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덕희 베드로 신부(의정부교구 7지구장) 최근 들어 평생동안 평화를 연구하고 평화에 헌신한 한 학자의 회고록을 읽고 있습니다. 그 제목은 <평화에 미치다>. 이 제목이 제 마음에 깊이 다가왔습니다. 흔히 우리는 세상이 미쳐 돌아간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우리는 전쟁의 광기 어린 세상에 몸담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이렇게 거꾸로 미쳐 돌아간다면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반대로 세상을 거슬러 투신할 사람들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즉 정의에 미치고, 사랑에 미치고, 평화에 미쳐 참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 이 책의 저자인 박한식 교수는 평화에 대해 이렇게 정의합니다. “평화는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다름과 다양성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상태이다.” 세상이 거꾸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우리가 가야할 길은 분명합니다. 그 길은 평화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평화에 미치다, 박한식 저, 삼인, 2021 평화는 국경이 없는 가치이다 유엔은 1986년을 ‘세계 평화의 해’로 선포합니다. 평화는 한두 사람이나, 특정 단체에게만 주어지는 평화가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동등한 가치로 여겨지는 평화입니다. 그러기에 평화는 보편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인류 모두에게 평화는 공평합니다. 따라서 평화에는 국경이 없습니다. 교황님도 “평화는 국경이 없는 가치”라고 강조합니다. 선의와 희망의 열망을 가진 모든 이에게 평화는 한 발짝 다가갑니다. 하지만 평화가 우리 삶의 자리에 다가오도록 하기 위해 우리는 ‘형제애’와 ‘함께’라는 경로를 통해야만 합니다. “하나의 세계 공동체를 향한 올바른 경로는, 국경 없이 모든 백성들 한가운데에서 그리고 모든 대륙에서 정의와 평화가 지배할 세계 공동체를 향한 올바른 경로는, 연대 대화와 보편적 형제애의 경로입니다”(1986.01.01. 제19차 담화). 평화는 인류가 한 형제임을 인지할 때 더욱 견고해집니다. 이렇게 인류 가족이 하나라는 사실을 인지할 때 우리는 평화를 향한 험난한 길을 함께 걸어갈 수 있습니다. 함께라는 인식 아래 이루어지는 대화는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게 되며 우리는 이를 통해 새로운 삶의 의미를 배우게 될 것입니다. 즉 1) 모든 인간에 대한 존중, 2) 참된 가치와 다른 이들의 문화에 대한 존중, 다른 이들의 적법한 자율성과 자결권에 대한 존중, 3) 다른 이들의 선을 이해하고 지지하기 위해 자신을 넘어 바라보기, 4) 사회 차원의 연대와 대화가 우리가 사는 세계의 영속적 특성이라는 것. 평화는 어떤 경계도 필요없는 인류 모두에게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인류가 한 가족이라는 형제애를 느끼고 있다면 우리는 동서남북 어디서나 세계 모든 곳에서 ‘하나의 평화’를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발전과 연대’, 평화를 여는 두 열쇠 바오로 6세 교황 회칙 「민족들의 발전」 ‘인류가 한 가족’이라는 전제하에 우리는 ‘발전’에 대해 논할 수 있습니다. 형제애가 없는 발전은 차별과 불평등만을 가져올 뿐입니다. 형제애에 기초한 발전은 함께 성장함을 의미합니다. 바오로 6세 교황님은 회칙 「민족들의 발전」에서 “발전은 평화를 위한 새로운 이름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평화를 전제로 할 때에만 우리는 함께 성장할 수 있습니다. 평화에 대한 담론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개념이 ‘연대’입니다. 평화는 혼자서 이룰 수 없습니다. 함께 연대할 때에만 가능합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이 평화의 문을 여는 두 열쇠로 ‘연대와 발전’을 제시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일 것입니다.“연대와 발전은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에 필수적입니다. 연대는 인간성에 관한 가치의 긍정을 포함하기 때문에 본성상 윤리적인 것입니다. 발전은 궁극적으로 평화에 관한 물음입니다. 왜냐하면 발전은 다른 이들에게 그리고 전체로서의 인간 공동체에 좋은 것을 성취하도록 돕기 때문입니다. 연대와 발전은 평화의 문을 여는 두 열쇠입니다”(1987.01.01. 제20차 담화). “저는 여러분 모두에게 호소합니다. 여러분이 어디에 있든, 여러분이 무엇을 하고 있든, 어느 인간 존재나 다 그 안에서 형이나 누이의 얼굴을 보아 주십시오. 우리를 결합하는 것은 우리를 분리하고 가르는 것보다 훨씬 더 대단한 것입니다. 우리를 결합하는 것은 우리의 공동 인성이기 때문입니다”(제20차 담화). 교황님 말씀대로 우리가 서로에게서 형제의 모습을 발견한다면 우리는 하나의 평화가 그 얼굴에 담겨 있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평화는 언제나 하느님의 선물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렇지만 평화는 우리에게도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평화의 문을 여는 열쇠는 우리의 손이 미치는 곳에 있습니다. 모든 문을 열려고 그 열쇠를 사용하는 것이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제20차 담화). 평화의 열쇠는 우리 손이 미치는 곳에 있습니다. ‘연대와 발전’이라는 두 열쇠를 우리가 두 손에 꼭 쥐고 있는다면 평화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그 평화의 문을 우리는 분명 열 수 있을 것입니다. 신자들과 손을 잡은 교황 ©Vatican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