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데리코 롬바르디(Federico Lombardi), SJ / 발행일 : 2019년 3월 18일 2022년 「평화의 길」 특별 기획으로 이웃 국가 중국의 ‘천주교회’의 역사와 오늘날의 모습, 그리고 바티칸과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하여 관련 칼럼을 번역하여 소개합니다. 글의 영역본은 예수회 교양지 「치빌타 카톨리카」(La Civiltà Cattolica)의 <교회 생활Church Life> 코너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원문 링크 : https://www.laciviltacattolica.com/the-church-in-china/ 파롤린 추기경이 쓴 이 글은 <치빌타 카톨리카(La Civilità Cattolica)>의 편집장 안토니오 스파다로의 “중국의 교회(La Chiesa In Cina, ed.)” 2권의 서문입니다. 전자책 버전은 2019년 3월 25일 출시되었으며 치빌타 카톨리카에서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영문본 구입에 관심이 있다면 info@laciviltacattolica.com로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이 간행물은 안토니오 스파다로 신부가 기획한 중국 교회에 관한 두 번째 간행물이다.[1] 이 간행물은 특히 2018년 9월 22일 베이징에서 주교 임명에 관한 임시합의가 체결됨에 따라 교황청과 과거의 중국 관계의 역사상 매우 특별한 순간에 출간되었다. 본 간행물은 <치빌타 카톨리카> 저널과 조지타운 대학의 공동 프로젝트인 “문명 대화를 위한 중국 포럼” 활동의 일환으로 발간되었다. <치빌타 카톨리카>에 지난 2년여간(2019년 기준) 실린 다양한 연구들을 한 데 모아 놓은 이 간행물은 오늘날 중국의 문화, 사회 및 영성을 주제로 독자들을 독특한 지식의 여정, 그리고 교회의 여정으로 안내한다. 앞표지를 장식하는 중국어 단어는 ‘여정’과 ‘앞으로’라는 두 가지 매우 인상적인 표현을 의미한다. 이 두 단어는 1980년대 말 이후 수많은 사건들을 거쳐 다양한 차원에서 발전해 온 교황청과 중화인민공화국 당국 간의 제도적 대화의 여정을 종합해서 보여준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이 단어들은 또한 교회의 연속성과 미래를 위한 사목적 참여라는 두 가지 근본적인 해석의 열쇠를 반영한다. 두 가지 중요한 개념은 특히 현대사회에서 그 중요성이 두드러진다. 우리는 과거를 기억하면서 중국 교회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장을 함께 열어가도록 부름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현지 천주교 공동체의 영적 보물을 간과하지 않아야 하며 중국 천주교 신자가 오랜 세월 동안 겪었던 큰 고통과 오해를 짊어져야 할 것이다. 본 연구 모음집이 베네딕토 15세 교황의 교서 “가장 위대한 임무(Maximum Illud)”가 반포된 후 정확히 100년 뒤에 발간되었다는 점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이 교서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사목적 회심”이라고 칭하는 완전한 개혁의 촉진이라는 목적을 지닌 선교를 전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가장 위대한 임무”는 무엇보다도 베네딕토 15세가 “무익한 대학살”이라고 옳게 정의한 제1차 세계 대전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베네딕토 15세의 평화에 대한 굳건한 의지를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이 교서를 통해 베네딕토 15세는 세계 복음 선포 활동과 관련하여 많은 선교사들의 영웅적 행위를 인정하는 한편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수행된 사업의 한계를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이와 동시에 만민을 대상으로 한 선교의 영적, 사목적 근원으로 돌아올 것을 촉구하였다. 결과적으로, 베네딕토 15세 교황은 선교사들에게 더 큰 역동성에 대한 요청, 종교 집단 간의 긴밀한 협력, 배타주의와 경쟁 지양, 이웃 교구 간의 협력관계 구축, 그리고 무엇보다도 현지인 사제들에 대한 우월의식을 지양하며 함께 그들에 대한 양성에 더 큰 열정을 지닐 것을 권고하고 있다. 또한, 베네딕토 15세는 선교사들에게 민족주의적 정서 함양에 대한 위험을 경고하고 효과적인 설교를 하기 위해서 현지 언어 학습을 통하여 문화적 측면에서 만반의 준비를 갖출 것을 권고하였다. 마지막으로, 이 교서는 선교는 서구 그리스도교의 확장이 아니라 진정으로 보편적이기를 원하는 교회의 표현이라는 강력하고 분명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는 무엇보다도 중국을 겨냥한 메시지였다. 사실, 교황의 주된 요청은 라자로회 소속 뱅상 레브(Vincent Lebbe) 신부와 앙투안 코타(Antoine Cotta) 신부, 파리외방전교회의 장바티스트 구에브리앤트(Jean Baptiste de Guebriant) 몬시뇰 등 바로 그 위대한 나라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선교사들로부터 전해진 요청이었다. 로마에서 이러한 교서의 메시지는 많은 관심과 주의를 끌었다. 한동안 교황청은 전통적인 ‘그리스도교 국가들’에 속하지 않는 유럽 밖에 위치한 국가들과 새로운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유럽 국가들 간의 충돌과 심지어 중국에서도 그 부정적인 영향이 극심하게 느껴짐에 따라 천주교 선교지를 확고히 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러한 맥락에 따라 제국시대가 종식된 후 수년간 교황청과 새로운 중국이라는 국가 간에 우호적인 관계를 수립하고자 대화가 진행되었다.