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선 벨라뎃따(평화사도 1기 & 동화작가, 평화운동가) 꼭, 작년 이맘때였다. ‘평화의 길’ 8월호에 쓴 글이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 ‘꼬마’이야기였다. 무거운 소재라 조금은 친근하게 다가가길 바라는 마음에 동화처럼 쓴 글이었다.“엄마, 이거 그림책으로 내면 좋겠다.”내 글을 읽고 건넨 딸아이 얘기에 귀가 솔깃했다. 그림을 전문적으로 배우지는 않았지만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는 딸이었다.“네가 그릴래?”“그리지 뭐.” 우리 둘은 당장 의기투합했다. ‘평화’라는 주제에 대해 서로의 생각을 나누었고, 장면을 나누며 그림을 구상했다. 막상 그림을 그리려니 막막했는지 딸은 ‘꼬마’의 생김새부터 알아야겠다며 인터넷을 뒤졌다. 나도 ‘꼬마’를 실어 나른 에놀라게이를 검색했고, ‘꼬마’가 떨어졌던 아이오이 다리를 찾아보았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딸과 나의 바람이 열매를 맺어 그림책 <꼬마>를 출간하게 되었다.<꼬마>, 장경선 글, 송 민 그림, 작은숲, 2022. 나는 오래전부터 ‘꼬마’를 소재로 한 글을 꼭 쓰고 싶었다. 그 이유는 일본 작가가 쓴 <히로시마 : 되풀이해선 안 될 비극> 때문이었다. 이 책에서는 원자폭탄으로 죽은 어린 영혼이 화자가 되어, 1945년 8월의 끔찍했던 현장을 담담히 들려주고 있다. 사이사이 1945년 국제정세와 원자폭탄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도 상세히 실어놓았다. 원자폭탄의 무시무시한 광기를 통해 평화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 좋은 작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는 동안 내 마음이 불편했다. 이유를 생각해 보니 ‘철저한 피해자, 일본’만을 그렸기 때문이었다. 물론 피해자가 맞다. 그런데 하필이면 원자폭탄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졌는지에 대해서는 눈곱만치도 설명해 놓지 않았다. 전체가 아닌, 보여주고 싶은 부분만 보여주는 건 조작이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어야 하고, 무엇을, 어떻게 볼 것인가는 각자의 몫으로 돌려야 한다. <히로시마: 되풀이해선 안 될 비극>, 나스 마사모토 글, 니시무라 시게오 그림, 이용성 역, 사계절, 2004. 그림책 <춘희는 아기란다>는 마흔세 살의 아기 춘희 이야기이다. ‘재일조선인’ 2세인 변기자 선생님의 평화그림책이다. 한국, 중국, 일본 세 나라의 작가들과 출판사들이 함께 기획한 그림책 시리즈 중 한 권이다. “아무리 기다리고 기다려도 남편 안 왔다. 히로시마에서 일본 전쟁하는 총 만든다는 편지 받았어. 할머니 서둘러서 히로시마에 왔는데 ... 원자폭탄 떨어져서...”“할머니 남편 ... 죽었다. 아이고 – 아이고 - !”할머니는 주먹으로 땅바닥을 내리치면서 울었어요.“전쟁 끝나고 아기 태어났어. 봄에 태어나서 춘희라고 이름 지었어. 춘희가 어서어서 크라고 할머니 열심히 일하면서 키웠다. ... 하지만 뱃속에 있을 때 원자폭탄 맞은 춘희는 못 자랐어 ... 아직도 아가야. 기저귀 해야 돼. 그래도 어여쁜 우리 아기. 언제나 빨래 널 때 자고 있는 춘희를 창문으로 지켜본다. 조선 노래 불러 주면서.” <춘희는 아기란다>, 변기자 글, 정승각 그림, 박종진 옮김, 사계절, 2016. 남편을 찾아 히로시마로 건너간 춘희네 엄마는 원자폭탄으로 인해 남편을 잃었다. 그때 엄마 뱃속에 있던 춘희는 기형아로 태어나게 된 것이다. 또 다른 그림책 <할아버지와 보낸 하루>는 우리나라 원자폭탄 피해자들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는 원자폭탄이 떨어진 일본 다음으로 원자폭탄 피해자가 가장 많은 나라이다. 원자폭탄이 떨어져 하로시마와 나가서키에서는 70만여 명이 피해를 당했다. 그중 약 10%인 7만여 명이 조선인이었다. 이들 중 4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약 2만 3천 명 정도가 귀국하였다. 고향으로 돌아온 원폭 피해자들은 후유증으로 고통받다 숨을 거뒀다. 후손인 원폭 피해자 2세와 3세들도 후유증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그런데도 원폭 피해자들은 일본과 우리나라 정부로부터 외면당해왔다. 그러다 겨우 1996년에 와서야 합천에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이 세워졌다. 그러나 원폭 피해자 2세 경우는 어떠한 지원도 복지시설도 받지 못했다. 원폭 피해자 2세 故 김형률씨 © SBS 스토브뉴스 우리나라 원폭 피해자 인권 문제가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려진 건 2002년부터였다. ‘한국 원폭 2세 환우회’ 회장이었던 원폭 피해자 2세인 김형률에 의해서였다. 원폭 피해자 2세로 태어난 김형률은 너무너무 짧은 삶을 살다 하늘의 별이 되었다. 1945년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졌을 때, 사다코라는 일본 여자아이가 피폭으로 백혈병에 걸렸다. 사다코는 종이학을 천 마리 접으면 병이 나을 거라고 생각해 날마다 기도하며 약종이로 종이학을 접었다. 하지만 천 마리를 다 접지 못한 채 하늘나라로 떠났다. 그 뒤 종이학은 평화의 상징이 되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평화를 기원하며 종이학을 접고 있다. 8월이 끝나기 전, 피폭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생각하며 종이학 한 마리를 접어 보는 건 어떨런지. 마지막으로 핵 관련 동화와 청소년 문학 몇 권을 소개한다. <비키니 섬>, <마사코의 질문>, <핵폭발 뒤 최후의 아이들>, <체르노빌의 아이들>, <후쿠시마의 눈물>, <평화의 불꽃이 된 핵의 아이>, <형률이>. 읽는 동안 마음이 불편할 것이다. 그렇지만 마음으로 종이학 한 마리 접는 시간이 되시리라.