록 단순한 본질을 꿰뚫어야 한다고 했을 때, 필자는 갈등 지역의 사람들이 떠올랐다. 이들에게 국가 단위의 평화 협정이 진정성 있는 변화를 가져왔을까 하는 의문과 함께 말이다. 분쟁 지역의 갈등을 다룰 때, 정부와 국제사회의 역할은 사실 제한되어있다. 변화는 정부나 국제 정치가들이 아닌 분쟁 지역의 사람들에게서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분쟁 지역의 사람들이 아니라면 진정성 있는 사회 변화인지 아닌지 판별할 수 없다. 저자가 분쟁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도덕적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했을 때, 필자는 가장 먼저 그 상상력을 상대방의 입장과 이익을 고려할 때 사용해야 한다고 본다. 상대방의 타당한 이익을 확언해 주는 것은 분쟁 해결의 결정적인 걸음걸이가 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도덕적 상상력이 발휘될 때, 상상력은 단순한 지성을 넘어서 그 자체로 평화운동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