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중국은 선교사 ‘실험실’이 되었다. 천주교회의 복음화 사업에 대한 재고와 쇄신은 중국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 다른 국가들로 퍼져나가게 되었다. 이는 우연이 아니다. 천주교회는 항상 중국 문명과 역사의 특성과 풍부함을 인식하고 존중해왔다. 중국에서 발전된 새로운 선교활동의 접근방식은 교회의 보편성에 대한 강한 인식을 바탕으로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이로 인하여 간접적으로 복음이 선포되는 모든 민족과 모든 나라의 평등한 존엄성을 인정하는 계기가 되었다. 베네딕토 15세 교황의 비전을 실행에 옮겼던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은 중국에 파견된 첫 교황 사절 첼소 코스탄티니(Celso Constantini) 대주교였는데, 그는 베이징을 중심으로 복음화의 물결이 아시아 전역으로 퍼져나갈 것이라고 보았다. 그 당시 교회 안팎에서 저항이 만만치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엇보다도 1800년대에 교회와 국가가 분리되었음에도 어떻게든 유지된 선교활동에 대한 예전의 통제력을 상실한 유럽 열강에서의 저항이 특히 심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교황청은 복음 선포의 신뢰성 측면에서 이러한 저항에 대해 치러야 할 대가가 높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교회 내부에서도 의구심이 표출되었으며, 이는 비록 눈에 덜 띄긴 하지만 그만큼 뿌리 깊고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따라서 일부는 베네딕토 15세의 교서를 무시하였으며, 다른 이들은 선교 협력과 관련된 측면에서만 이를 환영하였고 많은 사람들이 교서의 내용을 크게 오해했다. 그리고 반발을 산 내용이 “가장 위대한 임무”에서 다음과 같은 메시지로 요약된 진정한 역사적 변화의 방향에 관한 내용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아마도 이러한 저항이 놀랍게 느껴질 이유는 없을 것이다. “하느님의 교회는 보편적이며 따라서 어떤 민족에게도 낯설 수 없듯이, 각 나라에 스승이요 장상으로서 자신의 동포들을 영원한 구원의 길로 이끌 능력이 있는 사제들이 있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잘 교육받고 또 자신의 고귀한 성소에 합당하게 응답한 현지인 사제의 수가 충분히 많은 어느 곳이든, 바로 그러한 곳이 교회가 잘 설립된 곳이라 말할 수 있고, 또 선교 사업이 완수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박해의 구름이 그 교회를 덮친다 하여도, 이렇게 튼튼한 기초와 굳건한 뿌리를 지닌 그 교회가 적의 공격에 굴복할까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2] 교서의 이러한 내용은 놀랍게도 1900년대에 중국에서 일어날 일들을 예견했다. 중국에서 많은 시련과 어려움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지인 사제들에게 굳건하게 뿌리내린 천주교회는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여전히 살아있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해보면 우리로 하여금 현재 중국에서 천주교의 존재에 대해 질문을 던지게 한다. 지난 100년간 세상에는 많은 일들이 벌어졌고, 100년 전과 비교해보면 천주교회 내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라는 큰 사건이다. 그러나 지금은 중국인 신자들이 중국 천주교회를 가꾸고 있다고 할지라도 중국의 복음화는 여전히 오늘날 천주교 전체의 주요한 과제로 남아있다. 그리고, 한 세기 전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중국의 사례는 복음화의 도전에 맞서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교회의 일치를 재편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최근에 이러한 측면에서 중요한 진전이 있었다. 2018년 9월 8일, 중국에서의 복음 선포를 지원하기 위해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청 승인 없이 임명된 나머지 7명의 ‘공식’ 주교들을 인정하며 완전한 친교로 환영하였다. 따라서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중국의 모든 주교는 교황과 친교를 이루고 있다. 그 이후, 중국 본토 출신의 주교 2명이 처음으로 2018년 10월에 열린 ‘제15차 주교 시노드 총회’에 참석한 것은 이러한 친교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두 주교는 중국 교회가 보편 교회에 완전히 통합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며(지금은 실현 가능하게 되었다고) 기뻐하였다. 중국 교회는 일치가 필요하고, 신뢰와 새로운 사목적 선교적 활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변화가 일어나면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중국 천주교 신자들에게 “열정적인 선교사, 참된 삶을 나누는데 열성적 태도” [3] 그리고 “사도의 용기”[4]를 갖추고 다른 이들에게 복음의 기쁨을 전할 필요성을 상기시킨 것은 우연이 아니다. 