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혜원(북한대학교대학원 박사 수료) 최근 들어 ‘메타 인지’라는 단어를 자주 들었다. 자신의 생각이나 인지에 대해 판단하는 능력인 메타 인지는 1970년대 발달심리학자인 존 플라벨(J. H. Flavell)이 처음 사용했다고 한다. 메타는 그리스어에서 유래된 말로 “~사이에, 뒤에, 넘어서”를 뜻한다. 설명 메타 인지에서 핵심은 자기 객관화일 것이다. 어떤 것의 객관화를 위해서는 그것과의 일정한 거리가 필요하다. 거울을 너무 가까이하면 아무것도 볼 수 없듯이 모든 것은 일정한 거리를 둘 때 더 잘 보이는 법이다. 나 역시 북한에서 태어나 30년 가까이 살았으나 아는 것 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더 많았다. 여기서 몰랐다는 의미는 어떤 사실(Fact)을 몰랐다기보다는 그 사실에 대한 인지(Cognition)가 편협했음에 무게를 두고 싶다. 남한에서 바라보는 북한은 내가 살았던 북한과 다르게 다가온다. 북한을 떠났기 때문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현실감보다는 한발 뒤에 물러서 북한을 바라봄으로써 새롭게 인지되는 것들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남한에서 접하는 북한의 소식은 크게 두 가지 경로를 통해 얻는다. 우선 언론이다. 북한 언론의 내용을 브리핑해 주는 국내 언론이거나 혹은 국내외 대북 매체들이 전해주는 북한의 소식이다. 두 번째는 탈북민들로부터 얻는 내용이다. 언론보다는 훨씬 구체적이고 또 사적이며, 지역적 특성이 강하다. 여기에 전달자의 느낌과 생각까지 더해지면 언론이라는 매체 혹은 활자를 통해 얻는 정보 그 이상의 무엇이 있다. 물론 언론매체도 탈북민의 얘기를 인용하거나 탈북민이 쓴 글을 싣기도 하지만, 직접 만나 나누는 이야기가 주는 복합적인 느낌을 전달하기엔 한계가 분명하다. 얼마 전 오랜 인연을 이어온 탈북민 몇 명과 저녁을 먹었다. 탈북민들과 마주하면 자연스럽게 북한의 소식이나 과거 경험들을 나눈다. 거주지역도 다르고, 경험한 사회생활이나 학교생활도 다르고, 연령대도 다른 사람들이라 이야기를 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북한에 그대로 있었더라면 도무지 만날 인연 같지 않은데 한국에서 이렇게 마주 앉아 있다니! 참으로 신기하다. 북한이 코로나 발병을 공식 인정한 이후 탈북민들이 북한의 가족들과 연락하는 게 많이 어려워졌다. 탈북민과 북한에 남아있는 그 가족들과의 연결은 북중 국경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북한 사람들의 중개하에 중국 통신망과 휴대전화를 이용하여 이루어진다. 북한당국도 이러한 사실을 모르지 않으며, 그래서 감청과 감시체계를 끊임없이 개선하고 있다. 코로나 발병으로 이러한 통제와 감시의 명분이 분명해졌고, 당국이 처벌 수위를 높이자 연결 역할을 해주던 중개인들이 조심하면서 한동안 가족의 소식이 끊겨 걱정하는 탈북민들이 많았다. 압록강변 신의주 근처 마을에서 근무 중인 북한 군인 © AFP/연합뉴스. 2017 그런데 최근에는 가족들과 소식을 나눴다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기 시작했다. 이는 두 가지 가능성을 시사한다. 하나는 당국의 통제가 느슨해졌을 수 있고, 다른 하나는 당국의 강도 높은 처벌에도 불구하고 어려워진 형편 때문에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연락하는 것일 수도 있다. 북한당국의 감시장비들이 현대화되면서 일정 시간 이상 통화할 경우 들킬 확률이 높다. 북한에 있을 당시 나도 남한으로 먼저 온 가족의 전화를 받은 경험이 있기에 그 위험성과 고달픔을 너무 잘 안다. 짧게 그리고 자주 이동하면서 전화를 했고, 인적 드문 곳이나 보위부 요원들이 접근하기 귀찮은 험한 산속에서 늦은 밤이나 새벽에 전화하기도 했다. 지금 그런 일들을 생각하면 참으로 어이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에서 살 당시에는 그런 상황들이 그다지 불만스럽지 않았다. 주민들의 생활 형편을 어렵게 만드는 체제에 대한 불만보다는 내가 불법을 저지르고 있고 조국을 배반하는 행위를 하고 있다는 죄책감이 더 컸다. 특히 들켰을 경우 받게 되는 처벌에 대한 두려움은 탈북의 중요한 동기가 될 만큼 사람을 위축되게 만든다. 상황이 좋든 나쁘든 일이 쉽거나 힘거나 반복하다 보면 누구나 적응하게 된다. 더욱이 북한에서 태어나 바깥세상을 접할 기회가 극히 드문 주민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주변 환경에 대한 객관화가 어렵다. TV를 켜도, 직장 동료나 동네 사람들을 만나도, 친구를 만나고 다른 지역으로 가도 나누는 정보가 비슷하고 끊임없이 “당과 수령”에 대한 세뇌가 이어지는 환경이다 보니 생각도 비슷해진다. 외부자의 시선으로 북한을 바라보면서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내부자의 관점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것”들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생각들을 비정상적이고 당장 바꿔야 할 것으로 일반화하고 강요한다면 그것 또한 폭력이다. 시기적으로 먼저 온 탈북민들과 나중에 온 탈북민들 사이의 갈등도 이러한 인식에서 비롯되는 것이 적지 않다. 남한에 왔으나 아직 북한적인 사고방식과 문화가 익숙한 사람에게 한국적인 사고방식과 문화를 기준으로 평가하면서 빠르게 변할 것을 요구하는 사례가 심심찮다. 우리는 저녁을 먹으면서 근황과 함께 각자가 얻은 북한의 소식과 정보를 공유했다. 북한 소식을 나누는 나와 주변 탈북민의 대화도 예전과는 결이 상당히 달라진 느낌이다. 단순한 정보 전달이나 체제에 대한 비판의 비중이 컸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그런 분노와 절망을 넘어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애환에 공감하고,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일지 진지한 고민을 나눈다. 북한 주민들이 글로벌한 시각에서 자신들의 처지를 이해할 수 있는 이른바 메타 인지를 위한 환경을 마련해주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