당연히 중국 안에서의 교회적 삶에는 아직도 많은 문제가 존재한다. 2018년 9월 20일에 체결된 잠정 합의는 종착점이라기 보다는 출발점이라는 점은 우연이 아니며 강조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일치의 길은 아직 완성된 것이 아니며 중국 천주교 신자와 이들이 속한 각각의 공동체 간의 완전한 화합이 아직도 주요한 목표로 남아있다. 따라서 중국에서는 기억의 정화를 위한 진지한 여정을 위해 점진적으로 발을 떼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하다. 100년 전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교회의 보편성은 교회로 하여금 한 지역 또는 문명과 우선적인 관계를 맺기 위해 세상의 다른 지역 또는 문명을 희생시키지 않도록 한다. 특히 교회의 보편성은 교황청이 특정 국가에 대해 불신이나 적대감을 키우지 않고 서로 거리를 줄이고 오해를 극복하며 새로운 분열을 피하도록 대화의 방식을 따르도록 한다. 중국에서의 복음 선포는 중국 국민과 그들의 합법적인 국가 당국에 대한 인정, 존중 및 신뢰의 태도와 분리될 수 없다. 세계화된 세상에 만연한 분열과 갈등을 우려하면서 교황청은 중국과 협력하여 평화를 증진하고 이 시대의 심각한 환경문제를 해결하며 문화 간의 접촉을 촉진하고 인류의 선을 증진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늘 그래왔듯이 오늘날에도 교회는 중국의 수많은 아들딸들의 희생을 잊지 않고 있지만, 이들의 희생을 고려해 볼 때, 교회는 여전히 복음을 알지 못하면서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더 큰 증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방법을 찾습니다. 역사는 종종 종교 문제와 정치 문제, 교회 문제와 문화 토론, 도덕적 질문과 사회 문제들을 불가분의 관계로 몰아넣는다. 복음화의 필요성은 또한 다수의 특정 문제들을 해결하고 일치된 접근방식을 촉진할 수 있는 관점을 제공하기도 하며, 이를 통해 신학, 법률, 사목 활동, 심지어 외교 분야까지 창의적이고 건설적인 방식으로 통합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오늘날에도 교황의 교회와 중국인들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저항과 반대에 부딪히고 있다. <치빌타 카톨리카>의 필진이 최근 몇 년간 노력해 왔듯이 나는 이러한 지식인층의 기여가 안이한 반대 논리를 극복하고 오늘날 중국과 세계의 문화적, 사회적, 종교적 도전과제의 진정한 복잡성을 인식하며 생산적인 만남의 기쁨을 여전히 가로막고 있는 매듭을 점진적으로 풀어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2016년 포르데노네에서 나는 중국-바티칸 대화의 현재 상황과 교황청과 중국의 관계가 새로운 발전과 국면을 맞이할 것이라는 다수의 희망과 기대를 요약하여 제시했었다. 중국을 단지 공자의 땅이 아니라 지구상 위대한 문명을 자랑하는 국가로서 바라보는 관점에서 중국의 천주교 신자들이 중국-바티칸 관계에서 누릴 수 있는 이점을 다루었다.[5] 나는 중국과의 바람직한 새로운 관계가 두려움과 떨림 없이 구상되고 추진되고 있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였는데, 왜냐하면 중국은 하느님의 어떤 것인 교회를 단지 중국 천주교 신자들의 이익, 전체 중국 인민들의 이익, 그리고 전체 사회의 화합을 위한 기능적인 것으로만 보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과 관련하여 교황청 활동이 추구하는 목적과 목표는 늘 한결같다. ‘영혼의 구원(Salus animarum)’과 ‘교회의 자유(Libertas Ecclesiae)’가 그것이다. 중국 교회에게 이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더 자유롭게 선포하고 이를 통해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환경에서 교회의 신뢰를 더욱 증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한다. 중국의 천주교회는 ‘외국 종교’가 아니라 중국 역사의 중요하고 능동적인 부분이며 보다 조화롭고 만민을 존중하는 사회를 건설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 오늘날 프란치스코 교황은 수많은 어려움, 오해, 고통을 겪은 후, 천주교 공동체도 진실한 대화를 통해 중국(Middle Kingdom)에서 “진정한 중국식 음표로 풍성해진 믿음과 감사의 찬가”를 부를 수 있기를 희망한다.[6] 필자 소개 피에트로 파롤린(Pietro Parolin) 추기경은 교황청 국무원장이다. [1] 첫 번째 간행물은 “Nell’anima della Cina. Saggezza, storia, fede”, 밀라노, 안코라(Àncora), 2017.[2] 베네딕토 15세, “가장 위대한 임무(Maximum illud)”, 세계에서 선교사들이 수행한 활동에 관한 교서, 1919년 11월 30일.[3] 프란치스코, “중국 천주교 신자와 보편 교회에 보내는 메시지”, 2018년 9월 26일, 7쪽.[4] 프란치스코, 교황 권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Gaudete et exsultate)”, 2018년 3월 19일, 139쪽.[5] 2016년 8월 27일 포르데노네 신학교에서 열린 컨퍼런스 참조.[6] 프란치스코, “중국 천주교 신자와 보편 교회에 보내는 메시지”, 2018년 9월 26일, 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